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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Mar 02. 2021

23. 지하철 15분이 20일이 쌓이면 책이 한 권이야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 졌다.

23. 지하철 15분이 20일이 쌓이면 책이 한 권이야.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인 지 한 달이 되었다. 정확히는 매일 아침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타서 회사가 있는 역까지 가는 단 15분 내에 책을 꺼내서 읽은 지 한 달이 된 것이다. 출근을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플랫폼에서 지하철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가방의 지퍼에 손을 대었다. 자연스럽게 종이로 된 책을 꺼내서 지난번 읽었던 부분의 갈피를 제거하고 펼치는 순간부터 내 독서는 시작되었다.


 지하철에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 올라 우연찮게 자리에 앉았던 그 날, 내가 앉은자리 앞에는 세 명의 사람이 종이 책을 읽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딱히 아침이라 연락도 오지 않으면서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피고(그마저도 이제는 새 피드를 다 보면 광고 피드로 넘어가서 시간도 얼마 되지 않더라) 휴대폰 게임으로 애꿎게 넘어가서 지루한 행동을 하는 것과는 제법 대조적이라고 느꼈다. 동시에 "책이 재밌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처럼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앞에서 가방을 주섬주섬 열고 책을 꺼내다 보면 대개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 사람은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책의 제목은 한 번 정도는 봤고 내가 독서를 시작하면 휴대폰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사람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회사원 A 씨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래도 기운차게 출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독서를 시작하고서는 어쩐지 그 음악이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중도 잘 되지 않고 갑자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하면은 한참 잘 읽히던 책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신경은 노래에 집중되곤 했다.


 그래서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능을 썼고, 그리고 처음으로 에어 팟 프로를 산 것을 만족했다. 외부 소음의 적절한 차단, 그러면서도 지금은 어떤 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서 나는 그 '치이 이익'하는 소리는 잘 들리는 딱 그만한 청각 장막은 독서를 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노이즈 캔슬링의 도움과 종이 책의 도움으로 딱 15분 간의 책 읽기 한 달간의 과정이 끝이 났고, 나는 놀랍게도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좋아진 점이 있었다.


1). 서점에 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30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2/3 정도 읽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 이 습관을 포기하기 싫어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회사 근처에 있는 교보문고로 직행했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 그곳에서 휴대폰으로 많은 검색도 하고 이곳저곳의 도서가 분류된 섹션들을 훑어보고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는 내가 낯설기도 했고, 그 15분이 쌓이는 한 달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들어서 괜히 여느 때보다 더 고심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흥미가 없는 책을 사자니 읽지도 않고 괜히 아침이 축 쳐지지는 않을까 고민되었고, 흥미 위주의 책을 보자니 지하철에서 그 책을 꺼내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낯설고 멋쩍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적절한 중간 어딘가, 그것을 찾기 위해 그렇게 고심하고 1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2). 생각이 많아졌고 기록하는 재미가 생겼다.


 2월 지하철에서 함께 했던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었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아침에 휴대폰으로 찍어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하기도 했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장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글감들은 작가의 서랍에만 넣어놓고 왠지 모르게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 그런 것들이 되었지만.


 책으로부터 느끼는 감정들로 인해 생각은 많아졌고 그런 아침에 드는 생각은 하루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나 불안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나, 좀 더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상으로 하루를 더 알차게 살기 위해, 남들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조금 더 내가 우위에 있을 수 있도록 행동하기도 하였다.


 아침의 독서, 회사에서는 일에 열정을 쏟고 퇴근하는 퇴근길에 소위 말하는,


"불태웠다."


 라는 느낌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다녀오면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았구나 라는 뿌듯한 마음과 Daily Stamp 어플에 채워지는 하나하나의 습관 칸들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아침 독서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3). 15분이라는 시간에도 제법 많은 걸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언제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별 것 없는 인스타그램을 뒤지거나 혹은 유튜브를 볼 때에는 언제나 그 출근길이 길지 않고 15분이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 게임은 매일 해야 하는 Daily 과제들이 있어서 해결하고 나면 15분은 금방 사라졌기 때문이었는데, 독서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것이 매일매일의 '쪽수'로 기록이 남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하루는 어려운 내용으로 인해 13쪽이, 어느 날은 그림도 들어가 있어서 20쪽이, 또 다른 날은 왠지 모르게 잘 읽혀서 17쪽이 되기도 하였다. 그 짧다고 생각했던 15분이 모여 일주가 지나자 100쪽에 근사하게, 3주가 지나자 200쪽이,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300쪽이 되었다.


 이제는 허투루 쓸 수 없는 15분이 될 수 없음을 몸소 체감을 하고 남는 시간을 알차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무엇인가를 할 순 없을까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늘 마침 카카오톡으로 [프로젝트 100]이라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100일 간 인증하는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그 습관을 일상이 되도록 체화하는 것은 우리도 모두 알듯이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100일 동안은 해보면 체화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이 메시지에 오늘은 퇴근길에 책을 들었다.


 왜냐면, 아침에 너무 지하철이 붐벼서 책을 꺼내지 못했기에.


 다음 4월에도 '지하철 책 읽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라는 글을 쓰기를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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