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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월 Apr 11. 2023

이열치열

일요일에 누워서 보는 삽화 에세이 <일요 이예지>

우리는 연남동의 중국 요리 집에서 만났다. 걸어오는 동안 브라 아래가 땀으로 젖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마주 앉았다. 너무 덥지 않냐며, 벌써 이렇게 더우면 여름을 어떻게 날 거냐고 툴툴댔다. 통 창으로 6월의 볕이 뜨겁게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직사광선이 눈을 찔러 대나무 블라인드를 아래로 내렸다. 칭따오 한 병을 시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들이켰다. 오후 3시였다.

 

용암처럼 뜨거운 손 두개가 포개졌다.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상대방의 손을 잡고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갓 튀긴 만두에 혀를 데었다. 에어컨 바람도 선풍기 바람도 아닌 미적지근한 바람이 천장에서 불어왔다. 다만 열려 있는 가게 문으로 들어오는 가벼운 공기가 볼에 닿았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오늘같은 날은 여름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한다. 이 계절의 놀라운 점은, 체온이 생각보다 뜨겁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거짓말같은 그 숫자, 36.5도. 너와 나의 몸은 항상 그 언저리에서 달아 오른다. 그럼에도 연인들은 너무 대단하다. 살이 닿기만 해도 끈적이는 이런 날에 손을 꼭 잡고서, 뜨거운 중국 요리를 먹는다는 것이 말이다. 몸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하며 서로의 체온을 끌어 안는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만두를 다 먹고 나와 연남동을 걸었다. 단 1분도 더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더위였지만, 걸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 “네 얼굴이 더 빨개”

 

맥주의 취기에 더위를 곁들여 익어버린 우리는 빨간 얼굴로 계속 걷다가, 연남동 구석까지 들어왔다. 그 순간 골목 어귀에서 빨간, 아주 빨간색의 간판에 적힌 '테마M텔' 이라는 흰 글씨를 발견했다. 홀린듯이 멈춰 섰다. 모텔을 안 간지는 5년 정도 된 것 같았다. 전셋집을 계약한 뒤로부터 우리는 주로 집에서 데이트 했고 여행을 가도 호텔에서 묵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지 오늘은, 이토록 땀에 절어 버린 날에는 모텔의 빨간 조명 아래서 홀딱 벗고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주차장의 갈기 모양 커튼 아래에서 림보를 하는 너에게 나는 당장이라도 키스를 하고 싶어졌다. 건물 안은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신기할 만큼 이상하게 생겨서 웃음이 나는 크리스탈 모양의 조명도 있었다. 촌스럽고 불그스름하고 괴상한 조명이었다.

 

주인장은 몹시 퉁명스러웠다. 칫솔도 주실 수 있냐고 묻자 화를 내듯 "천 원" 이라고 답했다. 돈을 꺼내자 칫솔을 두 개 내밀었다. 하나에 오백 원이라 두 개를 준 건지 천 원인데 하나를 더 준 건지 모르겠는 채로 우리는 304호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동시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 쪽 벽면에 여성의 알몸이 엄청나게 커다랗게 그려진 액자가 놓여있었다. 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를 꺼내더니 북 찢어 벽을 얼기 설기 가리기 시작했다. 뭐하냐고 묻자 너는 대답을 안했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 “뭐하냐고!”

- “가리고 있잖아!”

 

나는 너에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키스했다. 너는 찢어진 노트를 손에 쥐고 뒤로 넘어졌다. 우리가 움직임에 따라 얇은 모텔 이불에서 슥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때가 잔뜩 탄 모텔 주차장 커튼 아래에서 림보를 하거나 벽에 걸린 야한 그림을 찢긴 노트로 가리려 하는 네게 나는 왜 이토록 사랑을 느끼는 걸까. 네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네가 곱슬머리라서, 앞니가 벌어져서, 웃을 때 인디언 보조개가 들어가서, 내가 슬플 때 내 눈동자를 가장 따스하게 바라봐 줘서, 너랑 하는 섹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서, 사실 이렇게나 네가 좋은 이유를 수만 가지 들 수 있지만 비밀이다.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초저녁 불빛을 바라보며 네 가슴에 기대어 있는, 이 기분을 조금 더 느끼고 싶기 때문에.


22.04.15 <이열치열>, 모조지에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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