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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Nov 23. 2022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

다녀온 전시 리뷰 : 피크닉

남산 가까이에 있는 ‘피크닉’으로 가는 길은 서울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해요.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을 걷다 낡은 건물 몇 개를 지나 골목길에 접어들면 마치 다른 세상 같은 피크닉이 등장하죠. 피크닉에 다다르기까지 마주하게 되는 서울의 풍경은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자유롭게 혼재되어 있어서 더 낯선 여행지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디든지 여행지가 될 수 있죠. 지금껏 가보지 못한 장소는 물론이고 늘 다닌 동네도 어떤 때는 여행처럼 느껴지곤 하니까요.


지금 피크닉에서는 ‘국내여행’이란 제목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 마을과 도시를 그림과 영상, 사진과 글로 담은 전시에요. 마치 피크닉을 찾아가던 서울의 길목이 새롭게 느껴졌던 것처럼, 지금껏 놓쳤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을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볼 수 있어요.


편집/이미지 '마니'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떠나는 길의 풍경  

LARKET 촬영

여행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요? 아마도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행지를 정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니까요. 준비를 마치고 여행지로 향하는 과정도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되어주죠. <국내여행>의 시작은 ‘길을 떠나며’부터 시작됩니다. 화가 유근택은 출강을 위해 매주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고 해요. 버스 밖 풍경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고 스치는 장면들을 기억하기 위해 드로잉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렇게 13m 폭에 달하는 <풍경의 속도-서울에서 유성까지>의 그림이 완성돼요. 그림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보면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여정인데, 출발할 땐 아파트와 빌딩이 많지만 대전으로 갈수록 시골집이 띄엄띄엄 놓여 있고 논밭의 풍경이 펼쳐지죠. 전시장의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대전으로 향하던 작가의 여정을 함께 한 기분이 들 거예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모티프로 한 이규태 작가의 <향유>는 강가에서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노는 세 아이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줘요.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정철이 관동지역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돌아와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누어 온 백상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그제야 다시 만나 또 한잔하자꾸나.”라는 가사로부터 이규태 작가는 ‘일과 놀이 사이의 균형’을 떠올렸다고 해요. 빈 공간이 있어야 계속 다른 것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쉬어가는 공간이 있어야 다음을 위한 기운을 채울 수 있을 거예요.




바람을 듣고 초록을 바라보다  

LARKET 촬영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뤄진 한국의 지형은 여행지로 향하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능선과 능선이 맞닿아 다른 이름의 산이 끊임없이 이어지죠. 우리의 땅이 크지는 않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 산 덕분 아닐까요?


사진작가 김근원은 1954년 북한산에 오른 이후로 23만 장의 산 사진을 찍습니다. 빼곡한 그의 기록 덕분에 장날 귀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이가 스키를 타고 길을 터주는 모습, 한라산 백록담에서 캠핑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받아먹고 있는 설악산 용대리에서 키우는 반달곰 등 우리나라 산을 배경으로 일어난 낯선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김영일 사진작가는 40여 년간 평창의 산을 기록하며 남긴 사계절을 담아냈습니다. 사계절이 지나는 평창의 산을 10분간의 영상으로 엮은 작품에는 봄의 생명감과 여름의 활기, 가을의 아름다움과 겨울의 쓸쓸함을 지켜볼 수 있죠.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숲의 시간 한가운데에 빠져드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어요. 산에 이어 바다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 강요배 작가의 <쳐라 쳐라>는 제주의 거친 바다가 큰 화폭에 담겨 있어요. 제주에서 자라 많은 세월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다시 제주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을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길뿐이었다.” 이 작품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 보면 제주의 거센 바람이 보이는 기분마저 들게 해요.




마을 이야기  

LARKET 촬영

여행을 하다보면 정다운 마을을 만날 때가 있어요. 이를 테면 수백년간 마을을 지켜온 커다란 나무 아래 넓은 평상이 있는 그런 마을이죠. <국내여행>에는 여러 마을의 모습이 펼쳐져요. 시골 여행을 하며 점방(구멍가게)을 펜화로 그리는 이미경 작가의 <비봉슈퍼>는 정다운 마을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또한 커다란 나무를 패브릭에 프린트한 나무는 시골 마을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 같아요. 그 앞에는 노란 색의 평상도 놓여져 있습니다. 피크닉의 전시는 시간을 충분히 들이는 게 좋아요. 의자가 있는 곳에서는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전시의 하나인 소리를 들으며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요. 전시의 마지막은 피크닉 옥상으로 이어져요. 저 멀리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은 망원경을 보면 과거의 서울 모습이 보입니다.


여행은 결국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해요. 때론 시골 마을에서, 때론 마당에 하염없이 앉아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에서, 혹은 서울 어느 골목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모두 우리의 일상에 환기가 되어주는 여행의 순간 아닐까요?



⚫ 장소 : 피크닉
⚫ 주소 : 서울시 중구 퇴계로 6가길 30
⚫ 관람료 : 1만8천원
⚫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월요일 휴관)
⚫ 기간 : ~ 2023..02.19
⚪ 문의 : 02-318-3233




☕ 전시 보고 뭐하지? �

피크닉이 자리한 남산 근처에는 정말 갈 곳이 많아요. 길을 잃어 우연히 만난 곳에 들어가도 좋은 시간이 되어주죠. 무계획 여행처럼요. 카페 드누시는 피크닉과 엄청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걸을만 한 거리인 소월길에 있어요. 김치 볶음밥 위에 아보카도와 스크램블 에그를 얹은 김치보카도, 크림 라구 파스타, 아보카도에그토스트 등의 간단한 식사류와 치즈케이크, 스콘 등의 디저트를 팔아요. 간단히 한끼 식사를 하거나 늦은 오후에 당충전 하기도 좋은 곳이죠.

LARKET 촬영

⚫ 장소 : 카페 드누시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2길 17
⚫ 운영시간 : 오전 11시~ 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7시)
⚪ 문의 : 02-318-2437



만드는 사람들 - 라켓팀
마니(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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