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30분 인천-바르셀로나 직항 비행 썰
나 혼자 간다. 스페인 편
팬데믹이 창궐한 지 무려 4년이 다 되어갈 시기이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막 시작될 무렵에 갑작스러운 열흘의 휴가가 생겼다.
백신을 맞은 지 몇 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몇몇 나라 입국장이 열렸고
그중 첫 번째로 선택한 여행지는 내 여행 로망 지였었던 스페인이다.
8박 10일의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하루 전까지 일 때문에 잠을 설치고서도 나는 가야만 했다. 유럽으로!
이번 여행엔 시작부터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스페인은 3차 백신을 맞은 사람만 입국이 가능했다.
여행 며칠 전, 업무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3차 백신을 맞았고
하필이면 그날이 회식날이라 스멀스멀 미열이 올라오는 몸을 이끌고 동료들 틈에서 음식을 깨작거리던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스페인 입국 기준이 내가 백신을 맞은 딱 그날 오후 바뀌어서 3차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3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에 들떠있기만 했다.
이번 이야기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난무했던 여행 중 그 시작,
무려 14시간 30분이 걸린 비행'기(記)'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큰 관문은 비행이다.
진단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지만 비행공포증 혹은 비행불안증이 탓에 아무리 긴 비행시간, 아무리 피곤해도 비행기에서는 거의 잠에 들지 못한다.
몇 년 전 이탈리아행 비행기에서는 12시간 동안 영화 다섯 편을 본 기억이 있다.
차라리 돌아오는 비행 편에서는 쌓인 여독으로 인해 다만 30분이라도 쓰러지듯 눈을 붙일 때가 있는데,
여행을 시작하는 비행기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에 들지 않는 불치병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당시 러우 전쟁이 시작되며 원래 비행 동선보다 조금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인천에서 스페인까지는 무려 14시간 30분이 걸렸다.
당시 아직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많이 없을 때라 그런지 옆좌석 두 칸이 다 비어서 무려 눕코노미의 기적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시간 30분의 비행은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이륙 후 기내식을 먹고 영화 두 편을 보고 맥주, 와인 한 잔씩을 마시니 6시간가량 지났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8시간의 비행이 남아있었다.
어찌어찌하여 10시간에 다다랐을 때 내가 탄 비행기는 튀르키예 상공쯤에 있었는데 나는 진심으로 벨을 누르고 제발 튀르키예 여행 비켜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땡땡스탄 국가들 위를 지날 때도 '아 내가 여기로 갔어야 했나, 스페인 여행은 내게 욕심이었구나.' 싶었다.
피곤함과 지루함으로 내적 몸부림을 치면서도, 이코노미 의자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수백 명의 인간군상이 좀비처럼 하늘에 떠다니고 있었다.
내 대각선 자리에 앉은 젊은 여자가 허망한 눈빛으로 3D 비행경로를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앞으로는 유럽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직항이 아닌 경유하는 항공편을 고르리라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유럽 여행은 너무나 설렜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여행 단 일주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급하게 몰아넣은 관광 스케줄은 여행 중 원형탈모가 생길 만큼 타이트했고, 외국인 배낭여행객들과 소통을 꿈꾸며 향했던 도미토리 숙소에서는 밤새도록 떠드는 소리에 잡을 설치며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외국인과의 대화로 설레는 20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벌써 3년이 지난 여행,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했지만 맘과는 달랐던 스페인 여행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