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0년 넘게 한 아이돌 그룹을 덕질해왔다. 중간에 휴덕기가 있었어서 10년 내내 꾸준히 좋아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휴덕기 청산 후 재입덕 한 후로는 더욱더 열정적으로 덕질을 하고 있다. 처음 입덕 했을 때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직장인이 된 지금은 그만큼 경제력이 생겨서 그런 걸 지도...
아무튼 지방에 사는 고딩이었던 나는 10만 원이 넘는 티켓을 사서 서울에 갈 용기가 없었고 당시엔 앨범을 사거나 집에서 그들이 나오는 방송을 챙겨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알바를 시작했을 무렵 한 멤버가 뮤지컬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완전체는 아니지만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실물을 본 날이었다. 근데 키스신이(사실 뽀뽀에 가까운) 있었다는...ㅎ 어쨌든 그렇게 열정 덕후가 될 줄 알았지만 유학 준비와 맞물리며 한동안 휴덕기를 맞게 되었다. 유학 생활 후반부에 들어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일본 투어 콘서트에 간 것을 계기로 다시 재입덕 한 난 지금까지도 열정 덕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팬싸에 한 번도 못 가봤다는 것이다. 원래도 될놈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팬싸를 위해 앨범을 몇십, 몇 백 장씩 사지는 않았지만 딱 한 번 정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큰맘 먹고 몇십 장을 지른 적이 있었다. 내 딴엔 큰 결심이었지만 팬싸는 그 정도로 되는 게 아니었는지 광탈하고 말았다. 그 후로는 몇십 장씩 사는 건 그만뒀다. 대신 얼마 전 있었던 콘서트에 처음으로 이틀 연속으로 갔었다. 콘서트 티켓이 싸지 않다 보니 지금까진 하루만 갔었는데 이번엔 이틀에 도전했다. 곧 한국을 뜰 계획이라 한국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저질체력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이번엔 3일 중 이틀만 가서 올콘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올콘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왔다.
그동안 군백기도 있었고 코로나도 터지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열린 콘서트였는데 그래, 콘서트가 이런 거였지 하고 잠들었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자리에 앉아 콘서트 시작을 기다리는데 마치 놀이기구를 타기 직전의 기분 같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렇게 설레고 떨릴 수 있다니 새삼 이 사람들이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싶었다.
나처럼 아이돌에게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나로선 쏟아붓는 시간과 돈 이상의 행복을 느꼈으니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도 여러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해 주고 있어서 고맙기도 하고 그런 그들을 보며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겨낼 힘을 얻고 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낸다면 직접 전해주고 싶다는 작은(작지 않은 것 같지만) 꿈도 생겼다.
지금까진 지인의 지인을 통해 친필 싸인을 한 번 얻은 게 다였지만 언젠가 직접 만나 싸인도 받고 내 책도 선물하는 상상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내 노동요 같은 느낌). 만약 이 글을 실은 책을 내서 그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 여러 의미에서 성공한 덕후로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