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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Nov 11. 2020

18. 그러니까 그놈의 콘텐츠, 그게 문제였다.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18. 그러니까 그놈의 콘텐츠, 그게 문제였다.


 마지막 글을 쓰고서 2주가 지났다. 최근 들어 브런치에 들어오는 빈도수가 줄었으며, 자연스레 글쓰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글쓰기에 흥미가 떨어져서도 아니며, 나름 술을 배워보겠답시고 클래스를 등록해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놈의 콘텐츠, 그게 문제였다.


 어느덧 작가의 서랍에는 쓰다만 글이 10개를 넘었다. 어떤 글이라도 써볼까 싶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고민하다 보면 이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비두었던 경우도 있었고, 비슷한 글들을 다른 화두로만 써내려가는 건 아닌가 싶어 있어보이려는 글들에 대한 염증으로 방치해 둔 경우도 있었다.


 어김없이 오늘도 글을 쓰기 전 작가의 서랍에서 좀 더 발전시켜볼만 한 게 없었을까 보니, 하나같이 다 그 본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쭉정이 같은 글들'이라고 나름의 욕을 하면 또 한 번 우울해진다. 내 삶에서 최근에 재미있는 이벤트는 없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재미있는 이벤트는 많았다. 회사에 다니면 언제나 연말에 발생하는 이벤트인 회사의 조직개편이라던가 인사고과라던가 하는 그런 적나라한 회사원의 이야기도 있었고, 결혼 후에는 퇴사 후 해외로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아주 친한 동기도 있었다. 가장 큰 이벤트라 함은 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정말로 배워보고 싶었던 칵테일 조주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쉽사리 글을 쓸 수는 없었다. 결국 브런치에 남들이 읽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나만이 보는  '그 일기' 이상이 되어 읽는 사람에게도 공감 혹은 어떤 울림이라도 있어야 하지는 않기 때문인가라는 사념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완성처럼 보이는 글들은 좀처럼 성에 차지 않고, 뻔한 이야기를 매번 다른 에피소드로만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아 신물이 났다.


 재료인 그 콘텐츠가 문제였고 내 손맛이 담기지 않는 글을 조미료를 통해 쓰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좀 더 솔직해지면 재료보단 그것을 맛있게 요리하는 내 실력이 문제인 것임을 문득 깨달았기에 한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칵테일 클래스에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같은 재료를 같은 기법으로 쌓아올린다고 해도 맛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재료의 정량, 얼음의 양 마저도 너무나 비슷했는데도 막상 마셔보면 누구의 술은 술맛이 강하게 나고, 누구의 술은 밍밍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재료를 쓰고 비슷한 양을 넣는데도 맛이 너무 다르네요?"

"그렇죠? 그건 손 맛이 다른거에요."

"손 맛이요?"


 셰이커를 사용해서 같은 재료를 넣으며 마구 흔들어도 누구는 손이 차고 누구는 손이 따뜻해서 얼음이 희석되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거기에 흔드는 방법까지 가지각색일 터이니, 술과 부재료가 섞이는 방법도 다를 거고 그에 따라 맛도 많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손맛'이라고 했다.


"손의 온도 같은 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어떻게 해도 고쳐지기 어려운 그 사람의 습관이 있어요. 그게 그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 되는거죠."


 미숙한 계량, 그리고 미숙한 셰이킹이나 스터(Stir)로 만들어 낸 내 칵테일은 사먹는 것처럼 맛이 좋지 않아 누구에게 서브(Serve)하기에는 부끄러운 칵테일이었다. 다 같이 맛을 보는 때에도,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술 맛이 강하게 난다는 평을 들은 내 칵테일을 맛본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마다 미안하고 또 제법 부끄럽기도 했다.


 글쓰기라는 것도 딱 그러했다. 좋은 재료,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더 재미있고 맛깔내게 써낼 수 있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브런치의 다른 작가들과 시중의 책들로 더 적나라하게 알게 되면서부터는 쉽사리 글을 써내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을 완성치 못하고 잠이 들어야 하는 밤에는,


"그래 , 그러니까 그 놈의 콘텐츠가 없어서 그래."


 라며, 자기위로를 하며 잠을 들기도 했다. 


 글쓰기에도 꾸준한 시간이 필요하고 100번, 1000번의 습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 한 번에 작가들이 받는 그 영광을 누리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대박 유튜버들이나 맛집의 요리사들도 별반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발상이 독특했던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좀 더 세심하거나 좀 더 기회가 좋았거나, 그것을 맛깔나게 작업(편집)했을 뿐, 그들의 재료가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실력이 미숙했음이었는데 그 재료를 탓하고 있음을 마주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 결국은 콘텐츠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연습이 부족한 나였다.


"너가 쓰는 모든 글이 콘텐츠지."

"그래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야 글을 쓸만하지."

"너는 네가 경험한 것에서 느낀 것을 쓰는 글이잖아. 그럼 모든 일상이 콘텐츠일텐데 뭐가 걱정이야."

"재미가 없는 일상이라서 걱정되네?"

"눈치 보지 않는 연습을 하겠다며."


 아끼는 친구가 해준 조언을 끝으로 게을렀던 나를 반추한다.


 금요일에는 파티를 한다. 누구나 칵테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양주와 부재료, 그리고 얼음은 준비 되었다. 그것을 맛있게 서브(Serve)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은 내 몫이다. 맛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오늘도 아직은 몹시 밍밍하거나, 날 것의 향이 느껴지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습작에 불과한 이 글들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지금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자세가 많이 좋아졌네요? 손목 스냅도 잘 쓰게 되었고, 젓는 것도 지난 번보다 나아졌어요!"


 지난 번 수업 때보다 좀 더 안정적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말을 믿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한다. 지금의 이 글의 콘텐츠는 '나'이기에, 내가 문제였기에. 문제인 나를 해결하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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