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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Aug 21. 2020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약한 걸까 

7월 20일 월요일 오전, 


병원에 다닌 지 2주가 지나고 있었고, 원인이 되었던 일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다. 큰 프로젝트라 단숨에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일의 분량과 비용을 조정하느라 또, 그것의 생각을 미루느라 끈적한 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저 이렇게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글을 쓰는 제 자신이 좋았어요." 


마음이 무너진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압축하면 자존감 문제였다. 


내가 쓴 원고에 문제가 있다며 갑의 회사에 다음날 불려 갔다. 그날은 이미 다른 선약 미팅이 있었기에, 같이 일하는 대표님께 며칠 후로 미루자 했고, 원고가 문제가 있다면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무조건 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그다음 날 갑의 회사로 갔다. 갑의 담당자는 50대가 넘은 차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까지 7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 차장님의 첫마디는 


"휴, 이 원고 보는 거 너무 스트레스였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전 10시부터 12시, 그리고 점심,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내 원고를 샅샅이 보며 모두가 여러 마디를 했다. 빨간 볼펜으로 받아 적고, 설명을 하고, 알겠다 하고, 수정하겠다 하고, 더 찾아보겠다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웃었다. 소화가 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대표님은 이렇게 해결되어 다행이라 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 전날도, 그날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벼랑 끝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날 병원에서 울면서 했던 이야기는 다른 거였다. 


"같이 일하는 대표님이 자꾸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해요. 같은 말을 매번, 만날 때마다." 


개인 트레이너는 너와 나이가 같은데 엄청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했다. 같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실장님은 자기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인품이 뛰어나다고 했다. 예전에 일했던 그 친구는 너무 착하다고 했다. 네 디자인 선배는 참 사람이 곱다고 했다. 


칭찬이었다. 타인에 대한. 


너는 왜 이렇게 못 먹고 다니는 것처럼 비실거리냐고 했다. 왜 이렇게 아직도 애 같냐고 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하냐고 했다. 이래서 일은 하겠냐고 했다. 


타박이었다. 나에 대한. 


어쩌면 걱정으로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진심으로 다가온 걱정이 아니었다는 걸 점점, 알아챘다. 일 할 의욕이, 추진할 힘을 점점 잃어갔다. 


강한 사람이었고, 책임감도 있었고, 일을 하면 신나게 했고, 마감이 조금은 괴롭지만 그 끝의 희열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몇 달 동안 나는 조금씩 무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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