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
1991년, 대한민국과 북한이 유엔(UN) 가입을 놓고 외교 총력전을 펼치던 때.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까지 치른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 인정받기 위한 다음 관문은 유엔 가입이었다. ‘누가 먼저 유엔 회원국이 되나’를 두고 이국땅에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펼치던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우연히 소말리아 내전에 휘말린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은 물론 통신마저 끊기고,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외딴 땅에서 유엔은 무슨. 목표는 오직 생존이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됐던 남북한 대사관 공관원의 탈출 실화를 다룬 영화다. <베를린>(2012), <베테랑>(2015)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2017)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8월 첫째 주 전 세계 박스오피스 5위에 등극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한국 영화 최초로 누적 관객수 2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양손 다 씁니다. 왼손만 쓰면 좌파라고 해서”라고 농담한 한신성 대사(김윤석)의 대사나 안기부 출신이라는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의 설정에서 엿볼 수 있듯, 그 시절 양측 진영의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내린 결정들이 <모가디슈>의 관람 포인트다. 붙었다가도 떨어지는 ‘느슨한 연대’가 <모가디슈>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 각자 서있는 곳에서 오롯이 자유로울 수 없는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들이 장면들로 이어진다. 국가와 이념을 뛰어넘어 먼저 손을 내밀고 뜨겁게 포옹하다가도, 반역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냉랭하게 눈빛 하나 안 마주치기도 한다. 그런 선택들을 <모가디슈>는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고 건조하게 묘사할 뿐이다.
흔히 ‘남북 관계’라는 특수성을 다룬 영화들이 신파를 피해가기 어려운데 <모가디슈> 만큼은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당시 상황을 아는 외교관, 종군 기자, 군사전문가 등 다양한 계층에 자문을 받아 쌓아올린 탄탄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실화와 각색 사이 힘 빼기의 기술이 돋보인다. 감동을 짜내는 억지는 덜고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을 더해, 남과 북이 처한 관계에 매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총을 들고 길거리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소말리아의 현실에 눈길을 가게끔 하는 극 후반부 연출에, 여행금지 국가로 방문할 수 없는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 100% 현지 로케이션으로 담은 이국적인 풍경,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한 카 체이싱 액션이 더해져 몰입감이 배가된다.
지성을 대변하는 책이 방패로 쓰이는 전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동행 속에서도,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으로 깻잎 정도는 잡아줄 수 있는 거니까. 올 여름, 코로나에 무더위, 풀리지 않는 한반도 정국에서도 끈적한 불편함 없이, 담백하게 극장에서 볼 만한 텐트폴 영화, <모가디슈>였다.
<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
개봉 | 2021년 7월 28일
감독 | 류승완
출연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外
등급 |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