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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Apr 07. 2021

기대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

ep 57. 어반자카파(Urban Zakapa) _ Get


"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했어."

"내가 그랬어?"

"어찌나 집요한지, 얻을 때까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이야기해서 결국은 엄마가 매번 졌었어."


 어렸을 적 나는 하고 싶은 건 해야 했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 성에 찼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차서도 그 기질은 유지가 되어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졌고 하고 싶은 건 도전해서 손에 거머쥐곤 했다. 반대로 하기 싫은 것은 잘 피하기도 했고 얼굴에 티도 잘 냈기에 주변 사람들이 감정 표현에 제법 솔직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좋게 말하면 욕구, 나쁘게 말하면 욕심.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솔직한 감정을 숨기는 것은 익숙해졌고 하고 싶은 것은 핑계를 대며 미루고 하기 싫은 것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 집 가면 뭘 해야 할지 비슷한 일상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나는 제법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은 뭐지?"




 지난 2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길에 종이 책을 꺼내 읽었다. 2월 읽었던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었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낱낱이 해제하고 극복에 대한 내용을 안내해 준 그 책은 한동안 그런 철학적 질문에 대해 고뇌하던 내게 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중에서 나의 가치관을 뒤흔든 내용은 '제임스의 방정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인용한 제임스의 방정식은 사람들의 자존심이 형성되는 과정을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식은 아래와 같다.


 자존심 = 이룬 것(실제로 이룬 것) / 내세운 것(이룰 것이라 기대한 것)


 우리는 이룰 것이라 기대하고 '내세우는 것'에 비해 실제로 '이룩하는 것'이 적은 경우 보잘것없다고 느끼며 자존심을 낮게 가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제임스의 방정식은 결국 이루는 것의 자수를 크게 만들거나, 내세우는 것의 모수를 작게 만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전자는 이상적이지만 어려우니, 후자를 택해 '버리는 것'의 이로움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기대를 가지고 시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는 것을.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서 그 양날을 조율하다 보면 그 종착지는 '캐주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즉흥적으로 사는 로또가 당첨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 별 분석 없이 괜찮아 보여 들어간 주식이 오르면 '이게 웬 떡이야?'라며 즐거워한다. 별생각 없이 시도했던 어떤 행동에 제법 괜찮은 보상이 떨어지면 우리는 '횡재'라고 느끼며 자존심을 회복한다. 결국, 우리는 어떤 것을 시도함에 좀 더 힘을 뺄 필요가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아주 뻔한 말이지만, 돌이켜 잘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주식, 비트코인 판들은 이제 고점으로 치솟아 들어가기 어려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지금이 저점이었다는 아이러니로 후회와 복통을 느끼게 된다. 꼭 재테크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제법 나이가 차서 뭔갈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만 같다 싶다가도 내년에도 이렇다 할 좋은 건수가 하나 더 생기지 않은 삶을 마주하다 보면, 그래 '그 고민을 하는 때가 더 빠른 때였구나.'라는 헛웃음도 나온다.


 리스크와 고민이라는 족쇄로 무엇인가를 하는 데에는 언제나 큰 용기가 필요해 시도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또 기회라는 것은 결국 무엇이라도 겪어 본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다독여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가끔은 미친 척하고, 하고 싶은 것을 '에잇!' 하고 그냥 시작할 추진력이.


https://www.youtube.com/watch?v=g4uWEaZqP1w

어반자카파 - GET MV


 우리가 꼭 해내고 말 거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라면, 그 기대를 가지지 않는 수준에서 '도전'하면 되는 것 아닐까? 우연한 시도로 오는 행운을 'GET'한다면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는 그 순간보다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는 게 언제나 더 낫다.


  



 우리는 시도하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나랑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지 못한다. 기타를 배워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거기에 재능이 사실은 있었던 사람일지, 혹은 흥미를 크게 느끼는 사람일지 알지 못한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다. 우리네 일생에서 재능과 흥미는 어디에 뻗쳐져 있을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거창한 서론을 까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에서 올해 나는 마케팅 인력을 넘어 코딩을 배우고 UI/UX 디자인을 시작했으며, 말도 안 되게 즐기고 있고 퇴근 후 공부까지 자행할 정도로 진심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온 기회로 나와는 평생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내게 적격이고 그것들을 할 때 즐겁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나의 '기호', 그 '기호'는 한 획을 긋는 데에서 시작한다.


 바로 '기회'라는 한 획.


 갑자기 업무가 바뀌게 된 것은 회사에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프로젝트성으로 꽤나 크게 맡게 된 업무가 하나 있었다. 작년 한 해 프로젝트와 유사한 업무를 진행했던 나는 1년 간의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의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진두지휘하고자 하는 상급자들의 생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윗선의 보고는 당연히 상급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업무 하달이 들어오자 그것을 하기 싫었던 나는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


 '상급자를 설득할 보고서를 만들자.'


 결론적으로 그 설득은 성공했고, 나는 프로젝트의 전권을 일임받아 PM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도달하고 보니 내게는 너무나도 많은 능력이 부족했다. 먼저 데이터를 추출하고 싶지만 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 내가 직접 진행해야 했고 그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SQL을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며 단 두 달 새에 처음 하는 사람 치고는 썩 괜찮은 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좋은 사용성을 기획하고자 하니, UI와 UX의 측면에서의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TOOL이나 컴퓨터 언어에도 관심이 가고 나는 제법 즐기면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시도하지 않았으면 영영 마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 모든 출발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이었다. 상급자의 논리를 뒤집기 위해 보고서까지 쓰는 '미친 짓'을 자행한 덕분이기도 하고, 남들은 왜 귀찮게 이런 일을 벌이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은 생각보다 내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건 비단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결국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어떻게든 하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교훈과 경험'이 남는다. 물론 '후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후회 끝에도 또한 '교훈'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해야만 하는 것(Have to go)을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눈치를 많이 봐왔다. 이제는 단호히 거부권(Veto)을 행사해 보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그리고 우연찮게도 재능마저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더 늦기 전에 미친 척하고 그냥 하는 그 캐주얼한 용기가 우리는 필요하다. 


 이렇게 또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는 또 하나를 시도할 시간을 잃고 있을 테니까.



 END.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다는 거는 정말로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계절의 변화도 알아채는 것이 무뎌진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은 다들 그럴 거라 생각해요. 이럴 때 좀 더 나다울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옛부터 평범한 회사원 A씨가 되기는 싫었던 약간의 반항아이자, 언제나 제법 원하는 것은 곧잘 거머쥐었던 철없던 소년이 커서 치기를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나 마저도 나를 믿고 응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나 하는 생각을 줄곧 했던 것 같아요.


 그래, '내가 하는 행동 하나도 틀린 거 없어'라고 나를 어쩌면 강제로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글일지도 모를 것 같아요. 위로, 조금 더 넘어 최면을 걸고 세뇌하고자 하는 더 당당한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수플레는 글을 참 오랫동안 준비도 하고 또 지웠던 것 같아요.


 한 번 뿐인 인생, 더 찬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빛 바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은 요즘, 조금 더 빛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며 글 줄이겠습니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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