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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May 19. 2020

박사과정에 대한 소고

인내와 성장에 대하여

언제나 우리의 기억이 그러하듯 타지에서 보낸 5년간의 석박사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 졸업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그 고됨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짜내고 기억을 되짚어야 할 만큼 그 기억이 아련하다.


박사 졸업을 앞두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시 박사를 할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다 알고 돌아간다면 안 할 것 같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거라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았을까. "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왜 박사를 받은 사람들은 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안한다고 할까요?"

웃으면서 대화가 끝났지만, 그만큼 박사 과정은 험난한 과정임을 반증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뒤로하고 박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그냥 그거 하지."였다. 처음엔 너무 듣기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해가 된다. 편한 길이 있는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냐는 거다.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는 착각,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질지에 대한 무지, 연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이상한 발상으로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박사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 무능력을 마주해야 했고, 비판에 무뎌지기까지 여러 날을 울었고, 직장생활보다도 혹독한 경쟁을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낙오되지 않고자 발버둥을 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인내심은 바닥이고, 박사과정은 웬만한 직장생활보다 고됨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좋아한다고 내 적성이라고 생각했던 연구는 지금도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박사 학위를 받는 것에 대한 성취감은 더 컸던 것 같다. 고통의 시간들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졸업을 위한 학위 수여식에 입장할 때의 그 울컥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흔히 박사학위는 아무것도 보장하는 것이 없다,  말한다. 박사 학위는 연구자로서의 하나의 자격일 ,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고소득의 전문직 직업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박사학위가, 당신이 당신의 선택으로,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겪고 꽤나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내었다는, 엄청난 인내의 과정과 개인적 성장을 '보장' 한다고 생각한다. 박사 과정은  길에 있는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림으로써 성장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게 내가 박사학위, 라는 껍데기를 통해 얻은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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