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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26. 2022

마지막 메리크리스마스

아이들은 뒤늦은 선물 뜯기에 여념이 없던 지난 저녁, 영상통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엄마. 활짝 웃는 미소가 잠시 보인 뒤 화면은 아부지의 수척한 얼굴로 가득찼다. '메리크리스마스' 인사했다. 아부지도 '메리크리스마스' 하며 손을 들었다. 그 누구도 메리하지는 않았다. 생명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빛에 크리스마스도 그 빛을 잃는 느낌이었다.


아부지는 지난 화요일 호스피스 병동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패혈증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온 가족이 죽음의 문턱을 허덕이며 넘은지 2주가 지났고, 그 시점 섬망과 혼수상태의 기로를 넘나들던 아부지는 기적 같이 생명을 되찾으셨다. 24시간, 48시간을 예상하던 의사들은 멋쩍었겠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인사는 남기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건 망구 내 이기적인 생각일뿐이란 걸.


모두가 온기와 평안을 바라는 연말, 차가운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이런 에피소드가 띄엄띄엄 있을 때마다, 관련한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간다. 크리스마에 관한 아부지의 기억. 뭐든, 아부지와의 대부분 기억은 교회에서의 모습과 활동이 떠오르는 걸 보면 아부지는 진짜 뼛속까지 목사였고, 난 뼛속까지 목사 딸이었다 보다, 싶다.


언젠가부터, 거리찬송을 시작했었다. 새벽송이 없어지고, 그 대신 온 부산 시민이 밀집해 있던 남포동 한 복판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하며 사탕을 나누어줬었다. 사춘기의 패기와 철없음은, 지금 하라고 하면 뒷걸음 먼저 치게 만들 그런 낯뜨거운 행동도 서슴없이 실행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와중에, 나는 우리 아부지가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평범하고 진부한, 꼰대같은 목사들은 생각해내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척척 내고, 실행시키는 아부지는 분명 남다르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 아부지는 사춘기 시절 내 자아상과 가치관을 확립해가는데 있어 대단히, 긍정적인 동일시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내가 목사딸이라서 기 죽은 적은 없으니까.  떠올릴수록, 아부지로서의 기억은 흐릿한데, 목사로서의 기억은 선명해지는 걸 보면, 나는 곧 죽어도 목사딸인가보다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아부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할까.

지금 아부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기나긴 겨울밤을 버티고 계실까.

2022년의 모든 세레머니가 아부지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감히, 떠올리기는 하셨을까.


1월에 엄마의 생신과 연달이 있는 딸자식의 결혼기념일(아마 기억은 못하시겠지)에 아부지는 어떤 모습으로 축하의 메세지를 전해주시려나. 그 때도 마지막은 떠올리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또 주어진 하루치의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면.





아부지는 아이들에게 '선물은 마음에 드냐' 정도의 질문만 하신 뒤, 이내 '끊자' 하셨다. 아이들의 즐거움도 민망해졌다. 아이들도, 더이상 희망과 기쁨이 될 수 없는 것 같아 무력하기도 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였는데, 더이상 드릴게 없어 무능한 내가 밉기도 하다.


그렇게


아부지와  사이의 마지막이  수도 있는 크리스마스는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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