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 NEED YOUR VOICE Aug 04. 2020

여성 인물 헌정글, 배우 샤를리즈 테론

모든 장르의 개척점에서

 *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때 나는 외국 배우에 관심이 없었다. 여러 외국 영화를 관람했지만, 출연 배우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훑는 일은 드물었다. 내가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보고 나서였다. 그것도 2015년 개봉 직후가 아닌 3년이 훌쩍 지난 시기에 VOD로 통해서 말이다. 액션이라는 장르에 흥미가 그리 높지 않았고 ‘매드맥스’라는 시리즈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뜻 관람을 결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노트북 모니터 너머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았을 때 감각적인 액션과 흡입력 넘치는 캐릭터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감을 담기에는 노트북 모니터는 한없이 작았고, 영화관 스크린으로 관람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작품 속 모든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중 단연은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였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핵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 퓨리오사는 물과 기름을 독점한 ‘임모탄’으로부터 착취당하는 여성을 구하고 같이 싸워나가는 인물이다. 임모탄과 전사들로부터 도망치던 퓨리오사와 여성들은 다시 되돌아가 그 땅을 차지한다. 거대한 무력에 맞서는 그들의 생존은 과장되거나 억지스러운 액션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솔직함이 좋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 누구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고, 지구를 구한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한 일본 매체 인터뷰에서 밝힌 샤를리즈 테론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투쟁에는 해방을 향한 절실함이 담겨 있다. 마침내 퓨리오사는 임모탄과 전사들을 물리치고 피폐한 땅에 독점됐던 물을 나눠준다. 퓨리오사를 필두로, 여성의 손으로 이뤄진 해방과 자유로 끝나는 결말부는 여러 이상향을 제시한다. 퓨리오사 캐릭터는 하여금 클리셰로 점철된 비현실적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액션 장르를 탈환하고 새로운 개척점을 만들었다. 여성 해방과 평등의 이야기를 그려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화사에 기록될 뛰어난 액션 영화이자 페미니즘 영화이다. 또한 샤를리즈 테론은 퓨리오사를 통해 수많은 액션 영화 속에서 늘 수동적으로 활용되던 여성 캐릭터의 위치를 파괴하고 전후 전무한 리더의 모습을 선보였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캐릭터 컬렉션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필모그래피가 꽤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텔링을 지닌 영화들로 채워져 있는데, 아마도 약간 싫증 내는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  -씨네21 인터뷰 중


영화 <올드 가드>


  나는 퓨리오사라는 캐릭터를 만난 이후로 액션 장르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고 진정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샤를리즈 테론의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열어보며 그의 무궁무진한 연기 변신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1995년 영화 <일리언3> 속 단역 배우를 시작으로 쉬지 않고 여러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갱신했다. 농담 섞인 위의 인터뷰 답변처럼 그는 모든 장르를 섭렵하고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시켰다. 같은 액션 장르라도 앞서 말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와 더불어 냉전시대의 삼중 스파이 요원 ‘로레인’을 담담하게 소화한 <아토믹 블론드(2017)>, ‘분노의 질주’ 액션 시리즈에서 기존의 이야기를 흔들어놓는 악역 ‘사이퍼’를 선보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2017)>,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불멸의 수호자 ‘앤디’를 연기한 <올드 가드(2020)>까지. 캐릭터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이 바탕이 된 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은 겹치는 이미지나 이야기 없이 전혀 다른 인물로 다가온다.


 

여성의 삶을 대변하고 기록하다


  “여성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탐구하는 작품 중에서 의외성이 있는 영화들에 주목한다. 유리천장에 도전함으로써 여성들도 동일하게 능력 있고, 싸울 줄 알고, 유머가 있다. (···) 스토리가 무엇이든 간에 여성 캐릭터에 대해 이런 접근을 하지 않는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기 어려울 것 같다. 한마디로, 오늘날 세상 속의 여성들을 반영한 작품이 된다.” - 씨네21 인터뷰 중 



영화 <노스 컨츄리> 


  샤를리즈 테론은 여성 인권에 대한 꾸준한 목소리를 내며, 차별당하는 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몬스터(2004>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에일린 워노스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여성으로서 겪었던 끔찍한 삶을 보여준다. 1984년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여성 노동자가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소송에서 승소하기까지의 실화를 다룬 <노스 컨츄리(2005)>에서는 여성 노동자 ‘조시’를 연기하며 직장 내 여성 보호 정책이 부재했던 과거에 여성들이 겪은 만연한 성폭력과 차별 등의 실태를 드러낸다. 미국 폭스 뉴스 설집자이자 최고 경영자였던 ‘로저 에일스’에 대한 성폭력 고발을 다룬 <밤쉘(2020>에서는 폭스 뉴스의 앵커이자 피해자인 ‘메기 켈리’를 연기하며 거대 권력에 맞섰던 여성들의 용기를 기록했다. 

  <툴리(2018)>라는 작품에서는 독박육아와 가사 노동의 현실 한가운데 놓인 ‘마이를로’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여성의 고통과 무게감을 전달한다. 산후우울증과 극심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툴리’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후반부에 이르러 ‘툴리’라는 인물이 마를로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끔찍한 허탈감은 피폐하게 얼룩진 수많은 여성의 불평등을 직면하게 만든다. 



전진하는 제작자의 길 

 

“영화 속 인물들이 제가 포용하거나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고 감정을 느낄 만큼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러한 거리감을 인식하면서 얼마나 강력한 이야기인지 깨달았다. 저희는 여성의 평등한 권리와 안전한 작업 환경을 위해 싸울 것이다. 누가 됐든 상관없이 함께 싸울 거다. 이 이야기의 좋은 점은 크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데도 궁극적으로는 한 배를 탔구나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 맥스무비 <밤쉘> 인터뷰



영화 <밤쉘>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가장 최근 개봉 영화 <밤쉘>과 더불어 그는 연기자뿐 아니라 영화 제작의 길도 이어왔다. <몬스터>, <몽유병(2008)>, <영어덜트(2011)>, <다크 플레이스(2015)>, <아토믹 블론드>, <툴리> 등.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와 제작을 동시에 도맡거나, 제작에만 참여한 작품도 있었다. 그는 앞서 말 한 <밤쉘>이라는 작품에서 제작자로서 겪은 투자 난항들 속에서 ‘중요하게 전해야 할 이야기’라는 하나의 확신을 끈으로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올드 가드>에서 또한 제작과 주연을 동시에 진행하며 하나의 SF 액션 시리즈의 시작을 열었다. 그는 강렬한 전사이자 불멸자들의 리더 ‘앤디’ 캐릭터를 통해 전례 없는 인물의 감정과 역할을 탄탄하게 표현했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나일’을 연기한 키키 레인은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멋진 배우는 나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확장시키고,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성장하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사실도 벅차다. 그녀에게 아주 많이 기댔다. 멍을 빨리 사라지게 하는 방법까지 배웠다. 위대한 배우다. 여성들을 영화 업계에서 이끌어주는 선구자나 다름없다."(출처 imbc)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샤를리즈 테론은 남성이 주를 이루는 영화업계에서 쉬지 않고 본인의 역량을 넓혀 왔다. 또한 본인의 영향력을 후배 여성들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밀어주었다. 키키 레인의 말처럼, 샤를리즈 테론은 영화업계에서 여성의 자리를 확보하고 늘려가는 데에 큰 노력을 하였다. 




  샤를리즈 테론의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하나의 게시글에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배우로서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잃지 않는 페미니스트이자, 선배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동료 여성과 후배 여성의 길을 터주고 이끌어주는 그의 행보에 존경심을 표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그의 스펙트럼이 기대된다. 언제나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의 연기를 응원한다. 





기획·글/ 산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