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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Jan 10. 2023

브런치, 너만 알고 있어.

힘들다고 징징대면 지는 기분이쥬.

현생에서는 웬만해 가지고 하소연은 하지 않는 편이다. 왜인지, 언제부턴지, 내가 지금 힘이 든 건지 잘 모르겠을 뿐 아니라 진짜 어떻게든 버티니 저떻게든 지나가버리는 게 시간이고 인생이라,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하며 어쩌지 저쩌지 발동동 구르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없어 보이기 시작했달까.

(누군가는 자의식 과잉에 허세가 쩐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절친한 친구 한 둘을 제외하고서는 내 속마음, 걱정, 따위 발설하지 않는다. 맘 속 깊은 작은 방에 그런 것들을 욱여넣어두고, 어쩌다 여유가 생기면 하나씩 꺼내보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고 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냥 뭔가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 자체가 현재의 힘듦을 인정하는 꼴이고, 그건 인생에게 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인은 나더러 ‘잡초’ 같은 인생이라며 웃었는데 난 그 별명이 사실 무척 맘에 들었다. 잡초의 생명력과 적응력을 본받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애 둘 키우면서 일하면서 독박육아는 어떻게 해 내는 거예요?!’


라며 혀를 내 두르는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그냥 잡초 같이 존버하는 거죠’


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컨셉질하는 것 같기도).


얼마 전 연말, 신랑 회사에 이슈가 터지는 바람에 신랑이 초초하숙생 모드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바쁜 시기가 오면 일요일도 출근을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데, 20년 무사고 장롱면허를 고수하는 나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대중교통이란 것이 버젓이 존재하지 않는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고, 아무 생각 없이 하면 그냥 되는 것들도 수두룩 하다. 그래서 작년 크리스마스 이븐날, 이제 아이들도 시외버스를 얌전히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마침 시외버스터미널 3분 컷 거리에 살고 있기에, 패드 하나 가방에 넣어 애들을 데리고 이브 교회 행사에 갔더랬다. 나의 이 영웅담을 들은 언니 하나가 눈이 똥 그래가지고 묻는다


아니, 넌 대체 어떻게 그걸 그렇게 다 해내는 거야?? 안 힘들어?!?

솔직히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하면 개뻥이지.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치고, 아무리 아이들이 혼자 걷고 버스를 오르내릴 수 있는 나이가 됐어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잠에서 깨지 않으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걸. 끊임없는 멘탈 싸움, 레벨 1 대장 깨부시면 더 쎈 다음 대장 나오는 게임처럼, 끝없는 도장 깨기인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힘든 것도 좋은 것도. 그냥 하는 거예요.


왜 우리 신랑은 회사에 일이 터져서 어쩌고 저쩌고, 다른 남편들은 와이프 이렇게 해 준다는데 나는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어쩌고 저쩌고 따위의, 불필요한 비교질과 부질없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 신랑한테 툴툴대봤자 싸움밖에 더 나겠는가. 끝없이 승부를 거는 인생이란 놈에게 간단히 수락 버튼만 눌러주면 되는 문제이기도 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분명 동요하지 않고  지내왔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문득, 내가 정말 힘들구나, 싶은 현타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모든 일과가 딜레이 되고, 밀리고 밀려서  동동 구르며 시간을 재촉하는 상황까지  달아서야 겨우겨우 일을 끝내는 나의 모습에 정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호작용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는 아이들과 3시간 4시간을 마주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버겁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어린이집  갈래소리로 눈을 뜨면서 매일 같이 눈물, 콧물 범벅되어 버스 겨우 타고 등원하는 둘째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애가 뭔가 애매한테,   봐주세요하는 원장님의 부탁도 부담거리 목록에 추가. 원체 살림에 소질이 없다 쳐도  치운 자리가 그대로고 너저분하게 유지되는 듯한 집구석도 서터레스. 그러고 보니 사방팔방 나를 옥죄는 것들이 한가득이라, 사면초가,  따위 생각에 한숨이 푸욱 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지쳤다. 지친 것 같다. 연초부터 자알한다 싶다. 애초에 밝음 없는 캐릭터였는데, 유난히 회색톤이 도드라져 보이진 않을지, 걱정하는 것조차 스트레스다. 삶의 모든 자극이 가시처럼 나를 찌를 때, 숨 쉴 공간이 필요해서. 그것이 구구절절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뭐, 별 수 있나. 잡초처럼 존버하는거지.

버티다 보면 이번 퀘스트도 어느 샌가 달성하고 좀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겠지, 바래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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