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와 과메기
몇 년 전이었더라. 첫째가 아직 유치원생이었을 때니까, 벌써 3,4년은 지난 일이다. 아빠가 한창 항암을 받으러 진주와 부산을 오가던 시절. 다리가 퉁퉁 부어 제대로 걷거나 맨바닥에는 앉지도 못했고, 인지능력도 예전만 하지 못해서 운전도 서툴러지던 그 어느 겨울. 갑자기 게가 드시고 싶으셨던 건지, 직접 운전을 하고 포항을 가기로 했다고, 같이 갈 거면 창원이 지나는 길이니 합류하라며 아침부터 전화가 왔더랬다. 마침 출근도 없는 날이라 좋다고 따라나섰던, 참 추웠던 겨울의 초입.
과메기를 파는 광고글을 보니 떠오르는 몇 안 되는 추억이기도 하다.
느릿느릿한 운전으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포항의 어시장은 어찌나 그리도 을씨년스러웠던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게를 사서 식사를 하고, 라면을 끓여 먹자며 떨이로 파는 게를 사 가던 아빠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안쓰럽기만 했는지. 마음 같아선 킹크랩이라도 떡 하니 사 드리고 싶은데 무슨 현실이 그리도 팍팍하게 느껴져서 맛있는 게 한 마리 제대로 대접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지.
그래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셨던 아빠는 식당에서 넌지시 말씀하셨더랬다.
“앞으로 매 년 이렇게 게 철이 되면 같이 게를 먹는 게 열 번은 되면 좋겠다” 고.
그 뒤로 아빠와 다시 포항에 갈 일은 없었다. 물론, 아빠가 다시 게를 드실 만큼 컨디션이 좋아지지도 않았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장 멀리 갔던 최근의 기억. 그리고 가장 마지막 여행.
그리고. 집으로 오던 길, 이서방 주라며 쥐어주던 과메기 한 통. 첫째 하원 버스 시간이 촉박해도 아빠의 운전을 재촉할 수 없었던, 아릿한 그 마음.
11월이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아빠가 마지막 입원을 했던 것도 11월이다. 아빠와의 기억은 어느 순간부터 더 나아가지도, 달라지지 지도 않은 채, 다만 조금은 뒤죽박죽 한 마음만 가진 채. 그대로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