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레인 Mar 06. 2023

아찔하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스물여덟 살에 나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원룸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었다. 원룸은 옆 건물과 간격이 2m도 채 되지 않아 해가 거의 안 들었고 자연히 세로토닌 부족으로 집에 오면 우울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직장선배가 'OO리더십코스'라는 8주짜리 자기계발 과정을 소개해줬다. 생활의 활력소가 되길 기대하며 나가봤다. 내가 속한 10기는 동기가 50명 정도였는데,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직업도 변호사, 사업가, 대학생, 공무원, 학원강사 등 다양했다. 금요일 저녁 수업이 끝나면 해당 기수와 선배들이 간단한 술과 다과를 즐기는 친목활동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매일 반복되던 일상에서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신선했다.


그를 거기서 만났다. 중견기업 임원, 네 아이의 아버지, 독실한 가톨릭 신자, 동양철학 연구자였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늘 한 마디씩 던졌는데, '대운', '기운' 같은 용어를 많이 쓰고 당시 유행한 자기개발서 '시크릿'에 나올 법한 얘기도 많이 했다. 나는 그런 신비로운 얘기를 좋아했다. 8주가 끝난 후에도 멤버들의 개업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계속 모임이 이어졌다. 그는 근황을 물으며 나의 사주나 관상을 바탕으로 내 진로에 조언을 해줬다. 그의 세속적이지 않은(?)태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친해보이는 권위(?)에 기대 그를  신뢰하게 된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기 아내가 새로운 소명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보험 판매였다. 사람의 사주명리를 기반으로 보험을 설계해 준단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당시의 나는 액운 대비책으로 월 15만 원짜리 종신보험이 유용할 거라 생각했다. 보험 계약을 하고 얼마 후 그가 XX도사 얘기를 했다. 신통한 치유 능력을 가졌는데 도사의 기운이 닿은 물건을 해가 안드는 우리집에 두라고 했다. 내 원룸에 도사가 정한 그림을 걸고, 촛대 2개를 두었다. 비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적절한 값을 치러야 효과가 있다던 지긋한 눈빛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 허리 디스크로 고생 중이던 회사 상무님께 내가 말했다. "상무님, 제가 들은 도사가 한 분 있는데, 한번 만나보시겠어요?"라고...이제는 알겠다. 나의 충심 어린 제안에 보인 상무님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러나 나에게 천운이 있었다. 어느 날은 그가 밥을 샀는데, 투자수익이 많이 생긴 턱이라고 했다. 어떤 선물투자자가 비공개 시장에서 수익률을 60%씩 내고 있단다. OO리더십코스 동기인 H사장님도 거기 투자 중이라는 귀띔과 함께. "우와! 저도 좀 투자하면 안 돼요?"라는 말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허허허, 돈 넣겠다는 사람이 많긴 한데...그래도 수경 씨는 특별히 소개해줄게요." ... 하지만 이후 그를 다시 못만났다. 얼마 후에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고, 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생겨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났다면 내 사회초년생 시절 저축이 얼마나 샜을지 아찔하다. 나는 그 때의 공사다망을 천운으로 여긴다.


몇달 후 해가 잘 드는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안정을 찾으면서 종신보험이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손해를 감수하고 해지했다. 결혼과 이사와 미니멀라이프 붐을 거치면서 그림과 촛대도 처분했다. 버릴까 고민할 때는 찜찜했는데, 막상 없애고 나니 너무 홀가분했고,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거의 잊고 살았다. 솔직히 지금도 그가 사기꾼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때 투자를 했더라면 떼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진짜 그건 미스터리다.




넷플릭스에서 사이비 종교의 범죄를 다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8편을 몰아봤다. 사이비는 이단 중에서도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말한다. 1~3편은 주로 JMS 성폭력 피해자의 사례와 안티 JMS  단체의 투쟁을 다룬다. 너무 역겨워 먹은 게 다 올라오는 줄 알았다. 4편은 87년 오대양 집단자살사건을 다루는데 기괴한 현장사진이 여과 없이 나와서 너무 오싹했다. 5~6편은 96년 아가동산 사건인데 아동학대 장면이 보기 괴로워서 뒤로 넘겼다.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사정없이 자기 뺨을 때리는 모습도 처참하다. 7~8편 만민중앙교회도 심각하지만 앞편들이 워낙 매운맛이라...


몇 가지 기억하고 싶은 것을 남겨둔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것도 있고, 추가 검색으로 알게 된 것과 만고 내 생각도 있다.


1. 피해자들은 정말 멀쩡한 사람들이다. 대학생, 교수, 의사, 검사들까지 맹목적인 광신도가 되는 게 놀랍다. 교주들이 호화 도피생활을 하거나 감옥에 가도 광신도들은 그것을 예수의 고난에 비유할 정도다. 평범한 이웃들이 보이스피싱에 어이없이 당하는 것을 보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운이 조금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2. 멀쩡한 사람을 인지부조화의 광신도로 만드는 사이비 쇼는 사실 너무 유치하고 조악해서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무안단물'이라는 만병통치약을 쓰면 없던 쌍꺼풀도 생기 고장 난 세탁기도 고쳐진단다. 달 속에 교주님 얼굴이 숨어있다던가, 기도를 하니 미국 허리케인이 물러났다던가 하는 헛소리에 다 속는다...  교주들의 사기 치료 쇼는 추가 분석 대상으로 삼을 만 하다. 예전에 사이비 종교 의혹을 받았던 모 유명 배우도 어릴 때 교회에서 병이 나아서 그렇게 신실해졌다는데... 철저하게 계획된 연극인지, 플라시보기막힌 연속인지 궁금해진다.


3. JMS 피해자들이 찍은 나체 영상이 많이 나오는데 모자이크조차 없어서 경악했다. JMS의 실체를 각인시키고 파장을 일으키는데는 효과적이겠으나, 영상의 등장인물들이 피해자들이라 보기에 불편했다. 몸만 나오긴 했지만 몸도 그 사람의 일부인데, 얼굴을 가렸다고 이렇게 전세계에 송출해도 되는건 아니지 않나? 이것도 2차 가해의 일종 아닌가?


4. 죽은 박순자 외에는 세 교주 모두 죗값에 비해 가벼운 벌을 받았다. 정명석은 JMS 도인 국정원 직원,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유출한 수사기밀의 도움을 받아 도피했고, 잡힌 후에는 '법무법인 광장'의 변호를 받았다. 이재록은 감옥에서도 넉넉한 영치금으로 황제 행세 중이다. 김기순은 피해자의 가족을 회유하여 살인 무혐의를 받았는데, 지금도 신도들이 피땀으로 일군 기업의 수익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 회사가 k-pop 열풍에 기대 여전히 잘나가는 '신나라레코드'다.


5. 단국대 수학과 김도형 교수님과 엑소더스를 기억하고 싶다. 30년 넘게 JMS를 잡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김교수님의 아버지가 끔찍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당연히 내가 아들 대신 이 꼴을 당해서 다행이다"라고 하신 그의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지난해 8월에 돌아가셨다. 피해자로서 엄청난 용기를 낸 메이플 씨도 있다. 그녀의 부모님 말처럼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다.


6. 세월호 사건 때 청해진해운의 주인인 세모 주식회사의 막대한 자금이 오대양에서 들어온 거라는 의혹이 나왔는데, 이후 검찰에서 오대양 사건은 구원파나 5공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유병언과 전두환이 다시 잠깐 등장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인지, 물증은 없어도 여전히 합리적인 의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검찰도 언론도 믿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7. 요즘 MBC와 넷플릭스가 콜라보하는 프로그램들이 재미있다. (얼마 전 끝난 서바이벌 <피지컬 100>은 참가자들의 야성이 내 스마트폰 화면을 뚫고 나오는 줄 알았다!!!) 이번에 다뤄진 사이비들은 대부분 과거의 사건이기도 하고, 어쩌면 잔잔바리들일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비들도 계속 고발되 바란다.




괴이한 다큐멘터리 이미지 대신 김도형 교수님의 신간 이미지를 올려봄 (이미지 by 교보문고)


매거진의 이전글 보지 못할 영화를 예매했다. <다음 소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