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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Apr 22. 2020

30대의 삶

홀로 섦에 대하여

올해로 ‘만’ 30세가 되었다. 더 이상 20대에 속할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왜 그렇게 애처롭고 끈질기게 그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지, 아직도 패기롭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30대의 삶은 나에게 무언가 다를 것을 요구할 것 만 같아 두려웠던 것 같다.


사실 중요한 건 ‘나이’와 같은 물리점인 '셈'이 아니었는데. 몇 해 전 학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아이들인데 어떡하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빛났고, 생기로웠고, 에너지가 넘쳤다. 정말 낙엽 하나가 떨어져도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20대를 회고한다. 나도 그랬었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로웠고, 즐거웠고, 신났고, 때로는 가슴이 무너지기도 하였고, 그렇게 일희일비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하나에도 웃는구나', '이런  하나에도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 내가 이제  아이들과는 다른 세대가 되었구나.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진다.  빛나는 청춘이 아쉬우면서도 막상 20대로 돌아가겠느냐, 했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20가 지나고 찾아온 지금의 평온함이 좋다.


이러한 감정적 30대에 더불어 수치적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30대가 되어서, 그리고 결혼의 과정을 통한 환경적 변화를 겪으면서, 이 모든 30대의 초입에서 나는 '관계' 앞에 헤매인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이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는 배우자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배우자는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자 유일한 친구이지만 동시에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 가깝지만 먼 관계다.

이렇게 독립된 가정이 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부모님과의 거리감, 어색함이 가져오는 슬픈 감정이 있다. 왕복 8시간 거리의 부담에 방문도 어려워진다. 남편이랑 같이 간다고 할 때에는 부모님 남편 양쪽을 신경쓰느라 두배로 힘들기까지 하다. 매일 한 번 이상 부모님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왜 더 멀어지는 것인지, 마음이 아프다. 아직 아이를 갖지 않았지만, 결혼을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독립된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의 지난 시간들, 부모로서의 책임과 삶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부모님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감사해진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언니도 결혼 후에는 자주 볼 수 없고, 그에 따른 거리감이 있다. 이 역시 마음이 아프다.

두번째는 친구 관계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였고, 몇은 출산의 과정도 겪었다. 나는 지난 5년여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이 친구관계의 멀어짐의 과정도 받아들이기가 어느 정도 힘이 든다. 20대 초중반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하였는데, 5년 후에 30대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 관계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어디까지, 어느 정도까지 친밀하여야 하는지 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만나는 횟수는 1년에 1~2번이면 많은 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살아가는 삶이 다르기에 공통 화제는 줄어들고 대화도 점점 줄어든다. 서로 말하지 않는 것이 많아지고, 그것이 거리감으로 다가오면 또다시 슬퍼진다.

마지막으로 직장, 사회적 관계가 있다. 2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했고, 대학원 생활을 하는 5년 동안 공백이 있었다. 따라서 직장에서 만난 사람 들과 지금까지 유지하는 관계는 없다. 직장생활 관계에 대한 기대감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만난 관계는 사회적으로 만난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나에게 어떠한 감정적 동요를 주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30대의 삶은 '홀로 서는 삶'이다. 홀로 서고 싶어서가 아니라 홀로 서야 하기 때문에, 홀로 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홀로 서는 나이다. 30대의 삶에서 나는 20대만큼 주변에 사람이 없고, 20대만큼 감정의 고저가 없으며, 20대보다 무료하고 평온하고 반복적인 그런 일상을 산다. 세상과 인류를 향한 거대한 목표와 열정보다는 커피 한잔이 주는 따스함과 같은 찰나의 행복에 의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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