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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Dec 23. 2020

‘욕망’ 덕분에 괴물에서 히어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Sweet Home)>

넷플릭스 <스위트홈>
‘내가 죽기로 한 날, 세상이 끝났다’


살아남는 것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크리처 어서 오고


모든 대중문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올해는 ‘아포칼립스물’이 쏟아졌다. <킹덤>, <반도>, <살아있다> 등 좀비 아포칼립스를 넘어, 판타지 호러와 크리처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 장편 드라마 <스위트홈>이 올해 마지막 아포칼립스물로 그 문을 닫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은 누적 조회 수 12억뷰를 기록한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 등을 만든 이응복 PD가 연출을 맡았고, 3500평 규모 세트장에서 회당 제작비 30억 원, 총 3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초대형 프로젝트다.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신선한 스토리와 긴박한 서스펜스로 한국을 비롯한 총 8개국 넷플릭스 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상위 10위권에 올랐다.


<스위트홈>은 끔찍한 사고로 가족 모두를 잃고 허름한 아파트 단지 ‘그린홈’으로 이사간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송강)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 도무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그가 죽기로 다짐한 그때,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괴물에 놀란 탓일까. 이유도 모른 채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본 세상은 지옥이었다. 도시는 폐허가 됐고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게다가 현수에게 일어난 기절과 코피, 환청과 환각 증상이 괴물화의 초기 단계라니. 그렇게 자살을 결심한 소년보다 세상이 먼저 망해버렸다.


당신 안의 괴물은


애초에 좀비였으면 쉬웠다. 열심히 잘(?) 도망 다니면서 물리지만 않으면 되니까. 좀비와 달리 <스위트홈>의 괴물은 피할 수도 없다. 괴물은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 내재된 욕망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설정은 방금 전까지 무해했던 사람도 가장 큰 위협으로 만든다. 게다가 욕망은 매 순간 새롭게 자라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력이 질긴 우리의 욕망처럼, 괴물도 마찬가지다. 괴물화 초기 증상을 보이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괴물을 처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머리가 잘려도 영생할 수 있다니. 흔히 ‘물고 뜯기면서’ 감염되는 좀비와 다르게 괴물화 과정이 신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욕망의 모양새가 각자 다른 만큼, 괴물의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썩은 생선을 선물이랍시고 준 갑질에 분노해 이를 되갚으려는 ‘경비 괴물’도 있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후회로 팔만 기형적으로 길어진 ‘긴팔 원숭이 괴물’도 있다. 수혈이 부족한 환자였던 듯 <미스트>를 연상케 하는 촉수로 인간의 피를 무자비하게 빨아들이는 ‘흡혈 괴물’에, 관음증에 사로잡힌 ‘눈알 괴물’, 심지어 헬스와 프로틴에 중독된 ‘근육 괴물’까지. 이처럼 욕망이 통제하는 괴물은 다양한 인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흐린 빛이라도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수천 수만 가지의 욕망이 있는데, ‘그냥 죽을까’라는 말을 달고 살던 주인공은 어떨까. 바라는 건 없고 가진 거라곤 절망뿐이던 그에겐 특이하게도 괴물화가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영웅이라도 되고 싶은거냐”라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엿볼 수 있듯, 현수는 그린홈 사람들을 만나 이들에 녹아들고, 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욕망을 깨달으면서 괴물화가 진행된다.

첫 번째 각성은 모니터 속 세계가 전부였던 그가 타인을 구하기 위해 문밖으로 처음 나온 순간이다. 인간과 괴물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속에서 전기창을 들고 싸운다. 생김새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 치명타를 입어도 곧잘 회복해내는 불사의 몸이라는 게 다르지만. 두 번째 각성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타인을 지키려 결국 완벽하게 괴물로 변신한다. 현수가 겪는 괴물화는 외형 변화뿐 아니라 내면의 성장도 입체적이고 뚜렷하다. 인간이라고 모두 선하지 않듯, 욕망이라고, 괴물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죽기만을 바라던 현수에게 희망을 심어준 건 ‘스위트홈’, 즉 그린홈의 사람들이었다. 망한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정다운’ 우리 집이 생겼고, 그게 현수에게는 치유이자 구원의 시작이었다. 누군가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고, 나의 선의가 선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곳이 있음을 깨닫는. 현수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다른 이들과 갈등도 겪지만, 피와 눈물을 함께 나누며 가족애를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인간은 미래를 완전히 잃어버릴 때에만 자신을 파괴한다”고 짚은 바 있다. 뒤집어 말하면 아주 약간의 미래만이라도 주어진다면 누구도 자기 삶을 스스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 ‘스위트홈’은 현수에게 생긴 조그마한 미래다. 그 흐린 빛이 짙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구할 골든타임이 될지, 시즌 2를 기다린다.



<스위트홈(Sweet Home)>

공개 |  2020년 12월 18일 (시즌 1)

제작 |  스튜디오드래곤, 스튜디오N

연출 |  이응복

출연 |  송강, 이진욱, 이시영, 이도현, 김남희,

고민시, 박규영, 고윤정, 김갑수, 김상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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