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이해관계, 상생의 해법을 찾아서
"여행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변경에 따르는 비용입니다."
공항 라운지에서 마주한 풍경. 카운터 앞에 선 여행객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취소 수수료가 항공권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항공권 취소 수수료는 여행객들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는 그림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억눌렸던 여행 열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지금, 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국내 항공사에 대한 소비자 피해 구제 신청 건수는 1,190건으로, 전년 대비 69% 증가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가 말해주는 이 차가운 숫자 뒤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의 좌절과 아쉬움이 담겨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취소 수수료 규정. 항공사와 여행사마다 다른 정책. 소비자가 알기 어려운 정보의 비대칭성. 이 모든 요소가 항공 여행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소비자 vs 기업'의 대립 구도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항공사, 여행사, 소비자 세 주체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존재합니다.
항공권은 '시간이 생명인 상품'입니다. 오늘 서울-제주 15시 비행기가 텅 빈 채로 이륙한다면? 그 빈자리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재고로 보관할 수도, 다음 날 할인해서 판매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항공사가 취소 수수료를 부과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교한 수요 예측에 기반합니다. 과거 탑승률 데이터, 계절적 요인, 연휴, 국제 행사 등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 항공권 가격을 책정하고, 비행기 크기와 운항 횟수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면? 모든 계산이 무너집니다. 2020년 상반기, 국제선 항공사들의 좌석 점유율은 10%대까지 추락했습니다. 이는 곧바로 막대한 적자로 이어졌습니다.
취소 수수료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항공사의 '방어막'입니다.
No-Show 방지: 취소 수수료는 예약 부도를 방지하고, 신중한 예약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손실 보전: 출발 직전 취소된 좌석은 재판매하기 어렵습니다. 수수료는 이 손실을 일부 보전합니다.
가격 차등화: 다양한 취소 정책을 통해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합니다.
항공사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습니다. 높은 취소 수수료는 소비자 불만을 키우고, 낮은 취소 수수료는 수익성을 악화시킵니다.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항공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주목할 점은 항공사들이 특정 상황에서 취소 수수료를 면제(웨이버)해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천재지변, 국가 간 정책 변경, 항공사 자체 운항 이슈 등이 발생했을 때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항공권 취소 시 발생합니다. 항공사 취소 수수료는 대부분 환불되더라도, 여행사의 발권 수수료는 환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입장입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24시간 콜센터 운영, 예약 시스템 유지비, 전문 상담원의 인건비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취소 수수료가 이러한 운영 비용을 충당하는 중요한 수입원이 됩니다.
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여행사의 책임은 중요합니다. 취소 수수료 규정, 환불 조건 등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아 발생하는 분쟁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여행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사의 고민은 깊습니다.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줄타기. 디지털 시대에 OTA(온라인 여행사)의 성장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소비자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정보 비대칭성: 예약 과정에서 취소 수수료 정보가 작은 글씨로, 복잡한 용어로, 또는 여러 클릭을 거쳐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모바일로 예약할 때 이런 정보 접근성은 더욱 떨어집니다.
복잡한 규정: 항공사와 여행사마다 다른 취소 수수료 정책, 출발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수수료율, 항공권 종류별 상이한 조건 등은 소비자가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자연재해, 개인적 질병이나 사고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취소 수수료를 적용하는 경직된 시스템에 소비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취소 수수료 규정, 충분한 정보 제공, 그리고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입니다. 과도한 특혜가 아닌, 기본적인 소비자 권익 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공사와 여행사마다 제각각인 취소 수수료 규정을 표준화하고,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특히 '다이내믹 프라이싱'처럼 복잡한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적용되는 경우, 그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항공권 비교 사이트에서 '유연한 취소 정책'을 필터링 옵션으로 제공하는 것처럼,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여행사는 예약 단계에서부터 취소 수수료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항공권 결제 전에 취소 규정 페이지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결제 확인 메시지에도 취소 규정 요약본을 함께 발송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소비자도 '약관 동의' 버튼을 무심코 클릭하기보다는, 중요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항공사들은 천재지변, 국가 간 여행 제한, 항공사 일정 변경 등 다양한 상황에서 취소 수수료를 면제하는 웨이버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연한 정책을 질병, 사고 등 개인적 불가항력 상황으로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증빙서류를 제출할 경우 취소 수수료를 감면해 주는 정책은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항공사 브랜드 가치를 향상할 수 있습니다.
항공사는 빅데이터, AI 기술 등을 활용하여 수요 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No-Show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예약 패턴, 취소율 등 데이터를 분석하여, 합리적인 취소 수수료 정책을 수립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정확한 수요 예측은 항공사의 리스크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더 합리적인 가격의 항공권을 제공할 수 있게 합니다.
항공사는 여행사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발권 대행 수수료를 보장하고, 취소 수수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여행사는 항공사의 취소 수수료 정책을 준수하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해야 합니다.
항공권 취소 수수료 문제는 어느 한쪽의 잘못이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입니다. 항공사, 여행사, 소비자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존중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가슴 벅찬 경험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 항공권 취소,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 등 여행은 때때로 우리를 당황시키는 어려움과 함께 찾아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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