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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27. 2022

아이가 아프다는 것의 의미

어쩐지, 콘서트 티켓이 내 것 같지 않더라.

어제저녁. 둘째의 몸이 뭔가 뜨끈했다. 체온계는 정상. 하지만 재채기도 한 번씩 하더라. 싸함이 어떤 직감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기침 소리에 눈을 떴다. 본능처럼 가장 먼저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다. 그것도 이 정도면 바로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 고온이다. 재빨리 효과가 좀 더 빠르다는 부루펜 계열의 해열제를 아이 입에 털어 넣었다. 웬만해선 아침부터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들인데,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어린이집 보내기는 망했고, 오늘 하루 어찌해야 하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엉망이다.


일단, 출근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숙생롤을 열심히 유지하는 남편은 이 집안사람이 아니다. 세 가지 정도의 플랜이 떠오른다. 엄마는 자동으로 열외. 마침, 하필, 어제 백내장 수술을 하신 시어머니도 자연스레 패스. 노답도 이런 노답 상태가 없다. 병원 특성상, 환자들은 대부분 짧게는 3달, 길게는 4-5달을 기다렸다가 검사를 받으러 오고, 검사 시간도 10시부터라 당일 변경이나 연기는 절대 불가능이다. 다시 머리를 굴려, 출산 휴가를 떠난 동료 대신 파트타임으로 오는 선생님에게 s.o.s를 쳤다. 대차게 까였다. 하필 오래전 잡힌 선약이 오전부터 있다고 한다. 절망이다. 내가 무슨 부귀양화를 누리자고 이 난리통에 출근을 한단 말인가. 현타가 물밀듯 몰려오지만 그러고 넋 놓을 시간이 없다. 또 다시 머리를 굴린다. 그때 떠오른 선택지는 첫째. 아직 어리긴 해도, 말은 통하고, 급할 땐 나름의 대처와 전략도 세우는 지능 정도는 가지고 있다. 아이를 결석시킨다는 연락을 선생님께 한 뒤, 15층에 사는 둘째 친구 엄마에게도 카톡을 보낸다.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한 뒤, 두 시간 뒤에 애 열만 한번 체크해 주십사 부탁을 했다.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해 주는 그 쿨함과 여유 있는 마음이 오늘따라 더더욱 고마웠다. 출근 전, 친구 엄마가 잠시 들려 열 체크를 해 주었고, 나는 환자 보다도 늦게, 그렇지만 지각은 아닌 상태로 겨우 on time 출근에 성공했다.


검사 도중, 첫째한테서 전화가 울린다. 평소 같으면 수신 거절을 할 테지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민혁이가 배가 아프다고 막 울어!!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했다.

“ 아니이~~ 막 똥이 안 나온다고 울고불고 소리치고 난리 났어!!”

상습적인 변비에 시달리던 것이, 하필 오늘 사달이 날 줄이야. 일단 알겠어. 하며 끊었다. 그 뒤로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두 통 더 왔다. 결국 15층 친구엄마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한 참 뒤 잘 해결됐다는 카톡이 왔다. 멘붕도 이런 멘붕이 없었다. 그래도 정신줄을 부여잡고 검사를 마무리했다.


퇴근 후 재회한 아들은, 평소엔 절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축 쳐진 것이, 심상치 않다 싶다. 추워서 이불 밖으로도 나오지 않겠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집 앞 병원으로 갔다. 가자마자 열 높다는 소리에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독감 검사 하실래요… 코로나 검사하실래요…둘 다 하실래요” 묻는다. 독감만 해 주세요. 하고 답했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가.


결과 나왔어요. A, B 형 둘 다 걸렸네요.


놀랍지도 않았다. 왜인지 몰라도 그럴 줄 알았다, 하며 한숨만 나왔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출근이었고, 남은 한 주는 연말 휴가라는 사실을, 아들 네가 귀신 같이 알았던 게냐, 바이러스 네 놈이 귀신같이 알고 쳐들어온 게냐.


고열에 눈도 못 뜨는 녀석이 링거 주사 말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는 통에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왔다.  주사 놓는 그 순간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아이에게 주사를 놓았다가 뭔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에.


연말 휴가 동안 하고 싶었던 to do 리스트. 뭘 하며 빈둥댈까 들떴던 버킷 리스트. 심지어 혼술로 때울 맥주와 소주 목록까지 모든 게 리셋. 무엇보다, 소확행 없는 삶의 거의 유일무이한 소확행이 되어 줄 수 있었던 내 아이돌의 10주년 콘서트. 무려 스탠딩 좌석이었는데!! 입을 옷도, 기차표도, 다 계획을 세워 놨는데!!!


신랑은 물론 다녀오라 할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엄마라면. 그 어떤 엄마라도, 지금 나의 상황에선 비슷한 좌절과 실망, 고민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와중에 오늘 환불하면 수수료는 20프론데, 내일부턴 30프로네, 하는 웃긴 생각도 함께 말이다. 이럴 땐 포기가 빠르고 웬만해선 실망하지 않는다는 점이 꽤나 적응적으로 느껴진다.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워킹맘의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과 취소와 재설정의 반복이라는 것. 어떤 이는 ‘포기’ 나 ‘희생’이라는 단어로 그 무게를 과대평가하기도 하며, 굳이 불필요한 감상과 연민에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저 어쩐지 내 것이 아닌 듯 이질감 가득했던 콘서트 티켓을 만지작 거리며 아, 허무한듸, 한숨만 가득 내 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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