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의 매력
자연 속에서의 쉼을 느끼고 싶어 알아보던 중 청송군에 있는 '창실고택'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고민 없이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이것저것 물어볼 겸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서울에서 가는 방법을 여쭤봤는데
'청송 터미널'까지만 오면 데리러 온다고 하셨다. (친절하셔라)
그런데 나는 오늘도 이상한 오기가 생겨 굳이 나만의 방식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안동-청송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선 내가 택한 경로는
[서울->청송터미널->사장님 픽업]
이 아닌, 오롯이 나의 힘으로 찾아가고 싶었고 (참았어야 해..)
[서울->안동역->길안정류장->덕천 2리 하차->도보로 이동]
라는 경로를 택했다.
원래는 다음 날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안동역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길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예정보다 하루 빠르게 출발했고 탑승 마감 2분 전, 마지막 기차에 급하게 올라타 안동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근사한 숙소도 서둘러 예약을 했다.
역시 근사한 숙소(모텔)이다.
혼자 온 나를 외롭지 않게 벽면에 수놓아진 많은 입술들이 반겨주고 있다. 조명도 아늑하다.
급하게 기차에 몸을 던진 터라 저녁도 먹지 못하고 안동에 떨어져서
숙소 들어가기 전에 든든한 요깃거리를 사갔다.
이 숙소의 놀라운 점은 내가 지불한 저렴한 이용료로 조식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장님 대박나세요
안동에 사는 친한 형이 안동에는 젊은 사람들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다고 했는데 진짜인 것 같다.
음,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청송으로 출발하기 전, 간단한 점심을 먹으려고 돌아다니다 발견한 맛집 '보리밥'.
저렴한 가격인데 심지어 맛집이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여정을 이어간다.
내가 점심을 먹은 곳(중앙문화의거리)는 안동역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곳에서 '창실고택' 가는 방법은
1.중앙문화의거리 맞은편 홈플러스 앞에서 628번 버스를 탄다
2.길안-진보(길안정류장)에서 버스를 환승한다.
3.덕천 2리 하차 후 도보로 이동
으로 상당히 간단해 보인다.
우선 1번은 어렵지 않게 클리어- 했다.
하지만 진짜 여정은 2번부터 시작이었다.
길안 정류장에 내려 다음 버스의 시간표를 찾아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어르신께서 알려주셨는데 내가 타려는 버스가 오전, 오후 그리고 이른 저녁. 하루 딱 세대 다니는 버스라고 하셨다.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나 이곳에 버려진 건가..'
이곳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아, 다방은 있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나.
'근데 만약 오늘 마지막 버스가 이미 떠났으면 어떡하지?'
이래저래 많은 걱정과 고민들이 섞여 식은땀과 함께 흘러내리던 참에
아무런 숫자도 적혀있지 않은 새빨간 버스가 당당히 정류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회사에서 돌아온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댕댕이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마냥 반가운 마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가 기사님께 여쭤봤다.
"기사님, 혹시 덕천 2리 가는 버스 맞나요?!"
시크한 기사님은
"타세요."
기사님이 던진 세 음절이 어찌나 내 마음에 큰 감동을 주던지..
'역시 나는 럭키 가이였던 것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타서 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대려고 하는데
단말기가.. 없다..?
"기사님, 카드는 어디에 찍어야 하나요?"
"카드는 무슨, 현금만 돼요."
"네..? 저 지금 현금이 없어서요.. 어떻게 안 될까요?"
"카드 없으시면 저 짝 위에 은행 가서 돈 뽑아오세요. 3분 밖에 못 기다려요."
그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지?
아까 사온 술.. 기사님 왠지 술 좋아하실 것 같은데 버스비 대신 드린다고 해볼까.'
'과연 은행은 3분 안에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무거운 가방을 꽉 쪼여매고 기사님이 가르킨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머지 않아 은행이 보인다.
atm 앞에 서서 내 카드를 우겨넣는다.
1만원을 출금한다.
얼마나 지났지.. 시계를 보니 대략 3분이 지난 것 같다.
은행에서 출금한 1만원.
그리고 앞에 계신 상인 분한테서 바꾼 잔돈들.
이 상황이 너무 웃겨 은행에서 나오자마자 인증샷 하나 찍고 다시 냅다 뛰었다.
뛸 때마다 가방이 내 등에 애처롭게 매달려 중력을 더하고 있다.
짐을 싼 건 나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가방이 더 무거운 것 같다. 좀 더 미니멀하게 살자 내 자신아
아까 그 새빨간 버스가 정류장을 나와 나한테 엉덩이를 보이며 슬금슬금 도망가고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겨우 따라잡았다.
"아이고, 출발 시간 많이 늦어졌네. 얼른 타세요."
알고 보니 이 기사님, 츤데레였다.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헉헉.. 감사합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는다.
긴장감과 걱정으로 가득찼던 내 몸이, 온 힘을 다 썼더니 의자에 걸쳐져서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좀 쉬면서 가야겠다.'
알고 보니 이 기사님, 투머치토커 셨다.
가는 길 내내 말을 걸어오신다.
나 때문에 늦어져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달리는 버스의 창문들은 열려있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느라 기사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내 대답은 필요 없으신 모습이다. 말을 걸고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대화가 끝났나 싶어 눈이라도 감을라 할 때면 어김 없이 말을 걸어 오신다.
기사님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덕천 2리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천 2리 정류장에 내리면 걸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네이버 지도를 보고 걸으면 걸을 수록 길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잠시 풍경에 취해 감상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인도는 사라지고 차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때마침 쏟아지는 소나기에 결국 전화를 들어 사장님께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책방 예약한 사람인데 제가 여기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여기.. 주위에 뭐가 보이냐면.. 산과 전봇대 그리고 차도요..
아, 지도를 보니 조금만 가면 덕천 3리 정류장이 있는 것 같아요."
"네네, 거기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렇다. 나는 길을 잃었고 도저히 내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사장님께 구조를 요청했고
사장님의 출동 시간은 5분 이내였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차로 이동하니 너무 편한걸..
그치만 다음에도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을 것 같다 ㅎㅎ
그렇게 사장님의 도움이 보태져 겨우겨우 '창실고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그래 이 거지!'
아멘. 목 마른 사슴은 따르겠습니다. 그저 멋있는 사장님.
내가 예약한 방은 '책방'이라는 가장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용하기에는 물론 둘이 누워도 충분한 아늑한 방이었다.
처음에 이런 고택에서의 숙박은 비용이 꽤나 비쌀 줄 알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생각보다 저렴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런 곳에서 지내도 되나요..
내가 도착하기 전, 밤에 추울까봐 아궁이에 장작 때고 계셨다는데 너무 서윗하신 사장님.
창실고택은 방에 화장실이 딸린 방이 있고,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방이 있어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먼저 여쭤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책방은 앞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는데 화장실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공용 샴푸, 린스 그리고 샤워젤 까지 갖춰져 있었다.
아! 개인적으로 고택을 예약할 때에 추천드리고 싶은 방법은
1.먼저 내가 가고자 하는 날에 다른 방의 예약이 있는지 확인하고
2.예약 없는 날을 골라 예약하시는 걸 추천 드린다.
사실 고택 여행의 묘미는 마루인 것 같다.
보통은 (예를 들면 사랑방과 같은) 큰 방을 예약한 이용객이 마루를 사용하게 된다.
개별 마루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내가 찾아본 고택들의 모습은 큰 방에 마루가 딸려있었다.
그렇다면 큰 방을 예약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큰 방이 이미 예약이 되어있거나
혼자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때문에 큰 방을 예약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예약한 날에 다른 이용객이 없다면
마루 프리패스 이용권도 같이 구매한 셈이다.
실제로 이번 여행도 예약 전에 다른 이용객이 없는 걸 확인하고 왔기에 편하게 마루를 사용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기가 지루해질 때 쯤, 바로 앞의 논을 따라 마을을 산책하면 된다.
마을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고 한적한 동네인 것 같다.
그렇게 걷다보면 귀여운 생명체들이 나타나 내 심장을 마구 폭행한다.
저 고양이는 이 마을에서는 나름 유명한 고양이인 것 같은데 애교가 어마어마하다.
내 앞에 나타나 발라당- 드러누워 그르렁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를 요염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조금만 걷다보면 '송소고택'이 나온다.
마침 내가 간 날에 가이드 분이 설명을 아주 열심히 하고 계셔서 마치 같이 온 아들(?)행색으로 아줌마 아저씨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열심히 설명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상주하시는 직원? 분께 주변 맛집을 여쭤봤더니 갑자기 명함들을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신다.
이 곳 분들은 다들 스윗하시네.
해가 금방 넘어간다.
배가 고파온다.
근처 식당은 나와있는 영업시간과는 다르게 일찍 영업을 종료하신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이곳에 식당은 그 곳 뿐이라는 거..
결국 핸드폰을 꺼내들어 가까스로 치킨집 하나를 찾아내 시켜먹었다.
보아하니 치킨집이 거리가 꽤 있어보여 하나 시키기가 괜시리 죄송해서
치킨과 피자..두개를 시켰다. 그래 내일 아침에도 먹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키길 잘했다.
사장님이 직접 배달 오시는데 나한테 하소연이란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거리가 있어서 하나만 시키면 배달 오기가 사실 힘들다 하시며 많이 속상해하시는 얘기였던 것 같다.
한 10분 정도 얘기를 듣고 나니 배가 더욱 고파져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치킨 피자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혹시 뚜벅이시라면! 저녁거리와 먹을 것을 넉넉하게 장을 봐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달이 밝게 떠올랐고, 한라산을 땄다.
청송인데도 제주도 향이 물씬 나는 것 같다.
평소 술도 잘 안 마시면서 욕심을 한껏 부려 한라산에 동동주까지 데려왔다.
무슨 조합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다음 날 숙취 쩔고 머리 깨지는 조합 ㅎㅎ
나그참파 대신 피워놓은 모기향과 사장님이 맛 보라며 주신 곶감은 이곳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준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나의 여정도 내 옆에 누워 같이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