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봇 Feb 16. 2021

22. 이렇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22. 이렇게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



"과장님, 이번 조직개편 때 저희팀은 어떻게 될까요?"


 작년 연말, 어김없이 찾아오는 조직개편 이슈로 회사는 꽤나 떠들썩했다. 언제나 카더라가 잔뜩 도는 시기였고 어느 팀은 폭파되고 어느 팀은 어디랑 합쳐진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은 제법 구미가 당기는 화제였다. 평소 같았으면 관조하는 사람이었을테지만 작년 말, 우리 부서가 그 구미가 당기는 화제의 당사자가 되어 마냥 팔짱을 끼고 있을만 한 입장은 아니었다. 그런 당사자가 되어 보니 Next가 궁금해져 팀이 공중분해되어 날아가게 되면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고, 나는 같이 일하는 과장님에게 물었다.


"합쳐지면 우리 팀 중 몇 명은 그 쪽 마케팅팀으로 넘어가고, 몇 명은 또 어디로 가고 그러겠죠?"

"원하는 데로 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도 필요는 하겠네요."

"사원님은 탐내는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이왕이면 수석 부서는 어때요?"


 결론적으로는 분해가 되면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입장이 되기도 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과장님은 내게 수석 부서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이는 팀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왔던 이야기였다. 현재의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수석 부서가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팀에 배치 되어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다른 분들보다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던 나는 짧은 시간 내에 OA 업무를 인정받았고 팀에서 보고서나 데이터와 관련된 업무들을 처리하곤 했었다.


"저는 가고싶진 않아요."

"왜요? 사업 돌아가는 것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나중에 승진이나 이런 쪽에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일이 재미가 없고, 두 번째는 평생직장이라는 게 없잖아요.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요."


 회사를 10년도 더 다닌 선배들 앞에서 하는 작년 3년차 사원의 패기있는 발언,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도, 더군다나 이 회사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더욱이 들지 않았다. 나의 커리어 그리고 재미, 이 두 가지가 내가 원하는 것 전부였다.




"또 정년연장이야?"


 노동조합이 들고 나오는 뻔한 공약을 보면서 볼멘소리를 냈다. 노동조합의 선거일이 다가왔었고 그들은 내세운 공약들을 브로셔로 친절히 전달까지 해줬는데, 읽어보면 항상 같은 레퍼토리로 하는 연봉인상과 복지계획 등의 이루어지지 않을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니 과장님, 대체 이놈의 정년은 언제까지 연장한대요? 일도 안하면서 나보다 돈은 배씩 가져가는 그런 사람들 진짜 꼴보기 싫어요."

"그래도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일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때까지 이 회사에 안 있을 것 같아서요."


 우리회사는 해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회사였다. 역피라미드 구조로 소위 아랫 젊은 직원들 보다 위의 직급 높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그런 형태 말이다. 자연스럽게 높은 직급의 사람들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보다 OA를 다루는 능력이 낮다는 이유로, 그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만큼이나 신선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내리기 일쑤였다. 결국 과장 대리 사원 급의 10년차 미만 주니어들은 이런 상황에 큰 불만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저사람보다 일은 많이 하는데,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돈을 적게 받을까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불만, 그것이 차곡차곡 누적이 되어 이런 이야기는 동기들과의 자리에서 까내리기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동기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나오는 이야기는 결국 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크게는 세 가지 였다. 첫 번째는 재테크 였고, 두 번째는 결혼이었으며, 세 번째는 앞으로의 커리어였다.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친구들은 어디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네, 앞으로는 어떤 주가 뜰거네 하는 그런 부류였다. 그리고 그런 화제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누가 결혼했네, 사귄지는 얼마나 됐네 하는 그런 결혼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재테크와 결혼, 결국은 인생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그마저도 화젯거리가 떨어지면 이야기는 서로의 직장생활, 그러니까 '안부'로 귀결된다.


"다닐만 해?"

"X같지."


 코로나 시대에 일을 하든 안하든 관계 없이 나오는 월급과 해고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기업들을 다니는 우리들은 제법 팔자 좋은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누군가는 배가 불렀구나 라고 생각도 하고 가진 자의 푸념이라고 곁눈질을 할지 모르지만, 재테크와 결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돌려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진 시드로 자산을 불려 집을 얻고 괜찮은 사람과 결혼해서 하루빨리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발버둥이었다.


"근데 가장 소름 돋는 건, 내가 아무리 이렇게 일만 잘한다고 해도 서울에 집 한채도 살 수 없어."

"단순히 일하고 저축하는 것만으론 절대 못사지."


 그래 이게 최근의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회사원들이 가지는 마인드이다. 단순히 회사 일로 저축을 꾸준히 해서 집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 매년이 아닌 매달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은 어마어마했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져갔다. 청약 또한 신혼부부가 아닌 이상은 당첨되기란 어렵고 그마저도 구매할 수 있을만 한 자본의 여력은 부모님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


 그래, 좋은 기업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 팔자 좋아진다는 건 옛소리이다. 평생직장은 없다. 이제는 개인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쟁취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일한다고 서울에 집한 채 사기도 어려운데, 더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살아보려고."


 이렇게 또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나는 재테크에는 분명 소질이 없음을 확인 했으니, 다음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꾸준히 덤비는 수 밖에.

작가의 이전글 21. 너의 향기가 나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너는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