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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터테이 Feb 07. 2021

다시, 중국

다시 학생이 되었다

가슴이 터질듯이 요동을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요동쳤을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도 나지않는 그 열정을 마지막으로 나는 매일을 그렇게 죽은 가슴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하늘에서 백마탄 왕자님이라도 떨어지길 꿈꿨으나, 드라마 주인공의 삶은 내 삶에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너무나 지루하고 잠잠했던 내 일상에 나는 매일같이 몸부림쳤고, 내 삶이 보잘 것 없고 반짝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살았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하지않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몰랐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난 아주 가끔 우유부단함 속에서 단칼에 자르는 당찬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이런 날 두고 못 말리는 꼴통이라고 했다. 내가 알고있는 나는 비빌 언덕이 있으면 대충 비벼대며 안주하는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그 삶에 만족하지않고 투덜대기 일쑤다. 결정하기까지 고민은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세워 현명하게 미래를 준비하진 않는다. 그러다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대는 정도가 커지다보면 뒤도 돌아보지않고 비빌 언덕을 끊어낸다. 삶의 실질적인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북경을 처음 왔던 계기는 중국학과의 교환학생 제도로 인해, 대학 3학년때 1년간 자매결연 학교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때서야 난 인생 최초로 비행기를 타 보았고, 고국을 떠나 언어가 다른 타국을 가 보았다. 이제껏 단 한번도 집을 떠나본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진것이다. 또한 대학에서 배웠던 중국어는 중국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다시 시작하는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대학3학년, 나는 중국에서 자퇴를하고 부모님께 통보를 했다. 


"엄마, 나 자퇴했어. 이제 고졸이야." 


엄마는 기겁을했고, 대학이나 마치고 대학원을 중국으로 가라고 설득을 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신 중국으로 올 수 없을것만 같았고, 또한 나에게 다른길이 있다는 여지가 있으면 난 또 적당히 비비면서 살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졸지에 고졸이 된 나는 새벽부터 새벽까지 중국대학 입시준비에 몰두했다. 간절함이 최고의 동력이라는것을 이때 깨달았다. 또한 나라는 사람은 비빌 언덕을 없애고 낭떨어지에 서있어야 비로소 동력이 생긴다는것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졸업을하고 취업을하고 또 그럭저럭한 생활을 하면서 지내왔다. 만족스럽진 않았던 쳇바퀴같은 삶이었지만,  쳇바퀴를 탈출하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마약월급을 끊어내는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직장인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있듯이, 나 또한 상사얼굴에 사직서를 집어던지는 꿈을 꾸었지만, 후불제로 돌아오는 카드명세서에 내 불씨는 마냥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일에 찌들어있던 어느날,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았다. 열정없이 똑같은 삶이 되풀이되는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며,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부당함에 가슴을치면서도 참고있는 이유가 뭐지? 난 그길로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엄마, 나 퇴사했어."


바리바리 싸들고 도착한 항주


다시 느끼는 중국의 공기, 잊고있었던 이 냄새가 죽어있던 내 모든세포를 깨워냈다.

부산한 중국어가 친근하게 들려오고, 여기저기 싸우는듯 내 귀를 찌르듯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동안 동태처럼 지냈던 나에게 살아있는 생동감을 불러넣었고, 독한 담배냄새와 향신료가 뒤섞인듯한 무거운 공기의 냄새도 고향의 향기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그렇다, 난 지금 10년만에 다시 학생이되어 중국에 돌아왔다. 


항주는 처음이다. 

10년전 대학생활을 북경에서 했는데, 그때의 북경은 아주 번화하고 삭막했던 도시였다. 지금은 미세먼지로 바뀌었지만, 내가 대학생활을 하던 그때는 황사가 온 도시를 뒤덮었다. 북경은 특히나 건물만 즐비하고 녹지가 별로 없어 건조하고 삭막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찌나 건조한지 나무를 건들이기라도하면 나뭇잎에 쌓인 먼지가 푸석 날려 나를 덮쳤다. 게다가 황사가 몰아치는 계절엔 바람에 날리는 모래에 볼이 다 쓸려 촌년처럼 양 볼이 벌겋게 쓸려서 다녔다. (그땐 왜 마스크를 쓸 생각도 안했던지) 그때 생긴 홍조에 몇 년을 볼이 따가워 고생을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남아있는 홍조는 레이저로 치료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훈장이 되었다.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학교로 들어가는 내내 내 눈은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을 쓸어담느라 분주했다. 분명 처음보는 낯선 도시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처음보는 건물과 교차로가 이어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십년 전 그렇게 문턱이 닳도록 다녔던 북경 공항에서 학교까지 지나쳤던 길이 보였다. 그때의 날씨, 그때의 냄새, 그때의 마음, 모든게 되살아났다. 북경에 처음왔던 설레임,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해진 익숙함, 졸업을하며 떠나게됐던 아쉬움. 그 모든게 동시에 떠올랐다. 지난 기억과 함께 다시 솟구쳐 올라오는 설레임, 난 이 항주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가슴이 어찌나 세차게 뛰는지 고막이 웅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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