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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이 Apr 15. 2022

5분 만에 성공한 내 인생 첫 히치하이킹

사랑하는 제주 이야기 ep.01


내가 즐겨하는 여행 스타일은 '소자본 서바이벌'이다. 


이 여행의 특징은

1. 숙소비를 최대한 아낀다. 카우칭 서핑을 할 수 있다면 대환영. 안 된다면 제일 저렴한 숙소로.(이제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컨디션의 숙소를 찾아내는 노하우가 생겼다.)

2. 예전에 해외여행 다닐 때에는 피자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겨우 버틸 만큼 무모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먹는 것은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호화롭지는 않아도 탄단지 3대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3. 걷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간혹 힘이 든다면 히치하이킹을 도전해보자.


오늘은 제주도에서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이야기는 먼저 금오름에 오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제주도 서쪽 한림읍에 위치한 '금오름'.



혼자 놀러 왔던 제주도에 친한 동생이 놀러 와서 하루 동안 동행하였다.

덕분에 금오름에 함께 오를 동료가 생겼다.




제주에서 다수의 오름을 올랐지만 금오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르는 길이 아스팔트 길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올라가고 있으니 피톤치드 가득한 숲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입구에서부터 10-15분 정도 올라온 것 같은데 벌써 정상에 가까워졌다.

오르막이어서 그런지 숨이 살짝 가쁘긴 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가운데에 연못이 보인다.

'연못을 품은 언덕'이라는 금오름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린다.




날이 흐려 아쉬워하는 내 볼멘소리를 들었는지 짙게 껴있던 구름들은 비켜서서 푸른 하늘을 내어준다.




짧은 산길을 올라 분화구 안으로 들어오니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

정상 한가운데에서 만난 연못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연못을 끼고 한 바퀴 돌며 각자의 방식과 자세로 사진을 남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금오름.

도시와 단절된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금오름 -> 카페(월령리)(현재 위치) -> 협재 해수욕장(목적지)


금오름에서 내려와 월령리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제 숙소가 있는 협재 해수욕장까지 가야 할 차례다.

내가 있는 카페에서 협재까지는 8km 정도 떨어져 있어 로는 10분, 대중교통으로는 20분 정도 가야 했다.

택시 타기에는 돈이 아깝고 대중교통 이용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평소 해보고 싶었던 엉뚱한 생각을 실제로 도전해보기로 한다.


바로

'히치하이킹.'


항상 생각만 했었지 막상 실천해 본 적은 없었다.

우선 준비물이 필요했다.




카페에서 정성스럽게 나의 목적지를 적어서 나왔다.

이따 만나게 될(?) 은인에게 드리는 꽉 찬 하트도 함께 담았다.

러브레터라도 적은 듯 종이 한 장에 설렘 가득해진다.




돌담길과 돌하르방 아저씨를 지나 도로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드디어 도로에 나온 나는 준비해온 종이를 펼쳐 든다.




내가 서있던 곳은 한산한 도로였다.

1분 동안 5대는 지나갔으려나.

그렇게 몇 분 동안 지나가는 차들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서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 가만히 서있으려니 꽤 힘이 들었다.


그 순간 흰색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내 앞을 지나치더니 급하게 차를 세우고는 비상등을 깜빡인다.


혹시나 하고 차로 달려갔다.


"협재해수욕장으로 가요?"


차에 타고 있던 검게 탄 아저씨가 물어온다.


"네, 저희 숙소가 협재에 있어서요!"


"타세요, 태워 드릴게."


그렇게 내 인생 첫 히치하이킹은 제주도에서 5분 만에 성공을 했다.




덥지 않냐며 에어컨 바람을 최고 풍량으로 틀어주신다.

알고 보니 원래 가시는 길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흔쾌히 웃는 얼굴로 태워주신다고 하셨던 것이었다.

다음에 제주도 놀러 오면 들르라며 명함도 주셨다.




그렇게 나는 더운 여름날,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시원하게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씨 덕분에 제주도에서의 추억 하나를 더 적립했고 온종일 아니 지금까지 이 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저씨는 한 날의 선행이 한 사람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는 걸 아실까?





협재 해수욕장에 내려 바다를 보니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마구 생겼다.

오늘 숙소도 해수욕장 바로 앞이겠다, 같이 온 동생한테 바다에 뛰어들자고 제안한다.

동생도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흔쾌히 수락했고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던 우리는 해수욕장 바로 앞 편의점에 들어가서 수영복 두 개와 돗자리 하나를 대여해서 바다로 냅다 뛰어들었다.



협재 해수욕장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몸에 묻은 흙만 대충 툭툭 털어낸 뒤, 젖은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한다.

우리가 예약했던 숙소는 '1미리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이다.




협재 해수욕장에서부터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가니 먼저 반겨주는 것은 사장님이 아닌 고양이들이었다.

제주도에는 고양이가 참 많은 것 같다.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인지 하나 같이 다 애교가 많다.




사진을 찍으려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 나타났는지 자꾸만 내 카메라 안에 들어와 있다.




마당에 있는 해먹에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생각도 잠시 쉼을 얻는 느낌이다.




밤이 되면 마당은 조명으로 은은한 노란빛의 색을 입는다.



마당에 앉아서 야식으로 먹는 라면


야식으로 라면을 먹은 뒤 해먹에 누워 달을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 날 밤, 제주를 향한 내 사랑은 밤과 함께 더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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