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이 Mar 29. 2022

멈출 줄 모르는 말을 타고 몽골 사막을 질주하다

몽골_고비사막 ep.02


(이어서)

오전 일곱 , 평소 같았으면 침대에서 뒤척이다 겨우 몸을 일으켰을 텐데 알람도 없이 눈이 번쩍 떠졌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룻밤을 보내다니, 꿈만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게르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찡그러진다.

퉁퉁 부어 무거워진 눈을 간신히 들어 올리고 문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활짝 켠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잠을 깨우고 한데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메뉴로는 식빵, 과일, 견과류 그리고 계란 프라이 등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떠날 준비를 한다.



한적한 시골길


하룻밤 사이 정들었던 게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탔다.

어제처럼 가축들이 점령한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한적한 시골길을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표지판 하나 없이 길을 찾아가는 운전기사를 보면 참 신기하다.

사막에서의 길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찾아가는지.


용하게 길을 찾아가던 기사가 신기하던 찰나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운전기사는 같은 곳을 두어 번 돌더니 근처 보이는 게르에 가서 길을 물어본다.

민망해하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낀다.

'역시, 기계가 아니었어.'



차로 한참을 달리다 잠시 쉬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목적지인 '욜린암'에 도착했다.

'욜린암'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협곡이다.

보통 6-7월까지 얼음을 볼 수 있는 얼음 협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금은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욜린암의 얼음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 빙하가 녹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반성한다.




우리는 입구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 내가 만난 말은 브라운색의 털에 말갈기는 밝은 아이보리 색으로 빛났다.




등에 올라타기 전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얌전한 성격은 아닌 듯했다.

조심스럽게 말의 등에 올라타 멋지게 달릴 것을 기대했는데 꼬마 가이드가 말의 고삐를 잡고 천천히 끌고 간다.

나도 말 위에서 얌전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약 올리기라도 하듯 내 앞에서 묘기까지 선보인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아빠는 벌써 말을 몇 번 타보셨다고 도움 없이 혼자 말을 다루신다.




우리는 각자의 말에 올라타 차례대로 출발했다.

그렇게 말은 오늘 하루 우리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양 옆에는 돌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우리는 그 사이 좁은 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나고 있으니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웅장한 배경 속에 들어와 있는 주인공 마냥 기분이 우쭐해진다.

'허리춤에 칼이나 활만 차고 있었어도 기분이 더했을 텐데!





길이 갈수록 험해져 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큰 몸집을 뽐내는 돌산들을 지나,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지나니,




하늘에 가득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다.

협곡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중이다.

'오크(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악한 괴물 종족)'들이 출몰할 것 같던 스산했던 협곡의 분위기는 푸른빛을 되찾은 평화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곡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그 끝은 매우 날카로워 보인다.

어떤 바람이 불었기에 이리도 날카로운 것일까.

어떤 세월을 보냈기에 살이 다 깎여나갔을까.

문득 본래의 모습은 어땠을지, 어떤 세월을 살아왔을지 궁금해진다.


둥글둥글했던 나에게 가끔씩 날카로운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세월을 지나며 살이 깎여나간 모양이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왔노라 푸념 섞인 위로를 건네본다.




올 때 어느 정도 말을 다루는 법을 배웠겠다, 차로 돌아가는 길 동안에는 혼자 말을 타보고 싶다 말했다.

꼬마 가이드가 고삐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고삐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양발로 말의 옆구리를 '툭-' 치며 "가자!" 외쳤다.

그러자 말이 머리를 흔들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어어..'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속도를 내자 겁이 나기 시작한다.

고삐를 콱- 움켜쥐고 당겨본다.

그러자 말이 고개를 쳐들고는 다시 속도를 줄인다.

오,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것 같다.

이번에는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겨 왔던 길로 되돌아 가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 이번에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른쪽 절벽 위를 향해 달린다.


"야, 저기는 길이 없잖아. 멈춰!"


그러더니 가파른 절벽에 올라서고는 멈춰버린다.

어딘가 심통이 난듯한 모습이다.

말이 내 말을 듣지 않자, 다시 겁이 나기 시작한다.


"알겠어, 미안해. 다시 가보자."


겁이 나는 마음을 숨긴 채, 말의 등을 두 번 툭툭 두들기며 달래 본다.

말은 절벽에서 내려와 아까 달리던 방향으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속도를 더 내고 있다.

고삐를 잡아당기며 "워- 워-"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겁에 질려 식은땀까지 난다.

겨우 멈춘 말에서 내리고 싶었다.

마침 우리의 일행인 몽골 가이드가 혼자 말을 끌고 내 뒤까지 쫓아와 있었다.

나는 말에서 내리고 싶다고 말하자 자기 말에서 내려서는 내가 탄 말의 고삐를 잡아주었다.




그렇게 하여 내가 타고 왔던 말은 같이 왔던 꼬마 가이드에게 넘겨주었다.

다행히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아 우리 가이드와 함께 걸어가기로 한다.

가이드도 말에서 내려 나와 같이 걸어간다.

나보고 말을 끌어보겠냐는 말에 나는 흔쾌히 말의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걷다가 달려보기도 했다.





나의 첫 승마는 몽골의 초원에서였다.

웅장하게 펼쳐진 돌산들 사이에 흙밭이 깔려있고 틈틈이 자라난 잔디는 푸른빛을 더했다.

말 위에 있으니 마치 '레골라스(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물)'라도 된 듯 기분이 흡족스러웠다.

하지만 서투른 실력으로 말을 타서인지 천국의 문턱이 살짝 보이던 순간도 있었다.



자연과 교감 중인 '나'


말 위에서 느꼈던 따뜻한 체온,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작은 꽃, 저 높은 바위 위에 모습을 드러낸 산양 그리고 어느 순간 맑게 갠 하늘까지 욜린암에 있던 모든 순간들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에서가 아닌, 사람과 자연에서의 교감은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고 따뜻함을 선물해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몽골 사막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