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인사이드 아웃>부터 스파크쇼츠 <플로트>, <윈드>까지
어렸을 때 잠깐 병아리를 키운 적이 있다. 연노란빛으로 삐약거리는 모습에다, 아홉 살 아이 두 손에 폭 들어올 만큼 ‘작다’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웬만해서는 뭘 사달라고 조르는 법 없던 내가 홀딱 반해버렸을 만큼. ‘반려동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을 울며 불며 겨우 조르고 데려와선, 나보다도 소중하게 아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빛이 따뜻해서 산책시켜주고 싶었을 뿐인데, 잠시 한눈판 사이 환풍기 속으로 들어가는 걸 그만 놓쳐 버렸다. 데려온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전부 나 때문이었다. 낙심한 내게 부모님은 다른 병아리를 사준다고 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뭐든 ‘그 친구’가 아니니까. 그렇게 밥도 안 먹고 일주일간 펑펑 울고 나서야 그 친구를 보내줄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첫 번째 상실이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크고 작은 헤어짐을 겪었지만 매번 괜찮지 않다. 언제나 새롭게 아프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라일리’가 만든 상상 속 친구 ‘빙봉’은 지금은 비록 잊혀졌더라도, 언젠간 멋진 로켓 수레를 타고 라일리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날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토록 아끼던 수레가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린다. ‘기쁨이’는 애써 빙봉의 기분을 좋게 바꾸려 하지만 빙봉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는다. 그런 빙봉에게 ‘슬픔이’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로켓이 사라져서 속상하지. 네가 사랑하는 걸 가져가 버리다니 너무 슬픈 일이야”라고. 그제야 빙봉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와르르 쏟아졌던 사탕 눈물이 이내 잦아들고, 빙봉은 기운을 차리며 일어선다. “이제 괜찮아졌어. 돌아가는 기차역은 여깄어”라고.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 슬픔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먼저, 슬픔을 담아도 될까. 영화를 사랑하는 내가, 아이들이 사랑하는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면서 처음 가졌던 물음이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솔직한 게 좋은 건지.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마냥 밝은 장면들로 그 순수함을 지켜줘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 답을 우연히 다시 접한 글에서 찾았다. 뉴베리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미국의 동화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가 타임지에 쓴 기고였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왜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에 슬픔을 담아야 하는지’에 관해 자신이 겪은 경험을 소개하는데, 이때 E.B 화이트가 쓴 명작 중에 명작 <샬롯의 거미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샬롯의 거미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은 친구에게 이유를 묻자, 그 친구는 “어떻게든,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되새기려 했다고 답한다.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도 없고 슬픈 일은 결국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괜찮아진다는 거다. 마냥 밝고 단단해 보이는 아이일지라도 자라면서 크고 작은 이별과 결핍을 겪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콘텐츠를 선보일 때 중요한 건, 진실을 말하면서도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고, 슬픔을 피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걸지도 모른다.
‘스파크쇼츠(SparkShorts)’의 <플로트(Float)>, <윈드(Wind)>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스파크쇼츠’는 픽사의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한 편당 10분 내외로 구성된다. 그동안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출시됐는데, 얼마 전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에 맞서 <플로트>, <윈드>가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됐다. 두 편 모두 아시안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아이들과 더불어 어른들이 겪는 슬픔을 담아낸다. <플로트>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들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던 아버지의 마음을, <윈드>는 지하 깊숙한 동굴을 탈출하는 손자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보낸 할머니의 마음을 따라간다.
두 시리즈 모두 공교롭게도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다. <플로트>를 만든 바비 루비오 감독은 실제로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뒀고, <윈드>를 만든 에드윈 장 감독은 홀로 자식 넷을 키우며 미국 이민까지 보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 ‘이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다며. <플로트>에서 ‘왜 넌 평범할 수 없는 거야(Why can’t you just be normal)’라는 대사나, <윈드>에서 할머니가 올려 보내는 도시락 통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감독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과거면서,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재이기도 하다. 이렇듯 두 시리즈는 모두가 한 번씩 겪어봄직한 ‘비슷한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탓에, 짧은 러닝타임에도 관객의 감정선을 사로잡는다.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그 나름의 비극을 마주한다. 어른을 상대로 말할 때와 아이를 상대로 말할 때 화법은 달라야겠지만, 콘텐츠에 슬픔을 담는 일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이유다. 콘텐츠를 보는 누군가가 ‘나를 봐줬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고,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 수 있게끔. 비슷한 맥락으로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날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요”라는 말을 부디, 아이들에게 쓰지 않았으면 바란다고 짚었다. 슬프지만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어린이날을 보낸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기에. 결국 좋은 말이나 콘텐츠는 아이들이 가진 슬픔을 천천히 헤아리고 조심스럽게 담아낼 때 빛을 발한다. 극도로 세심한 마음에서 진실과 더불어 위안을, 슬픔과 더불어 공감을 자아내는 콘텐츠가 나온다. 언젠간 나도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담아낼 수 있다면 더 바랄 일이 없겠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개봉 | 2015년
감독 | 피트 닥터
<플로트(Float)>
개봉 | 2019년
감독 | 바비 루비오
<윈드(Wind)>
개봉 | 2019년
감독 | 에드윈 장(장우영)
(이미지 출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