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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이 Mar 24. 2022

몽골 사막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몽골_고비사막 ep.01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를 태우러  봉고에 짐을 싣는다. 짐만 보면 이민 간다고 해도 아마 믿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막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을 누릴  없게 된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챙긴 짐이 어느새 봉고의 반을 채웠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서울 촌놈은 항상 잘게 조각난 도로들만 보고 살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끊기지 않은 도로를 보니 기분이 탁- 트인다.




도로 옆은 물론 한가운데를 아예 점령하고 있는 가축들.




나는 평소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저녁 시간에 EBS에서 방영되는 '세계태마기행'이다. 그중에서도 몽골의 사막과 초원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라면 빠짐없이 챙겨 본다.



이곳에 오니 EBS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유목민을 실제로 만났다.

이제 여정을 시작한 지 겨우 1시간이 지났다.


나의 여정은 시작 1시간 만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차로 한참을 달리다 잠시 볼일도 보고 쉬어갈 겸 멈춰 섰다.

고비에서는 차에서 내린 그곳이 화장실이다.

수풀이 있다면 근사한 화장실인 것이고, 아니라면 각자 다른 방위를 향하여 화장실을 만들면 된다.




첫째 날, 우리는 '미니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웅대한 절벽과 그 끝에 서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지평선은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절벽 여기저기 다 올라가 봐야지 했는데, 막상 하나의 절벽에도 제대로 오르기 힘들다.

주변에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건물이라든지, 심지어 가로등조차 없으니 얼마나 큰 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큰 것이 마치 거인들이 사는 나라에 들어온 것 같다.

항상 몸도 마음도 크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뒤, 첫째 날 숙소로 향했다.





우리의 첫째 날 숙소.

푸른 하늘 아래 그리고 드넓은 초원 위에 있는 우리의 숙소는 이보다 더 근사할 수가 없다.




이곳에 살고 있는 유목민께서 우리를 초대해주셨다.

그리고는 몽골의 과자와 양 우유를 푸짐히 대접해주셨다.

비스킷은 퍽퍽하니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지만 고소하게 먹을 수 있었고 양 우유는 나에게 살짝 비릿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자꾸 이것저것 내오셨다.




다들 게르에 누워 낮잠을 청할 때 나는 나와서 무작정 걸었다.

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뒤돌아보지 않으면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마치 제자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다.

목적지와 이정표도 없이 어디를 향해 걷는지 알 수 없는 이 길을 걷고 있으니 두려움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두려움이 차오르던 찰나 마침내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걸리는 것 없이 지평선만이 한 줄로 남아있다.

수직적인 직선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직선 위에 놓이니 가슴이 뻥-하고 뚫리며 두려움도 가신다.

옷과 신발 모두 다 벗어 던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계속 걸었다.

대자연 앞에 문명시대 이전의 모습으로 있으니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으며 본래 문명인의 모습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몽골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져있는 신라면. 괜히 반갑다.








이곳에서는 해가 지면 달과 별들 말고는 빛을 찾을 수 없다.

도시에서 보다 이른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버너, 냄비, 쌈장, 물 모든 재료는 집에서 챙겨 왔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삼겹살이라.

나름 근사하다.

아니 매우 훌륭한 저녁이 될 것 같다.




고기는 아빠와 나, 남자들이 담당한다.

아, 참고로 우리는 아빠와 여동생 그리고 현지 가이드와 운전기사 그리고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여정을 함께 한다.




사막에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는 소리와 기름진 냄새가 퍼져나간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서 올려다본 하늘은 가히 경이로웠다.




아까 우리를 초대해준 유목민 게르에 놀러 갔다(무려 혼자).

말도 안 통하는데 몸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게르 안에서 반짝이는 병을 들고 나온다.

보드카.

나한테 한잔 건넨다.

나는 넙죽 받아먹는다.

한 모금 삼키니 편도에서부터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을 느낀다.

식도를 지나 위에 떨어지니 배가 뜨뜻해진다.

나름 괜찮았다.

평소 술을 잘 못해서인지 아니면 술이 세서인지 취기가 금방 오르는 것 같다.




서울에서는 해가 질 때 항상 건물에 숨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는데  이곳에서는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것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 앞에 앉아 의자를 펴고 맥주 한 잔을 따랐다.

연신 내 입에서는 '행복해', '아름다워' 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이곳엔 숨을 곳이 없다.

햇빛은 모든 곳을 고루 비추고, 어둠은 깊숙한 곳까지 공평하게 내려앉는다.




저 멀리 있는 초원에도, 우리들의 게르에도, 그 걸 감상하고 있는 나에게도.

이 초원 위에 있는 모든 존재가 공평하게 축복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사막에서의 첫째 날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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