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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24. 2020

[나는, 임상심리사, 이다]

[1]내가 만나는 아이들


한 문제만, 풀어 보자.     


숱하게 만나는 보호자, 혹은 주양육자라는 타이틀의 엄마들. 그들의 눈빛에서 공통으로 읽혀지는 간절함. 눈맞춤도, 호명반응도, 정상 발달 아동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sign도 보이지 않는 보물 같은 아이를 향해 엄마는 속으로 외친다. ‘아들, 힘내, 한 문제만, 풀어 봐.’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은 나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에게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시간인지, 무엇으로 가득 찬 공간인지, 알 수 없는 그곳, 자신만의 세계에서. 알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작은 검사실을 배회할 뿐이다.     

모든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이 그렇지는 않다. 첫 진단 후 일정 기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재진단이 필요하여 찾아 온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학습과 사회화가 ‘기술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라 검사도 원활히 진행될 때가 많다. 하지만 만 3세를 갓 넘긴 아동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젤리나 사탕도 그들을 꼬실 수 없을 때도 있다. 의자에 착석만 해 주어도 고마운 경우도 다반사이다. 뭔가 다르고, 정상 발달의 궤도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엄마만이 알 수 있고, 엄마라서 눈에 보이는 그 미묘한 ‘다름’ 때문에 병원에 왔지만, 아이의 행동과 검사 태도를 보며, 엄마들의 눈에는 어느 새 절망이 새겨져 간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우리 아이는 어때 보여요?

라는 질문에 나는 그 어떤 확답도 드릴 수가 없다. 인상적, 임상적으로는 ASD에 준하는 요건들이 수두룩 하지만, 그렇다고 원장님도 보류한 그 진단을 입에 담지 못한다. 병원에서 내 입지가 문제가 아니고, 왜 원장님도 진단을 보류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진짜 진단을 보류할 만큼 애매해서가 아니라, 제발 아니길 바라는 그 간절함을 원장님도 알기에 확답을 잠시 미룬 것이라는 걸, 나 또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은 그래서 검사 도구와 자료에게 넘겨 버린다. 그 점수, 절단점, 그게 뭐라고. 30점을 넘기면 자폐스펙트럼이고, 29.5점이면 아니라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엄마들이 바라듯, 그저, 내 공간에 들어서는 그 아이가, 한 번이라도 눈을 맞추고,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고, 그래서 ‘상호작용’이 너와 나 사이에 일어나 주길 바라는 시간들, 에 대해 조금씩 기록해 볼까 한다. 그 와중에서도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로 아이를 사랑해주는 엄마들에 대해서, 혹은 그 반대 어디쯤, 절망의 터널에서 죄책감 느끼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정신건강 임상심리사], 이것이 내 직업을 설명하는 정확한 명칭이다.


*ASD : Autism Spectrum Disorder[자폐스펙트럼장애]의 줄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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