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누워서 보는 삽화 에세이 <일요 이예지>
“자니?”
희대의 불면증 양산 질문. 수많은 연인에게 두근거림을 안겨주고, 후회를 수반하게 한 달콤 씁쓸한 물음. 참으로 감칠맛 넘치는 질의. 잠에 대해 묻는 이 문장 안에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서브 텍스트가 녹아 있다. 역시 안부는 밤에 묻는 것이 제 맛인가. 태양이 정수리를 가격하는 낮 열두 시에 잘 사냐고 묻는 것보다는, 늦은 시간 괜히 센티멘털해진 감각을 티스푼으로 한 번 휘저어 줄 “자니?” 가 더 재밌긴 하다.
밤에는 더 많은 것이 생각난다. 새벽의 사색은 숙면을 방해한다. 홀로 누워 천장을 보니 눈 앞에 지나간 연인의 얼굴이 글썽였다는 김광석 아저씨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든,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이든, 참을 수 없는 분노든, 침대에만 누우면 끊임없이 팽창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생각 탓에 먼동이 틀 때까지 잠에 들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불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 역시 불면에 시달려 기면증까지 앓았던 적이 있다. 내 침대는 당근마켓에서 산 접이식 스프링 소파다. 가운데가 움푹 파여 한 시간만 누워 있어도 허리가 아작 날 것처럼 아프다. 잠은 당연히 잘 못 잔다. 이 침대에서 책도 읽고 섹스도 하고 노래도 만들었는데 잠만 못 잔다. 수면 장애는 날로 극심해졌다. 하루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만 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이미 반을 건너 온 상황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남대문 종합 시장 D동에는 술 상점이 즐비하다. 여타 주류 가게나 면세점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괜찮은 위스키를 구매할 수 있다. 내가 고른 첫번째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산 싱글몰트 아벨라워 아부나흐였다. 도수는 61.5%, 알코올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병에 넣는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이다. 물을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시 할 때마다 도수가 조금씩 달라지는 매력이 있다. 아부나흐(A’bunadh)는 ‘오리지널’이라는 의미다. 물로 희석시켜 40%의 도수를 맞추지 않기에, 싱글몰트의 오크 향이 풍부하고 향기롭다.
잘 익은 사과 나무의 향을 삼키고 나면 스파이스가 올라온다. 사실 잠을 재우기보다는 깨우는 술이다. 살짝 들이킨 뒤 입술을 한 번 핥고, 액체가 경구개 쯤에 머무르게 하면 향이 극대화된다. 그대로 넘기면 목구멍이 타들어간다. 아이러니하지만 고단한 날에 잠도 오지 않을 때면 아부나흐를 열게 된다. 안주로는 IPA 맥주가 제격이다. 향의 향연. 극악의 컨디션에 극상의 난이도에 도전하겠다는 나의 자유 의지에 박수를 보낼만한 숱한 밤의 풍경이다.
아부나흐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 나면 엄지 손가락이 “잘 지내요?”를 전송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흐…’ 하고 숨을 뱉으며 음악을 하나 재생한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몽롱해진 정신을 산뜻하게 단장해주는 선율이다. 독일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궁정 음악가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일종의 후원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카이저링크 백작은 잠을 잘 못 이뤘다. 그래서 바흐는 그를 위해 불면증을 완화할 수 있는 단아하고 간결한 곡을 쓰게 된다. 이 곡을 듣고 빈 담뱃갑에 금화를 넣어 바흐의 주머니에 찔러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잠을 잘 수 있게만 해준다면 후한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접이식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위스키에 수면을 위한 선율을 곁들이다 보면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난다. 우리가 계속 사랑했더라면, 지금 쯤 네 번째 계절을 함께 맞이하고 있을 텐데. 봄의 향기로운 나물을 함께 먹고, 하루 아침에 보송해진 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걷는 이 계절의 한복판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벚꽃 향기를 맡았을 텐데. 입 안에서 IPA의 홉 향과 위스키의 나무 향을 돌돌 굴리고, 골드베르크 선율에 귀를 맡긴다. 불면에 의지해 단정하게 취해간다. 가슴께가 뜨겁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골드베르크 선율에 귀를 맡긴다. 목 뒤가 뜨겁다. 네 인스타그램을 검색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띄워둔 너. 골드베르크 선율에 귀를 맡긴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는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는다.
- ‘자니?’
- ‘왜 안 자’
모로 가도 구리다. 24시간 뒤면 사라질 저 작은 네모 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끝났다. 한 번 더 들으면 아무래도 엄지가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들이킨다. 나무 밑동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도 이것 보다 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리지널’이라는 아부나흐의 의미를 상기한다. 우리에게 ‘원래’라는 것이 있었을까. 알몸의 당신, 톡톡 두드리는 입술, 슬플 때 네 코가 어떻게 움찔거리는지, 네 오랜 습관들, 받는 것이 서툴렀던 나, 내가 늦잠 잘 때 네가 춰주던 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의 ‘원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았다.
골드베르크를 선율을 한 번 더 틀어버렸다. 물음표의 곡선을 아주 작은 점들의 집합인 점묘화로 그릴 것만 같다. 나는 자꾸만 물음표의 마지막 점을 찍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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