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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Mar 12. 2023

파워 J의 여행 필수품은?


나는 MBTI "파워J"다.

(왜때문에 자랑스러울까!)


내 인생의 많은 선택들이 "최고"나 "최선"보다는 "불확실성을 기피"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행해졌다. 수능이 끝난 후 논술을 망칠 가능성을 고려해 특차로 가능한 과에 얼른 지원하고 잊어버리는 식이다. 지금의 삶은 그런 노력들이 빚어낸 모습이다. Low risk? Low return.


한편 '인생은 여행'이라거나,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삶에서 그나마 통제변수가 몇 더 있고, 단기에 완결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 결국 여행에서 내 J부심은 폭발하고야 만다...!


파워J의 여행은 빨리 시작된다.

준비단계부터 이미 여행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 뉴욕에 가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거기 가야 할 실낱같은 이유를 물고 늘어졌다. "캐나다까지 왔는데 뉴욕은 한번 가야지. 한국에서 갈려면 티켓값도 비싸고 시차도 골치라고. 지금 가는 게 돈 버는 거라고". 남편은 일 때문에 못 간다고 한다. "내가 애들 데리고 갈게. 애들은 가봐야지. 세계의 수도, 뉴욕이라고". 뉴욕에서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일주일이면 될 듯하다. 꼭 해야 할  리스트를 추리고 중간 위치에 가성비 숙소를 예약했다. 이 과정에서 블로그와 유튜브를 워낙 많이 봤더니, 이미 난 뉴요커다. 3D 실생활에서는 지독한 방향치인 내 머릿속에 지우개 대신 2D 맨해튼 지도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파일명 : trip.xlxs

파워J의 여행필수품은 카메라가 아니다. "엑셀"이다. 내 파일을 열어 '제주', '문경' 같은 시트 중 하나를 클릭하면 날짜별 테마, 시간별 할 일, 예상 경비가 질서 있게 정리된 표가 나온다. 하이라이트 된 셀은 실제 일정의 하이라이트이고, 공백인 셀들은 휴식 타이밍이다. 휴무 체크가 끝난 방문지는 당연히 최적화된 동선을 따라 치밀하게 배열되어 있고, 얼큰한 음식이 땡길 타이밍에 맞춰 얼큰한 식당이 입력되어 있다(아무래도 정상은 아님). 여행을 마친 후 예상 경비와 실제 경비를 비교해 보라. 대선 출구조사여, 길을 비켜라!


파워J때로는 진상이 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박물관에 갔는데 "sorry, 오늘 휴관임"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상상? 극도의 공포다. 단체 패키지를 예약했는데, 출발 3일 전에 모객이 안됐다는 취소 전화를 받는다? 그것은 테러다. 그래서 난 패키지는 절대 못하고 자유여행만 할 수 있다. 그래도 현지 당일투어를 예약할 일이 왕왕 있는데, 난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당일투어도 모객이 안되면 취소되나요?", "확실친 않아도 보통 4월 벚꽃 시즌에는 언제 마감된다던지, 경험적으로 대충 예상 가능하시죠?", 10시에 탑승해서 4시간 차량 이동인데 점심은 언제 먹나요?", "의회의사당은 외관만 보는 거예요,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까똑", "까똑"... "(그... 그만...) 고객님 그런데 예약은 하신 거예요? (그 입 좀 다물라...)"... 렇게 나는 업체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파워J와 P의 여행은 사바사, 케바케다.

결혼 전 대학친구 P와 배낭여행을 했다. 여행 전부터 내가 보내던 엑셀 첨부 메일에 진즉 질려버린 P는 급기야 파리의 어느 민박 6인실 2층 침대에서 잠꼬대를 하고야 말았다. "... 제발... 이제 그만 좀 해..." ... 그런데 남편도 P처럼 여행계획을 1도 안 세우는 타입이다(영화도 언제나 사전 정보 없이 본다. 도대체 왜?!). 대신 군말 없이 내 엑셀에 100% 따라주는데, 늘 이렇게 감탄한다. "전혀 기대 안했는데 너무 좋아!"




왜 이렇게 깐깐하고 융통성이 없냐고? 아니다. 우리(갑자기 우리?)도 때로는 즉흥적이다. 우리도 길에서 우연히 버스커를 만나면 한참 죽치고 앉아 박수도 친다. 다음 순서가 야경 보는 거라도 너무 피곤하면 숙소로 돌아간다. 식당도 수시로 바꾼다!!! 파워J의 여행도 예기치 못하는 일들이 많고, 꽤 재미있다. 우리나름 기분파로 재미있게 산다. 힛.


귀국과 복직을 앞두고 뉴욕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P들아... 나 지금 되게 신나...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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