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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27. 2022

3. 대체적으로 충동적인 편입니다

아이들 얘기 아니고 나 말이에요.

급하게 정하고, 빨리 그만둔다. 결정에는 언제나 뭔가의 후회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ADHD의 숙명과 같은 것. 많은 다짐은 지속하기가 힘든 편이고, 작심삼일은 삶의 모토와 같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뭔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키워드나, 이미지가 있으면 일단 글을 쓰고 본다. 논술 공부를 하던 시절, 개요는 뼈대와도 같다는 배움은 전혀 터득되지 않았고, 여전히 충동적 글쓰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나에게 유일한 꾸준함이란 충동적인 삶의 태도 말고는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래서인지 글은 늘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인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서랍장으로 들어가는 글도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 대체적으로, 충동적인 편이다.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원을 결정할 때도, 몇 가지의 비교 대상을 두고 고민 따위 하지 않는다. 내년에 6살 되는 작은 아이 유치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무려 두 군대나 입학 설명회를 다녀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학군지가 아닌 곳에 살고 있다는 좋은 핑계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합리화로 귀결한다. 두 군대의 유치원을 다녀 왔지만 마음 속에 이미 결정을 내려버린 답정녀이기도 하다. 첫째의 태권도 학원도, 미술학원도, 차량을 아파트로 보내주는 학원이 몇 없다는 제한적인 상황이 있기도 하였지만, 그리 긴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보냈었다. 보내다 보니,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짜다리 뭔가 배워오는 듯한 느낌이 없어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끊어 버렸다.


성급한 결정과 그에 뒤 따르는 후회는 나에게서 그 답습을 끊어야 할 것이다.


(오래 된) 지난 글에서, 첫째 영어학원 보카킹 시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히도, 아이가 자라고 있는 것인지, 예전만큼 보카킹에 대한 부담은 줄어 보인다. 파닉스에 대한 이해가 점차 늘면서 자기 스스로도 읽기와 쓰기에 조금은 자신이 붙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족함이 아이들의 어떠함으로 전가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늘 나를 괴롭게 한다.


둘째는 로봇덕후이다. 온갓 로봇을 섭렵하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엄마 나 이거 사죠' 하며 영상을 보여준다. 기가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영상에 노출이 많이 되서 그렇다고 본다. 아이들의 시간관리에 있어서도 나의 부주의와 충동성이 빛을 발한 결과이다. '하루에 몇 분' 이라든지, ‘밀크땡을 한 뒤에 영상을 보기’와 같은 한계설정을 먼저 어기는 것은 내 쪽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 가이드 자체가 매일 같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약속을 잊어버린 채 그날의 일과를 해치우기에 급급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유난히 일이 힘들고 피곤한 날이었다, 라는 그럴 듯한 핑계 뒤로 숨어버리면 그만인게 아니다. 그 때마다 알 수 없는 자괴감이 한심함의 화살이 되어 내 가슴을 후벼판다. 엄마가 꾸준해야 아이들도 그 뒤를 따라 함께 노력해준다는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나의 말투나 행동을 그대로 모델링 하는 첫째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더 잘해야지, 하는 진부한 다짐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수도 없다.     


계획은 거의 안 세우는 편이다. 아니다. 정정한다. 계획은 세우나 안 지키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은 새해 다짐 따위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문득 그렇게 살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체계성이라고는 전무한 병원의 아동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시절이 저러했을까, 섬짓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은 내 어린시절처럼 키워서는 안되겠다는 경계심이 우선하기 때문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독서노트는 가장 먼저 떠오른 새해의 계획이었다. 아이들의 영상 시청 시간을 줄이고 독서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궁극적인 바램이 생겼고, 함께 책 읽는 시간도 일과에 넣어보고 싶은 욕심 역시 충동적으로 꽃을 피었다. 일상에서 빨리 포기하지 않으려면, 덜 충동적이려면, 좀 더 꾸준하고 끈기가 있으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꼬리를 문다. 그래서 운동 역시 새해 계획에 추가하였다. 이것 역시 매우 충.동.적.으.로. 웃긴 사실은,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오르는 그 생각과 계획의 그림들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와 같이 사라지고 없어져버린다는 것이다. 주의를 지속하지 못하는 부실함이 실행 능력의 저하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성하지 못함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다행히, 아직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다. 나의 이 치명적인 약점을 말이다. 딸은 나를 약간 정신없고 깜빡 잘하는 엄마, 정도로만 아는 듯 하고, 천지분간 안되는 아들은 여전히 해맑고 천진하게 나를 사랑해준다. 내가 지금껏 멀쩡한 척 사회인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저 인복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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