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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 Jun 08. 2022

유럽 처음, 베네치아

바다에 맡기는 마음으로(19. 4. 7~)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일정은 베네치아에서 보내게 됐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에 대해 여행을 준비하며 많이 들었지만, 바다가 친숙한 내겐 물의 도시에 대한 기대보다는 또다시 기차역에서 맘 졸이며 시간표를 바라봐야 하는 경유지일 뿐이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동안 내 머릿속엔 온통 머리 위에 실어놓은 캐리어 걱정밖에 없었는데, 그건 1인 좌석에 앉게 된 베네치아행 기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새 무게가 더 늘어난 캐리어를 머리 위 짐칸에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아 일반실보다 공간이 넓은 좌석을 활용해 무릎 앞에 끼워놓았는데,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였고 어쩐지 나 혼자 유난스러운 것 같아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칸칸이 마련된 짐칸에 두기엔 북적이는 복도가 불안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 너머로 바람 따라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이 보였다. 우중충하던 지난 일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기대 이상으로 푸른 풍경이 앞, 뒤로 펼쳐졌다. 마치 바다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실제로 그랬다). 베네치아는 바다의 도시답게 사방에 생기가 넘쳤다. 피렌체가 소곤소곤이라면, 베네치아는 왁자지껄의 분위기랄까.


우선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평이 나쁘지 않은 가까운 레스토랑을 찾았다. 손님이  명도 없었지만 다행히 영업 중이었고, 인상 좋아 보이는 주인은 서툰 영어에도 Bon appétit! 싱긋이 웃어주었다. 아마 기억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편히 했던 식사였던  같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부라노섬을 가기 위해 수상버스를 탔다. 베네치아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경유지라 큰 관광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부라노섬이 반나절 정도 둘러보기에 딱 좋았다. 복작거리는 기차역을 뒤로하고 관광객을 가득 실은 버스는 점차 건물과 건물 사이가 멀고 한적한 바다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화려한 성당 건축은 로마와 피렌체만으로 충분했는지, 베네치아에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신기루같이 떠 있는 섬과 그 섬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조각배들에 시선이 갔다. 수상버스뿐만이 아니라 생업을 위해 떠다니는 배들을 보며 괜스레 기분이 찡해지던 중에 버스 옆을 쌩 하니 지나가는 조각배를 보며 여기도 스포츠카가 있군 하며 괜히 웃음이 튀어나왔다.


부라노 섬에 도착하자 화창한 뭉게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토 스팟으로 유명한 색색의 집 앞에 서서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흥이 올라 연신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쨍한 햇빛과 부라노의 알록달록한 벽들이 동화 속 마을에 온 것만 같았다. 오후 시간이라 대부분의 집들은 비어있었고 가게들은 문을 닫기 시작해 관광객 밖에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욱 그런 인상을 주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전히 바다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선착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 느린 걸음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부부, 가볍게 조깅을 하는 젊은 커플들을 구경했다. 오후의 햇빛이 여전히 따뜻했다.


본섬으로 돌아가는 수상버스에서 창 밖을 보는데, 노을이 물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탄성이 사진을 찍느라 지쳐있던 여행자들의 시선을 한 데 모았다. 베네치아 일정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에 배에서 내리자마자 리알토 다리로 건너가 해 저무는 것을 지켜봤다. 바다 위로 붉은 하늘이 잔잔하게 번지듯 걱정과 설렘을 지나온 내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번지고 있었다.



노을에 물든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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