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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 감로안 Jan 27. 2023

비거니즘 전성시대

당신에겐 소울푸드가 있나요? 5

 삶이 고달플 때나 힘겨울 때 나는 음식으로 치유합니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날 저녁에 챙겨 먹는 음식, 가족과 추억이 담긴 음식이 무엇일까? 아니면 내가 아끼고 자주 이용하는 식재료로 만든 나만의 치유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 음식 영화를 찾아보며 행복을 넘어 치유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카모메 식당’, ‘하와이안 레시피’,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49일의 레시피’는 가끔 힘겨운 일들이 생기면 찾아보는 영화 들이다. 


  2015년 리틀 포레스트 일본판을 보면서 영상 속 음식에 홀려 한동안 음식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임순례 감독이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은 채식주의자인 감독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음식들이 모두 채식이다. 도심 속 일상에 치여 허덕이며 한 끼 식사를 때우기에 급급했던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 해 먹는 음식은 손쉽게 끓여 먹는 라면이 아니었고 동네 친구들을 불러 먹는 음식이 삼겹살, 백숙이 아니었다.   

       

  자신을 치유하는 음식은 다듬고 씻고 조리하고 담는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관객도 막막했던 현재의 삶을 치유받는다.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 즐거움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안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혼자서 밥 먹을 때가 종종 있다. 성가시기도 하고 귀찮아서 김치, 김 몇 장으로 밥을 먹을 때가 있다. 그마저 귀찮을 때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 혼자서 밥 먹을 때도 채소를 다듬고 씻고 끓이고 찌고 조리해서 예쁜 접시에 담고 도자기로 빚은 수저 받침대를 놓았다. 수저 받침대는 나를 챙기는 하나의 의식이다.   

  

  찬바람이 뼛속을 에일 정도로 추운 날이면 해 먹는 음식이 있다. 이 때는 뜨끈뜨끈한 국물이 있어야 한다. 냉장고 속 남아 있는 채소들을 다 끄집어내서 커다란 볼에 담는다. 알록달록 채소 색깔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의식적으로 집에서 가장 예쁜 앞치마를 두른 후 당근, 양파, 애호박, 버섯, 감자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준비해 둔다. 따로 채수를 낼 필요가 없다.  

        

  준비해 둔 궁중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편 썬 마늘 3쪽을 볶는다. 마늘이 살짝 익을 즈음 양파를 넣어 갈색이 나올 때까지 볶는다. 벌써 코끝을 살짝 자극하는 연한 냄새가 흐른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음악이 필요해서 음악을 튼다. 양파에 이어 파프리카, 양배추, 감자, 애호박 버섯 순으로 넣으면서 볶는다. 준비해 둔 끓는 물을 붓고 강하게 한소끔 끓어오르면 약불에서 은은하게 익힌다. 그래야 채소의 깊은 맛이 국물에 우러나온다. 단단했던 채소들이 포슬 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 소금 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반쪽을 낸 방울토마토를 다섯 개 정도 넣는다. 토마토로 인해 묘한 따뜻한 맛이 난다. 이렇게 나만의 소울 푸드 ‘채소보양탕’이 완성됐다. 내가 가장 아끼고 자주 쓰는 그릇에 예쁘게 요리를 담고 식탁을 깨끗이 닦은 후 수저 받침대를 놓는다. 나를 아끼고 돌본다는 마음을 내면 조리 방법도 담는 그릇도 소홀할 수가 없다.     


  나를 돌볼 시간이 전혀 없었던, 지치고 외로웠던 하루의 끝에서 뜨거운 국물을 홀짝이며 그릇에 담긴 다양한 색깔의 채소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러다 보면 지금껏 쌓여 왔던 원망, 미움, 분노, 슬픔, 외로움, 온갖 감정들이 스르륵 눈 녹듯이 씻겨 내려간다.


  한 가지 더 내가 좋아하고 가족들에게 자주 해주는 음식이 있다. 다양한 채소를 모아 전통 발효 식품인 된장과 간장을 이용해서 친근하면서도 조금은 색다른 퓨전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커다란 접시에 된장소스를 머금은 연근, 버섯, 단호박, 가지, 양파, 파프리카, 청경채, 브로콜리를 담고 현미밥 반공기를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두 스푼 만들어 담는다.

  

  전통 된장과 간장 베이스로 만든 소스는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아이들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음식은, 먹어 본 이들에게 나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 되었다. 채식을 사랑하게 되면서 채식은 나를 사랑하는 적극적인 표현이며 기꺼이 나를 치유하는 음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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