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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Feb 12. 2023

보지 못할 영화를 예매했다. <다음 소희>

어제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왔다. 개봉 25주년을 맞아 캐나다 전역에도 재개봉했다. 97년 개봉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이맥스관에 3D 안경까지 끼고 봤더니 후반부 계속되는 물살에 몸과 마음이 조금 너덜 해진 기분이다. 이런 재난영화를 보는 내 마음이 25년 전과 같을 리 없다는 걸 잠시 망각한 덕분이다. 그래도 휘몰아치는 서사와 20대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아서 원래 타이타닉 리뷰를 작성할 계획이었다.




토요일 아침은 늘 유튜브로 <시네마지옥>을 들으며 식사를 준비한다. 라이너, 거의없다, 미치광이 최광희와 노인 전찬일 평론가의 티키타카가 정말 재미있다. 오늘 소개된 영화는 <다음 소희>.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 콜센터 실습을 나가던 홍수연 양이 자살한 2017년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배두나가 이 사건에 의문을 품는 여형사로 출연했다.


이 사건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콜센터 업무강도가 어떤지는 들은 바가 많다. 이 여학생이 배치된 곳은 '콜센터+통신업+해지방어'라는 최악의 조건만 모은 것이었다. 통신상품은 워낙 종류도 많고 복잡한 데다 자주 바뀌기 때문에 상담사가 소화해야 할 양이 엄청나다. 해지방어는 일반 상담에 비해 정신적 데미지가 훨씬 큰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 콜 수 실적의 압박은 계속되고, 심지어 소희는 노동의 대가도 제때 지급받지 못한다. 소희가 감당한 건 한마디로 비인간성이었다.


다음은 시네마지옥에서 나온 코멘트들.


실적지상주의는 콜센터만 그런 게 아니다. 특성화고도 순위를 매기고 교사들도 순위 때문에 일한다. 교육청도 지역구 단위로 순위가 매겨진다. 이 굴레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소희가 일한 곳은 10년 전 내가 일하던 직장의 모습과 거의 똑같다. 이 영화가 훌륭한 점은 고발에 그치지 않고, 누구의 책임이 큰지 거꾸로 짚어 올라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애가 죽었는데 왜 잘못했다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현실에서는 "그러게 왜 외국 명절에 우리가 놀러 가냐", "그 애 원래 문제 있던 애라면서요, 그렇게 힘들면 자기가 치료를 좀 받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냐. "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끝에는 결국 피해자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책임자들이 있다.
뭣이 중헌디!


영화 리뷰가 시작될 때는 나도 한 사람의 노동자라는 생각으로 소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리뷰 말미에는 이런 사회를 만든 어른의 한 명으로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타이타닉 리뷰를 쓸 수가 없고, 그래서 <다음 소희>를 예매했다(할인 많이 받음). 외국에 있어서 직접 관람할 수는 없지만, 관객수 한 명이라도 늘려주고 싶었다.


정주리 감독이 노동자와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도록, 제 몸값을 안 받고 출연했을 배두나 배우를 응원하며, 이런 영화야말로 천만 관객 가야 된다고 하는 평론가들에게 응답하기 위해, 어떤 영화에 돈을 쓸지 어른으로서 고민하며.


아침 시간 제일 인기 없을 좌석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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