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솔 Nov 28. 2023

구겨진 책을 고르는 마음

오늘은 퇴근 후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집을 사기 위해서이다.


이미 읽은 책을 산다고 하면 물음표를 띄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어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다음 그 책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미 본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들은 단지 읽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 책장에, 언제나 눈길과 손길이 닿는 그곳에 꽂혀 있었으면 하는 책들이 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을 찾아보니 교보문고가 있었다. 교보문고에서는 '바로드림'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바일로 책값을 결제하면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찾는 수고 없이, 전용 창구에서 책을 바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이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서 책을 구매하려는데 안내 메시지가 시선을 붙잡았다.


'이 책은 해당 지점의 마지막 재고입니다. 책의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으니, 매장으로 문의하여 책 상태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안내문을 보지 않았더라면 별생각 없이 결제를 마쳤을 텐데,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매장으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계단참에서 찬바람에 벌벌 떨면서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전화는 곧바로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바로드림으로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재고가 한 권뿐이라고 해서요. 책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데요."


"아, 네. 책 제목이 어떻게 되시나요?"


도서관 사서에게, 서점 직원에게, 심지어는 친구에게조차 책 제목을 말할 때는 왠지 긴장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배스킨라빈스에서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를 주문하는 순간의 민망함 같은 것이 일순 느껴진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숨을 들이쉬고는 또박또박 힘주어 책 제목을 발음했다. 단번에 알아듣도록 말해주지 않으면 책 제목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그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다행히 직원은 한 번의 시도만으로 책 제목을 알아들었다. 책을 창고에서 꺼내와야 한다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나는 또다시 벌벌 떨면서 기다렸다. 손을 뻗어 창문을 닫았지만 복도를 가득 채운 냉기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여보세요?"


"네."


"책 상태를 보니…… 으음……."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말끝을 흐리는 것은 단숨에 말해버리기에는 몹시 애매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직원은 겉표지가 살짝 구겨져 있다는 말을 하면서, 심하게 구겨진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으음……."


이제는 내가 말을 흐릴 차례였다. 구매를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니 직원은 구겨진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도착한 사진 속의 책은 모서리가 정말 애매하게 구겨져 있었다. 이걸 사, 말아?


그러나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 책을 사기로 결심했다. 때로 나는 일부러 약간의 하자가 있는 물건을 산다. 지금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뿐만이 아니라,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한 책이 바로 옆에 놓여 있을 때에도 종종 모서리가 구겨지거나 띠지가 살짝 찢어진 책을 고른다.


그런 행동에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인쇄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읽는 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은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팔리지 않겠지. 그러다 결국 끝까지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고 버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내가 사버리고 싶어진다. 잘 만들어진 책이 약간의 하자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다는 건 슬프기 때문이다.


서점에서는 작은 하자도 크게 느껴지지만, 막상 집에 사 들고 오면 대부분 '이 정도면 괜찮지, 뭐' 하는 마음이 된다. 너무 새것처럼 예쁜 새것만을 좋아하기보다는 약간의 흠이 있는 물건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런 마음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박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