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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Dec 09. 2024

첫날부터 거실 한 복판에서 낮잠을 잔다고?

네가 말로만 듣던 걔가 나야, 제니(JENNIE) : 임보일기 2

구조자님의 댁에서 제니를 데리고 왔다. 제니는 그곳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처음이었을지 모를 집 생활을 경험했다. 구조자님에게 '아직 배변은 잘 못 가리지만 동거견과 곧잘 지내고 매우 순한 편.'이라는,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담임선생님이 써 주시던 특기사항 같은 문장을 나눴다. 심장 사상충 치료를 마치며 먹고 있는 약을 전달받고, 제니가 적응하는 상황을 봐 가며 입양계획을 세워가자는 의견을 나눴다.


집으로 가는 길, 차를 한 시간가량 탔는데 제니는 조금 헉헉 거리며 침을 흘리거나 가끔씩 자세를 살짝 고치려 할 뿐, 징징거리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얌전히 품에 안겨 있었다. 앞 좌석 카시트에 앉아있는 우리 집 반려견 무늬는 뒷자리의 제니를 한번 힐끔 거릴 분 역시나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설었을 제니에게 자신과 같은 개 무늬가 차에 함께 타 있는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집에 도착해서 제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제니는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생리가 시작돼서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했다. 하얀 기저귀를 한 엉덩이를 통통 거리며 집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으며 바삐 돌아다녔다. 우리 집 원목 타일 색과 제니의 모습이 거의 같아서 보호색처럼 보였다. 새 집을 탐색을 하는가 싶더니, 그새 거실 한 복판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동그란 눈을 굴리며 외출을 마친 뒤 집돌이와 집순으로 변신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나와 남편의 움직임을 쫓았다.   


외출에서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볍게 씻고 나왔다. 너무 조용해서 잠시 제니의 존재를 잊었다. '아 맞다. 제니 어디 있지?' 거실로 나와 보니, 아까 엎드려있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첫날부터 거실 한 복판에 누워 낮잠을 잔다고?


우리 집 임시보호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순둥이가 온 걸까. 남편과 눈빛교환을 하며 빙긋 웃었다. 어쩌면 이번 임시보호는 순한 맛일지도 모르겠다며, 또 제니랑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의 가짓수를 늘리며 잔뜩 기대를 해버렸다. 우선 집 근처의 공원을 걸으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무와 하늘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산책친구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지. 그 후 함께 단골 카페에 가서 나는 맛있는 커피를, 제니는 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다정한 카페메이트인가 살펴봐야지. 제니야, 우리 신나고 즐거운 것들 함께 다 해보자! 

첫날 거실 바닥과 보호색을 이룬 제니 :D 

::::: 제니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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