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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Mar 13. 2022

그런 이별

좋은 사람, 김병돈을 그리며






   

임인년 새해를 맞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에서  하나의 커다란 상실 앞에 넋을 놓은 채로 섰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란다. 그는 허물없는 친구였으며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별 앞에 나는 멍해졌고 가슴  곳이  뚫린 듯한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코로나19 핑계로 만남을 미루어오던 그의 전화 속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는 듯하다.  진작 먼저 찾아가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가 가슴으로 밀려들었지만 때늦은 후회를  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를 보내고 나는 더욱 외로워졌다. 가끔  번씩 만나  한잔을 하면서 삶을 달래며 서로 안아주던  시간이 너무 그립고,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간 그의 무정함이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다.      


그의 부음을 전해 들은 것은 새해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자정 무렵이었다. 새해 인사를 한 것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렇게 빨리 이 세상을 떠났는지 애절함과 아쉬움이 슬픈 눈물이 되어 심장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튿날 그의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까지도 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얀 국화꽃 속에 놓인 그의 영정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눈앞에 마주한 현실이 꿈만 같은 흐릿한 영상으로 다가왔다. 나는 꽃 속에 쌓여 웃고 있는 그에게 묻고 또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빨리 떠났는지 이유라도 듣고 싶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작별할 시간은 아직 멀리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침묵만 남기고 떠나다니 말입니다. ”

“나와 떠나기로 약속한 한 달 간의 여행은 이제 공허한 메아리 되어 천상을 맴돕니다.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인연의 끈을 놓아 버린 채 이렇게 훌쩍 떠나다니 너무 안타깝고 섭섭하네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세상을 떠나 버렸는데. 부디 영면하시고 그곳에서 편히 지내십시오. ”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는 나 역시 모든 것들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내가 그의 생일 선물로 사준 적이 있는 티셔츠 두 장을 전해 받았다. 이것이 그가 떠나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인가라는 생각을 하니 잠시 눈시울이 뜨겁게 느껴져 왔다. 그와의 작별이 끝난 줄 알았는데 그의 티셔츠를 통해 결국은 나의 내면에서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두 장의 티셔츠를 다시 손질하여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유는 그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철학적 사고를 음미하면서.      


그를 만난 것은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중앙로의 모 식당에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위해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만났지만 단번에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다. 온화한 얼굴에 입가에 미소까지 띤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이라 반주 삼아 약간의 약주를 한두 잔씩 나누면서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건드리며 지나온 삶의 이야기로 한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그것이 그와의 처음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외로운 삶에 길동무가 되어 서로를 감싸주고 배려하며 버팀목 같은 관계를 이어갔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우리는 하양 인근의 금호 강변에서 낚시를 핑계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낚시를 취미생활로 할 만큼 좋아했다고 한다. 강변에 간이 텐트를 치고 낚시를 드리웠지만 거센 물살에 낚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우린 낚시는 뒷전으로 보내고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강변의 텐트 안에서 그가 준비해온 김밥을 먹으면서 곁들여 소주 한 잔씩을 나누었다. 그리고 소주처럼 달콤한 그와의 우정을 안주 삼아 한동안 서로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는 내게 자신의 지난 과거 속에 숨겨 두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의 학식을 겸비한 며느리였지만, 어느 날 지나가던 땡추중이 '이 아이는 스님이 될 팔자니라'는 말만 믿고 장남인 자신을 이름 모를 사찰로 보냈으며, 그로 인해 그는 원치 않은 동자승 흉내를 내며 굶주림과 눈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사찰을 빠져나와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붙들려 다시 사찰로 보내졌다고 했다. 꿈 많은 어린 시절을 생각지도 않은 낯선 곳에서 고통과 절망 속에서 보냈지만, 자신만의 의지로 자수성가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들으면서 나는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북받쳐 올라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슬픔이지만 살아있는 사람과의 이별이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 영원히 헤어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과연 맞는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서 이별한 사람이야 어디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죽음으로 세상을 하직한 사람은 우리 마음속에 아픈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에 우리는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것이 변하듯이 추억의 빛깔도 조금씩 탈색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랑이든 이별이든, 모든 것은 우리가 환영하든 거부하든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 속의 변화를 익히며 그와의 추억이나 이별의 감정 또한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슬픔을 치유할 것이다. 물론 치유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어느 한 지점에 묶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자연스레 치유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어찌 그런 이별이 나뿐이겠느냐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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