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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30. 2022

다사다난했던 콘서트썰 푼다

현생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험난하구나

못 갈 줄 알았다. 내 아이돌의 10주년 콘서트.


1. 우선 지난주, 신랑이 팀장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회사에 issue가 생겨 하숙생 모드로 복귀하면서, 밤낮, 평일, 주말 가리지 않은 출근을 하게 되었다. 조마조마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까짓 거, 못 가면 11주년 콘서트 가면 되지 뭐, 하며 평정심 유지에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신랑에게 여유가 생겨 보이던 지난 주말,


‘그래서 언제까지 바쁠 계획인데? ‘

하며 신랑에게 질문했다. 나름 티 안 내고 물은 거였는데, 내 눈빛은 그게 아니었는지, 아니면 따져 묻는 내가 웃겨 보였는지, 내 표정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던 건지, 신랑은 놀리듯 깔깔 웃기만 한다.


‘콘서트 보내 줄게. 걱정 마라’

‘…’

‘수요일에 마무리가 목표야’

그래. 딴 건 몰라도 한다면 하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속으로 안심했다.


2. 주말이 지나고 D-day 표시해가며 설레던 화요일, 금쪽같은 둘째의 독감확진. 열은 오르락내리락 잡힐 생각을 안 하자, 내심 주사 치료제를 선택할걸 그랬나 조바심도 났다. 하지만 다행히 이틀 만에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고, 아이의 컨디션 또한 조금씩 나아졌다. 무엇보다도 신랑이 흔쾌히 다녀오라, 아이는 본인이 돌보겠노라 또 말해 주는 것이었다. 아싸, 콘서트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3. 신랑이.. 목요일 저녁에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쿨럭 댄다. 이건 또 뭔 일인지.. 기침 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감기에 직방이라며, 원장님이 처방해주셨던 약을 건넨다. 빨리 먹고 아프지 마라, 제발.


‘신경 쓰이면 가지 말던지’

왜, 갑자기 콘셉트를 바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지? 속으로는 흠칫 놀랐지만 못 들은 척 등 돌리고 잠을 청했다. 바로 내일이 콘서트 디데이인데 뭣이, 나 가긴 가는 거야?!?

잠을 거의 설쳤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선잠을 잤다. 7시가 되어 그냥 몸을 일으키고 아침에 세 명의 이 씨들이 먹을 볶음밥을 만든 후에, 정갈하게 목욕재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포기란 없다!


4. 아침. 둘째가 잉잉.. 울기 시작한다. 작은 두 팔로 내 팔을 부여잡으며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한다. 헤어지는 거 아닌데… 그냥 엄마 밖에 나갔다 오는 것뿐인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에서 깬 첫째도 닭똥 눈물을 뚝뚝 떨군다. 너네 엄마 어디 도망가니? 문득, 이 아이들이 즈그 아빠랑은 안정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듯한 생각에 막연한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내 콘서트는 봐야겠으니 좀 매정해질 필요가 있겠다. 딸에게는 절대 안 된다 못 박았던 솜사탕 과자로 딜을 걸었다.


엄마 잘 다녀와


역시, 이걸 노렸던건가. 둘째도 격한 포옹으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기도까지 해 달라기에 해 주었다. 누가 보면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아이들과 요란한 헤어짐(?) 덕분에 빠듯한 기차시간이었지만, 지금껏 손님 기차 시간 못 맞춘 적 없다는 노련한 택시 기사님을 만나, 기차에도 무사 탑승하였다. 콘서트가 점점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5. 올림픽공원으로 가는 길. 대학시절 무수히 탔던 KTX와 지하철을 연결 짓는 길들이 10년이 넘는 세월 뒤로 어색해졌다. 두리번두리번 지방 사람 티 팍팍 내며 겨우 지하철을 탔다. 4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마천행’을 타지 않고 엄한 종착지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내리자마자 택시를 탔다. 드디어 올림픽 공원 입성…!!! 이미 벌떼처럼 모인 흰 옷의 군중들이(오늘 공연의 드레스 코드는 화이트였다) 여기저기 긴 줄로 한 겨울의 추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옷을 맡기고, 입장권 팔찌를 손목에 부착하고, 같이 간 친구와 샌드위치도 우적우적 대충 먹고, 그 넓은 공원에서 가장 음지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입장 게이트 앞으로 갔다. 지금부터 무한대기다!!!


6. 음지에서 부는 칼바람이 손을 마비시켰다. 핫팩도 소용이 없었다. 공연은 5시부터고, 스탠딩으로 최소 두 시간 반은 더 버텨야 하는데, 3시부터 대기줄이라니. 이래서 팬클럽도 덕질도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아직 내 아이돌 얼굴도 못 봤는데 이리도 오지게 현타 오기 있나. 30분을 기다려 공연장으로 들어갔지만,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스탠딩 좌석의 가장 큰 오점. 가장자리인 펜스 주변을 제외하고 가운데 표류하는 대다수의 인원들은 어디 기댈 곳 하나 없이, 오롯이 내 몸뚱이에 나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 무릎이야, 허리야, 시간이 갈수록 온몸이 아파온다. 이 상태면 아이돌이고 뭐고 공연에 집중이나 하겠나 싶을 정도다. 그래도 사람이 웃기고 간사한 것이, 꾸역꾸역 흘려보낸 시간이 5시를 향해가고, 공연장이 암전 되면서 파란 불빛이 장내를 밝히자,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이 발휘되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었다!!!


7. 내 아이돌, 진짜 미쳤다. 10년의 연륜은 내가 콘서트를 온 것인지 만담토크쇼를 보러 온 것인지 문득문득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다가올 1년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비축할 만치의 즐거움과 만족은 얻었다. 여전히 노래 실력은 명불허전, 가까이서 보는 착장, 오랜만에 듣는 옛 노래, 최애의 옷빨.. 모든 것이 완벽했다. 두 곡의 앙코르까지 3시간 꼬박 걸려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안타깝게도 공연의 여운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지금부터, 집으로 가는 전쟁 시작이다…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현생의 공기는 차갑고 매섭기만 하다.

일단 맡긴 옷과 짐을 찾아야 하는데 줄이 어마무시하다. 이렇게 하다간 오늘 안에 집에 가는 건 불가능. 팬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이심전심 통하는 분에게, 염치 불고하고 부탁하여 짐을 대신 찾았다. 기차 시간 까진 30분이 남은 시점. 택시도 6분 거리에서 출발하였다는 알림이 뜨자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집으로 가고 싶다. 격하게 가고 싶다. 온갖 걱정과 긴장과 시간다툼으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총알 같이 빠른 택시를 타고 늦지 않게 역에 도착했지만 이번엔 기차가 말썽이다. 기찻길에 문제가 생겨 같은 선로를 이용하는 KTX와 SRT는 모두 지연이 되었다. 문제는, 나는 동대구에서 새마을로 갈아탈 거거든!!!


결혼은 식장에 들어갈때가지는 알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를 만큼 콘서트 당일까지 가슴조리며 시작이 평탄치 않았던 콘서트 나들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글을 다 써 가는 지금 시점까지도 기차는 정차 중이며, 아직 대구도 부산도 도착하지 못한 채 미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다가 ‘끝날 때 까진 끝난게 아니다’.




3시간. 24시간 중 3시간을 위해 나는 오늘하루 길에서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는가. 이것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탈덕의 진지한 기로 앞에서, 팔 빠짐의 고통을 감내하며 핸드폰에 담은 영상들을 정독한다.


이래서야 탈덕할 수 있겠나




없지 싶다. 오가는 길이 이리 힘들어도 그들이 불러 준 집으로 가는 길괜찮아요 를 추억 삼아, 고해의 삶을 버틸 힘 정도는 얻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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