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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작가 Aug 05. 2021

모든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구나


엄마가 행복해야 뱃속의 아기도 행복하다.



편안한 임신생활을 위해 생겨난 말이겠지만 꽤나 부담이 된다. 아기를 위해 슬프거나 화가 나서는 안되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웃어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에 무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마인드 덕에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내고 있으나 아기를 품는 열 달 동안 어떻게 매일이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매일 남편과 사이좋을 수 있을까.




임신 후 우리의 첫 부부싸움은 라면 때문이었다.

건강한 아기와 산모를 위해 영양제도 열심히 챙겨 먹고 음식도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나 초기 입덧은 피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데 시원 새콤한 동치미와 냉면육수만 생각났다. 울렁거리는 입덧 시기가 조금 지나고서야 먹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얼큰한 라면이 먹고 싶었던 날이다. 점심으로 아주 기분 좋게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점심은 어떻게 먹었냐 묻더니 갑자기 궂은 인상을 쓴다.


여태까지 영양제도 다 챙겨 먹고 건강식 위주로 먹어왔는데 갑자기 라면이 웬 말이냐며 지금껏 해 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아니고 영양소 따져가며 혼자 요리해먹다 그날따라 라면이 당겨 맛있게 먹고 기분 좋았는데 대뜸 무책임한 엄마가 되어버렸다. 아기를 가졌으면 알아서 몸도 생각해서 챙겨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최선을 다해 책임지지 않냐는 말이 가슴 아프게 꽂혀버렸다.


내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길래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한다고? 고작 라면 하나 때문에?



울렁거리는 입덧이 이제 막 끝나가서야 얼큰하게 속을 달래고 싶었다고, 한 번 먹는 거로 아기 어떻게 안 된다고, 라면이 몸에 좋지 않기로서니 책임감 없는 엄마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거냐고 울부짖듯 이야기하고 남편은 그런 내가 답답한 듯 몰아붙였다.


이 와중에 아기가 생각나 더 이상의 입씨름은 하고 싶지 않아 혼자 화장실로 들어가 눈물을 달랬다. 알아서 몸조심하고 있는데 무책임하다는 말로 무너뜨리는 이 예비아빠가 야속하고 속상한데 이 마음이 아기에게 그대로 전해질까봐, 아빠가 밉다는 감정을 아기가 느껴버릴까봐 내 가슴을 토닥이며 끊어내려 애썼다.




달랠수록 멈춰지지 않는 눈물에 또 마음이 안 좋다.

내 감정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인데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서 이렇다 하는 기분을 마음대로 느낄 수 없다니. 속상하다고 마음대로 눈물을 흘릴 수도 억울하다고 크게 화를 낼 수도 없다니.


 마음도  마음대로   없다는 사실과  모든  기분이 아기에게 전해지고 있을까봐 미안함이 동시에 몰려든다. 울고 싶은데 아기를 생각해 울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이 마음을  어렵게 한다.


 순간만큼은 아기를 잠시 꺼내 두고 온전히  감정을 느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아를 잠깐 옆에 두고 오롯이 감정을 흘려보낸 후에야 다시 뱃속으로 들여보낼  있다면,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되어  때쯤, 남편도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고 나타났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손을 내밀었고 맞잡은  손을 느끼며 엄마 아빠 화해했으니  감정도  느끼라고 아기에게 전하며 편안한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이 과정은 열 달 동안 몇 번이고 반복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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