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있을까?
화요일에는 만 13세의 여중생을 검사했었다. 검사 전 미리 읽어보는 진료 차트의 주상병에는 '비정형 조현병'이 적혀 있었다. 읭? 싶은 마음에 차트를 더 읽어보니, 역시.. 가족력에 '현재 모친이 조현병으로 치료 중'이라는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많은 질병이 유전, 가족력이 상당히 강력한 발병 요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듯이, 정신 질환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 조현병은 부모가 병을 앓고 있는 경우 early onset 도 많고 예후도 그만큼 좋지 않은 편이다. 검사했던 학생도 비슷한 케이스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무리 조기 발병이라 하여도 나이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은 들었다. 올해 중학교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는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자살해라'는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환청은 여전히 지속 중이며, 가끔 환시도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력이 있다 하더라도 초등학교 6학년에 early onset 이라니. 진짜 그 시기가 병이 나타난 시점이라고 치면, 벌써 2년 정도는 장애가 지속되어 온 것인데, 그것 치고는 아이의 사고(thinking)는 크게 무너져 있지 않았고, 와해되고 기이한 반응들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특이했다. 가끔 혼자서 희미하게 미소를 띠거나, 검사를 마치고 모친에게 안기며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것, self-care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머리가 떡져 있었던 것... 들은 현재 환아의 상태가 온전치만은 않음을 가늠할 수 있었으나, 우울 장애도 그 정도가 심할 경우 *psychotic symptoms을 동반할 수 있기에, 헷갈리기도 하였다. 아이의 부친은 고물상을 운영 중이나 경제력이 현재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친이 적절한 care를 해 주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취약한 가정환경에 더불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또래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 왔으나, 이렇다 저렇다 도움 요청할 대상이 없었음을 면담 통해 추가로 알게 되었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적절할까 싶다. 마음과 정신의 대물림은 대체 어떻게 끊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임상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특히 대학원 생활이나 자격증 취득 위한 수련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이 어떤 장애에 속하는지, 재미 삼아 진단 내리는 놀이를 하곤 한다. 나는 우리 엄마는 어렴풋이 성격장애의 한 줄기로 수렴할 것이라 생각해 왔고, 아버지는... 뭔가 정상은 아닌 건 맞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도로만 생각을 해 왔었는데, 요즘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성격장애 아니면 약간 고기능 자폐가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특히,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고, 타인과의 감정적인 교류와 공유가 힘들고, 하나에 꽂히면 어떻게든 그건 해내거나 구입해야 직성이 풀렸던 지난 삶을 돌이켜 볼 때, 우리 아버지는... 아스퍼거 정도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 둘째를 보고 있노라면, 요즘 들어 없던 근심이 스멀스멀... 차고 오를 때가 있다. 이건 정말 내 눈에만 보이는 특성이기도 하고,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님과 내가 특히 자폐로 보는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내 걱정은 충분히 기우에 그칠 수도 있는 문제인 걸 안다. 다른 병원에 가면 그저, 산만한 아이, 활동성이 넘치는 남자아이, 좀 더 엄격하면 ADHD 정도로 진단 내려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 번씩 주의 전환이 전혀 안 되는 것, 자신만의 미세한 루틴이나 예민성이 있다는 것. 딱히 대화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풍부한 의사소통이 되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 자신의 관심사 위주로만 놀이를 하거나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 은 항상 어딘가 모를 찜찜함으로 남게 된다. 어제는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4장의 사진 중에 두 장은 눈이 없어질 정도로 활짝 웃어 out 되었고, 나머지 두 장은 카메라를 정확히 주시하지 않고 찍어 어딘가 어색하게 나왔더랬다. 카메라 앞에서는 웃는 것, 이라는 하나의 행동이 그저 학습된 것인가, 막상 정상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기엔 어딘가 불편한 것일까. 혼자 오만가지 염려와 걱정을 떠올리니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자폐라는 장애가 스펙트럼으로 이해되는 장애로 바뀌면서 겪게 된 고충이라고, 엄한 곳에 책임을 전가해보기도 한다.
요즘 첫째는... 확실히... 뇌에 어딘가 구멍이 나 버린 아이처럼 행동한다. 수행에 맺고 끊음이 없고, 지지부진, 정신이 없어 보인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난데없는 질문을 하고,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행동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보고 있으면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오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핵심은, 이 아이가 그런 자신에 대한 매타 인지가 전혀 발휘되고 있지 않으며, 대뇌라는 건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충동만을 쫓아 행동을 이어가고 있어, 내가 어르고 달래고 지적하고 설명하고 발버둥을 쳐도 행동의 수정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시작인 건가, 불안이 또 엄습해 온다.
정신적, 심리적 빈곤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일단 부모가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다. 나는, 내 전두엽 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알게 되었기에 별로 좋지 않은 케이스이다. 그전에 알아야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 이 각박한 세상에 던져지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텐데, 애초에 그 시작조차 없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아이의 불행은 나에게서 찾아지는 것만 같아, 이 불안과 죄책감을 떨쳐버릴 길이 없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행복하다. 본인들이 원하는 그 일차적인 충동을 쫒고, 그것이 충족되면 만족을 느낀다. 누구도 나에게 아이들이 불행해 보인다 한 적 없으며, 아이들 스스로도 엄마가 미워 싫어 투정 부릴지언정 불행의 전조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살아갈수록, 생을 이어갈수록, 좌절과 난관에 부딪힐수록, 아이들은 나의 불행과 어둠의 기운을 몸에 익히고 세기게 될까 두렵다. 희망보다는 불안을 먼저 익히고, 낙관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논리와 합리화로 스스로를 무장하며 나름의 대비와 보안책을 마련해 가려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투성이, 원래 삶이 정답은 없는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방비해도 되는 것인지도 알쏭달쏭이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 중 가장 최악의 것은, 부주의도 충동성도 아닌, 그 무엇보다 불행을 먼저 읽고 가늠해 버리는 성격적 결함,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씁쓸한 오후이다.
*psychotic symptoms : 망상, 환각을 포함하는 정신병적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