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 god - 길
삶의 환멸을 느끼거나, 음울한 기운을 가진 편은 아니다. 오히려 매사 간단하게 생각하고 잘 웃고 다녀서 긍정적이란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죽음의 위기에 다가간 적도 없다. 교통사고 당한 적도 없고, 몸이 아파 입원해 수술받은 적도 없다. 서른두 살. 거칠 것 없는 창창한 나이에 ‘죽음’이란 단어는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갑자기 죽음에 대해 떠오른 건, 참 우연히도 미래에 대한 단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와중이었다. 직전 회사에서 상반기 계획과 평가를 세우고 있었고, 그 생각이 확장돼 1년 뒤 내 모습이 궁금했다. (하여튼 회사가 문제야) 나아가 회사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몇십 년 뒤 내 모습이 궁금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결국 그 끝엔 죽음이 있었다.
내가 내일 죽게 된다면?
너무 멀 것만 같은 이야기라 집중이 어려웠다.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인간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맞닿으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험에 기인할 수도 없어 더더욱 집중이 어려웠다. 허나 집중해서 나의 인생을 돌아보기로 노력해 글로 적어본다.
* 하고 싶은 일을 참 많이 못했다.
사고 싶은 물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망설였고, 이것저것 고민하다 놓친 인연도 많았다. 조금 아껴보겠다고, 조금 덜 아프겠다고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결정들이 오히려 후회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더 남아 괴롭힐 줄이야.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이 다가오니 그때, 한번 시도라도 해볼 걸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지 못했다.
특히 가족. 다른 사람들에겐 살갑게 잘 대하는데 가족들에겐 유난히 그렇게 대하지 못했다. 매번 같이 있기도 하고, 반복되는 행동과 말들의 패턴이 익숙하다 보니 즐거움이 없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무례했고,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한 삶이었다.
* 하고 싶어서 한 일이 많지 않았다.
학창 시절 해외봉사나 대외활동도 참 많이 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선 의지대로 했던 경험이 없었다. 누가 시켜서, 혹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의지대로 원해서 시작했던 일이 너무 없었다. 건강할 때, 또는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할 수 있던 일들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 그렇다 해도, 다시 태어나도 나로 태어나고 싶다.
반성문 같은 후회스러운 일들이 연이어 생각났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나로 태어나고 싶다. 31년의 해에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고 고마운 인연들로 가득했으니까. 내가 느낀 생각들의 8할 이상을 글로 써낼 수 있었고, 맑은 날씨에 기분 좋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이별 등 많은 감정을 오롯이 겪어보고 누군가와의 대화도 즐길 줄 알았다. 한 사람으로의 인생은 충실히 살아봤고 이만한 인생이라면 한 번 더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https://youtu.be/yhD7zJKf8VM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쭉쭉 인생을 정리하며 글을 쓰다가 사고 싶던 옷과 먹고 싶던 캔디를 결제했다(?)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선, 동네 헬스장을 갔다가 산책을 할 예정이다. 원래는 집에만 있으려 했는데 그래도 움직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끝을 조금 고민해봤다고 인생 전체가 변화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하나라도 바꿔보자는 의지가 생기긴 한다.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반복되는 삶 속에 있다 보면 그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고, 자신의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게 된다. 죽음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한다는 건 어쩌면 살아있는 지금을 조금 더 충실하게 살 자는 본인의 다짐이 될지도.
삶의 끝. 하나의 인생이 닫히는 시점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인간은 고작 10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저마다의 길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인생이라니.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충실하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헬스장으로 달려가봐야겠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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