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개 Apr 07. 2022

나.




나는 가끔 나를 만나는데, 나는 나를 모르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어렵고, 우연히 만난 내가 내 맘에 드는 내가 아니면 나를 멀리하고, 간혹 경멸을 하기도 하고, 그런 내가 나에게 들키게 되면 나는 나를 증오하고 나를 살해하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내가 그런 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공포에 질려 갈등을 하다가 내가 믿고 의지하던 나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면 듣고 있던 현명한 나는 즉시 사실을 고백하라 말하고, 나는 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나는 그 자백을 근거로 나를 고발한다. 나는 피의자로 법정에 서게 되고 그 사건의 판결을 맡게 된 나는 나를 변호하는 내가 너무도 어설프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당당한 것을 질책할 것이고 그런 나는 분명 뻔뻔한 나를 알기 때문에 내가 나를 무혐의로 석방을 하게 되면 그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이므로 나는 나를 사형에 처함으로써 그나마 나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한다.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등장하는 나는 나를 죽이는 과정이 내가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의문을 갖고 망설이는 순간, 내가 나를 살리는 것이 과연 부도덕 한지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는 순간, 그것을 지켜보다 못한 나는 나 스스로 뛰어 내림으로서 지금까지의 나에게 나의 의지와 내가 나를 사랑하였다는 내 마음을 확실히 증명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런 나에게, 나에게 증명하는 나에게, 나는 빛나는 양심을 향한 훈장과 함께 내가 모든 나에게 모범이 될 것을 독려하며 나를 앞세우고 행진하는데 그런 나를 보는 많은 나는 나에게 경외를 담은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전지하고 전능한 것이 나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을 내가 나와 함께 나를 위해 나에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빛나며 혹은 어두운지 찬란한 태양도 나에게 가려지길 꺼려해 미리 숨어 버리거나 내 등 뒤로 사라져 버리는데 이런 내가 계속되어야 하는 나는 얼마나 완벽하고 위대하며 또한 피곤한 존재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의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