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Henri Mastisse. 1908-1912. 177 x 217 Cm. He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반갑습니다. 그림 앞에 오신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중세 그림만 보시다가 현대 그림을 대하니 어떠세요? 그 동안 중세 명화 속에 상징이 담긴 작품들을 살펴봤는데요. 그러다 보면 현대 작품 속에는 상징을 담은 작품이 없는듯 생각됩니다. 현대 그림 중에도 알레고리를 이용해 메세지를 담아 표현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에는 현대 작품이지만 중세 명화처럼 상징들이 담긴 그림을 찾아봤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살펴보는 명화 소개 코너. <내 집은 미술관> 입니다.
강렬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 1869년-1954)입니다.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그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힙니다. 야수파 운동에 참가해 그 중심 인물로도 활약했습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그가 햇살이 강한 지역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남프랑스 니스에 머물렀고 모로코와 타히티 섬을 여행하였습니다. 색과 빛이 강열한 곳이라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이런 여행의 인연으로 타히티 섬에서 재혼도 했고 약 7년 동안 거주하며 열정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화풍을 살펴보면 만년에는 색과 형체를 단순화시켰고, 밝고 선명한 빛과 색을 깔끔하고 명쾌한 선에 담아 구성된 화폭을 완성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이 같은 그의 작품을 “세기의 경이'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이 작품은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손꼽힙니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지는데요. 이 작품은 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구관에 있는 렘브란트의<돌아온 탕자>가 보고 싶어 다녀왔는데요.
궁전의 화려함과 작품의 숫자와 규모에 놀랐습니다. 중세 명화를 보려면 보통 유럽으로 가죠? 기회가 되면 이 곳 러시아 에르미타쉬 박물관으로 꼭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제목이 대화지만 부부간에 정이 묻어있는 살가운 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묘한 침묵의 냄새를 맡게 합니다. 한 눈에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희얀하게도 방안의 어색한 침묵과는 달리 창밖은 아름다운 색상의 초록 식물과 꽃들과 작은 연못이 등장합니다.
또 살벌한 부부싸움이 예상되는 거실 안에는 수채화 같은 표현으로 산뜻한 청색을 입혔습니다. 색이 맑고 선명하며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대조되는 색의 활용입니다.
이런 뜻밖의 쌈빡한 색 덕분에 우울한 상황은 전혀 우울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는 작품입니다. 색이 만드는 반전이며 마술입니다.
등장 인물들을 살펴보며 어떤 상황인지?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살펴보고 화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 보겠습니다.
참, 그림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결정 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에 관한 분석을 인터넷에서 살펴보시면 이 부부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놓은 분도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해 놓은 분도 계십니다. 이들의 어색한 침묵이 밖의 꽃을 피웠고 그윽하고 아름다운 대화를 만든다고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화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작품을 구성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회화 예술에서 화폭을 담는 모든 요소들은 선에 의해 창조됩니다. 이 선을 활용해 부드러움이나 강직함, 추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화가 자신의 메시지를 가장 잘 담을 수 있게 조절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선으로 인물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선으로 표현했는데요. 먼저 남자를 보겠습니다. 잠옷에 “나는 강직한 남자”라는 듯이 온통 직선이 보입니다. 아래위 옷은 말할것없고 목에도 강한 선을 넣어 뻣뻣이 서있는 그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의 얼굴에 난 수염도 뭔가를 찌를듯이 뽀족하며 얼굴 앞면과 함께 이 역시 직선을 이룹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볼까요? 팔의 옷도 직선이며 손역시 직선으로 넣어져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고스톱 화토 놀이에서 오직 고만 외치는 사람있죠? 타협이나 분위기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마음먹은대로 무엇이든지 관철시키려는 성격의 인물입니다. 앞에 앉은 부인의 마음을 이해할 생각이 없으며, 부인이 무엇을 원하든지 들어줄 생각이나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음이 읽혀집니다.
반면에 여자는 어떤가요? 한 눈에 앞에 선 남자와 많이 다르죠?
우선 앉아있고, 직선 보다는 곡선이 눈에 띕니다. 얼굴도 동그랗고 팔과 엉덩이 그리고 다리를 감싼 부분의 의상도 훨씬 부드럽습니다. 곡선을 많이 넣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쪽 인물의 팔목 부분을 보시면 뚜렷하게 직선과 곡선이 드러납니다.
이런 표현은 인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본능적인 남성적 힘과 여성적 부드러움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이 두 인물은 작게는 한 가정에서 함께사는 남편이자 부인이지만 크게는 힘에 의지하려는 남성과 약함으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에 의지하려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다시 언급해 드리면, 작게는 부부 싸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크게는 인류사에서 발생했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남존여비 사상에 관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이 여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봐야겠습니다. 특별한 표현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전체에서 발견되는 사항이기도 한데요. 미완성 그림 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충 마무리한 그림같기도 합니다.
우선 색칠한 것을 보면 마치 수채화 같이 물감이 번진 것 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대충 그린 느낌입니다. 오른쪽 팔은 끊어져있고 앉아있는 의자의 다리도 생략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요?
남자와 여자에게 묘사된 대조와 대비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남자는 서 있으며 아래로 내려다봅니다. 반면에 여성은 앉아 있고 올려다 봅니다.
남자는 발의 끝 부분이 보이지 않죠? 반면에 여성은 발의 끝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보이지 않으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고 여성은 발의 끝 부분이 보이지만 두리뭉실 의상에 쌓여있고 발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마음대로 다닐 수 없음을 알립니다. 자유로운 몸과 자유롭지 못한 몸의 대조적 묘사입니다. 그렇게 보면 여성의 의자는 제약을 받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의자를 보시겠습니까? 현재 여성은 의자에 앉아있다기 보다는 의자에 끼어 있는 모습입니다. 즉 인권 탄압이나 가부장제도와 사회의 제도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선 의자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의자의 등 부분을 보면 관객을 향하고 있죠? 노란 점선안을 보면 의자의 등 부분이 보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의자의 등이 관객이 있는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은 옆으로 앉아있죠? 아래 다리 부분은 옆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즉 모순된 시대 아래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상황입니다.
의자에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죠? 이는 불안정함을 나타냅니다. 언제 쓰러질지 모릅니다. 결국 여성은 자신이 원해서 앉은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해 제도적으로 마련된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제도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인물 사이에 절제되어 묘사된 정원을 볼까요? 비록 등장 인물들은 암울한 침묵속에 있지만 밖의 정원은 밝고 건강하고 선명하며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색의 마술로 그 쪽의 싱싱한 공기가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안쪽과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도 안쪽 인물들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창밖의 풍경에서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도 전체가 보이지 않게 위가 잘렸습니다.
작은 연못같이 묘사된 꽃들이 핀 정원(화단) 역시 모두 한 귀퉁이가 잘렸습니다. 온전한 화단이 보이지 않죠?
건너편 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의 정원 속에도 불완전한 남녀평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틀에 철제물이 보이죠? 문양 같지만 ‘NON’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니오”라는 거부의 의미인 프랑스어입니다. 한 마디로 ‘싫어’ ‘ 나, 안해’라는 거부를 나타냅니다.
누가 이 말을 할까요? 해답이 없습니다. 불평등한 사항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기에 남편 또는 남성이 했을 수도 있고, 계속 억압하며 불평등한 채로 지내자고 요구한 남편 또는 남성의 요구에 부인 또는 여성이 “더 이상 절대 안돼!”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대답으로 생각되는지요?
이 작품을 보면 작품 앞에 서서 쫄았던 기억이 소환됩니다. 더 가까이 가서 쳐다보고 싶었지만 감시원이 다가와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 안전 거리를 두며 쳐다 만 봤습니다. 러시아가 공산국가였기에 쫄며 지냈거든요. 워낙 반공 교육을 잘 받아 선지 다리를 지나는데 공산국가의 상징인 큰 별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단 한 작품 <돌아온 탕자>가 있고 입맛에 너무 맞아 매일 들려 먹었던 메뉴가 있고 유럽과는 또다른 문화로 지어진 여러 성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아내와 다시 가보려 합니다.
일상 속에서 늘 벌어지는 아내와 남편의 소소한 전쟁으로 보셔도 되고, 인류 역사에서 여전히 풀지 못하는 남존여비 사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인류 정치학(!) 작품으로 보셔도 되겠습니다.
언젠가 남자와 여자 또는 남편과 아내가 화합하는 작품을 찾아 그림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다음 작품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주위에 그림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저의 글을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다음 그림여행 때까지 주님의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살펴보는 명화 소개 코너. <내 집은 미술관>제공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곧
중세로
발길이 옮겨지는 곳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