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2.스텔라 장,폴 킴- 보통날의 기적
https://www.youtube.com/watch?v=iHJcBb1iQ9A
"얘들아, 나 결혼 해."
최근 한 달 반 사이에 이 소식을 들은 것이 네 번이었다. 이제 서른이라는 나이이기에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었다. 회사생활을 한지 나는 4년이었고, 내 친구들도 적게는 2년 많게는 6년까지 일을 해 왔었다.
입사 초기에는 만나서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토로하고 우리가 꿈꿨던 현실과 그에 대한 불만으로 볼멘소리를 내며 술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해가 지나가면서 조금은 성숙해졌던 탓일까, 그 언제까지나 불만만 가득할 것 같았던 각자의 일터에서 적응을 하고 우리가 만나면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듬해에는 만나면 경제와 집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저마다 자신의 짝을 찾았고 결혼이라는 약속을 위해 진지하게 대화하고 어쩌면 여생을 함께 할지도 모르는 그 사람과 서로의 마음은 어떤지를 확인하는 때가 왔다고.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 대화 끝에 여생을 함께 할 준비가 되었음을 약혼이라는 언약으로 확인했다고 밝히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 한편이 아렸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서른에 일찍부터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을 챙기기보단 나를 챙기는 게 언제나 우선이었다. 겪어 온 연애에서도 나는 결국 함께하기보다는 홀로 가기를 택할 정도로 나 자신의 일상이 소중했고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많은 20대였다.
"그런데 누나, 갑자기 어디서 결혼을 해야겠다 결심하게 되었어요?"
"이 사람과 함께할 때 내가 굳이 '~한 척' 하지 않고 그냥 나여도 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이 사람이구나 싶었어."
연애를 할 때에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연애를 한 개월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함께 한 시간이 길어져 보게 되는 모습 이외로, 온전하게 자신을 그대로 다 보여주기란 어려웠으며 그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괜찮은 척, 그런 척을 해왔으며 좋아하는 것을 연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연기를 포기해도 될 정도로 서로에게 진심이라는 것, 그것을 알고서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빠르게 오갔다고 한다. 확신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그 약혼, 왜인지 그 이야기를 들은 하루는 제법 생각이 만아졌다.
나는 과연 누군가가 나에게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주어도 될 만큼 편안한 사람일 수 있을지, 그리고 나 또한 그 사람에게 연기하지 않고 온전히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20대 동안 적지 않은 연애를 했다. 적지 않은 연애를 거듭하면서 어땠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더 까다로워졌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20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길지 않은 횟수를 만나 서로에게 맞춰간다는 것은 어려웠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사리 포기하기도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는 진짜 안 맞는 것 같아."
맞지 않는다는 말을 끝으로 결말에 치닿은 연애가 있었고, 그 과도기의 다툼에도 빈번하게 저 말을 던지며 우리는 다른 사람임을 시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자존심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조금 더 좋아한다는 그 약간의 갑을관계로 인하여 결국은 끝을 내거나, 한 명이 희생하거나 하는 연애를 해왔다. 물론 희생 그 끝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한 사람의 지침으로 인한 결국은 이별의 결단이었고.
"맞는 사람이 안 나타나서요."
"그런 거 재다 보면 만나기 어려워. 일단 만나봐."
한 동안 홀로 지내는 기간이 제법 길었을 때 내게 소개팅이나 미팅을 제의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곧잘 이야기했었다.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연애를 지금 못하고 있다고. 그러면 다들 아주 쉽게 일단은 만나보라고 사람일은 모른다고, 그렇게 재다가는 아무도 못 만난다고 이야기했다.
"왜 안 만났어? 분위기 좋았다며."
"그렇게까지 맞지는 않아서요."
"아, 그래? 그렇구나."
그 성의를 봐서라도 한 번씩 나간다 하더라도 결국 진심이지 못한 내 마음과 연기하는 내 모습에 지쳐 결국은 아무런 애프터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들려오는 그 말에 나는 똑같이 반복하고 그 사람은 이제 내게 어떤 소개팅도 제의하지 않았다.
해가 지나고 이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제법 소개팅 제의는 들어왔다. 하지만 그 당시에 유행하던 단어를 빌려 회피하곤 했다.
"요즘 이야기하는 자만추라서요."
"사람은 저마다의 짝이 있다고 하잖아?"
그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지, 아니면 정말로 나는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인지 감은 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표현하고 온전히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들을 주변에서 목격하며 내게도 그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기대에 표를 던졌다.
아주 평범하게 지내는 이 보통날에, 어쩌면 생길지 모르는 기적이 있을 거라고 조금은 낙관적으로 믿으며 내게도 어떤 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해 보기로 했다.
62번째 수플레, 이번 노래는 '스텔라 장 & 폴킴'의 '보통날의 기적'이라는 노래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결혼 소식에서 축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같은 친한 무리의 친구 한 명과 듀엣으로 노래를 선곡하던 도중 나왔던 노래였습니다. 아쉽게도 좀 더 발랄한 노래를 위해서 후보에서는 제외되었던 노래였지만, 왠지 모르게 가사도 눈길이 가고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던 노래였습니다.
성공적인 연애는 어떤 연애일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잘하고 있는 연애도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남자친구이지만 나 자신은 제법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연애가 잘 하는 연애일지, 아니면 서로의 사랑은 조금은 부족하지만 서로가 각자 다울 수 있으며 만나면 소소하게 행복한 연애가 잘하는 연애일지.
그래서 그냥 지금은 좋은 연애는 서로가 희생이 없어도, 포기가 없어도 서로가 자랑스럽고 만나면 크게 즐거운 연애가 바람직하고 성공한 연애일 거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이라고 누군가는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기적을 조금은 바라면서 긍정적인 연애를 해보려고요.
마치 보통날의 기적처럼요.
감사합니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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