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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22. 2021

10년의 전투, 그 끝에 승리

<크래프톤 웨이: 배틀그라운드 신화를 만든 10년의 도전>


MMORPG만큼

흡입력있고, 처절하지만, 극적인 실화




포스트모르템(post mortem).


라틴어로 ‘죽음 후’를 뜻하는 단어. 사체를 부검하듯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을 말한다. 조직문화로 유명한 넷플릭스에서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퇴사 당일 동료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부검 메일’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부검’이 바로 이 단어, ‘포스트모르템’이다. 그간의 과정을 살피면서 잘못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고 그 해결책은 어때야 하는지 등을 살피는 일. <크래프톤 웨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크래프톤 웨이>는 게임 제작사 블루홀 스튜디오가 블루홀을 거쳐 크래프톤이 되기까지, 창업 이후 10년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읽어보니 자서전보다 사록에 가깝다. 극도의 투명성으로 크래프톤이 걸어온 길의 ‘명’은 물론, ‘암’까지 파헤치기 때문. 다른 경영서와 비교하자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해도 안됩니다’ 쪽이랄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글로벌 가입자 10억 명, 매출 1조 6천억 원의 게임 제작 명가가 되기까지 산뜻한 승리는 없고, 진흙탕에서 굴러가면서 처절하게 버틴 전투의 연속이었다. 전체 직원의 20%를 내보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의장 개인 재산의 2/3를 회사에 출자했던 대다수의 실패담, 그리고 정말 극소수의 성공담으로 페이지가 채워졌다.


비전과 도전, 의사결정과 소통, 인재와 조직. 거대하고 막연하게만 보이는 단어들에 구체적인 경험이 쌓이고, 극대화(maximization)와 최적화(optimization)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배그 출시 시점인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다다라서야 글의 호흡이 빨라지는데, 호흡과 상관없이 플레이어스 언노운(Players Unknown),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플레이어들 모두 스스로를 끊임없이 태웠던 이야기가 마음에 하나하나 박힌다.


게임이나 스타트업 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한 번쯤 무언가에 자신을 산화해봤던, 혹은 산화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 사놓고 계속 미뤄두다가 카페에서 콘센트 자리 날 때까지만 읽으려 했는데, 원래 하려던 공부는 접고 밑줄 좍좍 치면서 4시간 만에 완독했다. 특히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만 내가 뽑은 키워드 별로 추려서 적어둔다.




비전에 대하여


장병규는 ‘회사란 이익을 내는 곳’이란 정의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에게 회사란 혼자서 이루기 힘든 성과를 내기 위한 곳이었다.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혼자선 넘볼 수 없는 목표에 도전하는 곳. 그리고 개인이 결코 이룰 수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고 결실을 함께 나누는 곳. 그러기 위해선 조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명확한 비전이 필요했다. P33


비전을 창조하는 것보다 비전을 변경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창업가가 비전을 몇 년 만에 바꾸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비전을 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확고한 비전의 소중함을 이해하면서도, 비전 따위는 변경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P41


법인(法人)은 법이 만든 인간이란 뜻입니다. 꿈과 도전, 개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듯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만 함몰되었을 때 기업답지 못합니다. 이윤 창출보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나 꿈, 도전과 같은 가치를 확립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P63


요즘 경영진은 ‘시장을 이기는 기업은 없다’, ‘기업은 계속 성장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명제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루홀의 성장, 진정한 명가로의 도약을 위해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변화될 미래를 그리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담아낼 수 있도록 지금의 비전을 재검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264




실패에 대하여


실패를 통해 성장하려면, 개발자 개개인이 최대한 회사에 잔류해야 합니다. 개발부터 출시까지 제작 사이클을 한번 경험해본 팀이 가능한 한 온전한 상태로 새로운 개발을 해야 하고, 게임을 구현했던 프로그래밍 코드를 최대한 재활용해야 합니다. 저는 오히려 묻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모바일 개발 노하우가 블루홀에 얼마나 쌓였느냐고. (중략) 그런 면에서 블루홀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P437


최초일 경우, 예측보다 속도에 집중해야 한다. 계획보다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 최초이기 때문에 예측하고 계획하기 힘들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본질적인 것을 고민해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항상 부족하다. 따라서 다양한 시행착오와 도전을 병행해야 하며, 국지적 전투에서 지는 것을, 수많은 시도에서 실패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P537




리더에 대하여


리더는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중략) “최고를 지향하되 최선을 선택한다.” 이것이 PD인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 반대 쌍엔 이런 태도가 있다. “최고가 아니면 버린다.” 이런 방식이 맞는 프로젝트도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이번 BRO 프로젝트는 이 방식으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중략) 리더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팀원에게 결과물을 버리게 하면,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들의 동기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P470


MMORPG라는 게, 제대로 만들려면 정말 제대로 만들거나, 아니면 포기하거나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린 그런 비즈니스를 하는 겁니다. 마지막에 성과를 보이고 승리하면 되는 겁니다. P55


방향이 없는 실행은 무의미하고, 실행이 없는 방향은 공허하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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