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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멜로디를 떠올리며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음악에 관한 에피소드

by 봄날의 햇살

저작권은 내게 늘 ‘법’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마치 먼 산처럼 아득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법적인 문제로 접근하거나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법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법률적 사안을 복잡하게 따지며 토론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대중음악이라는 친숙한 영역 안에서, 저작권과 관련되었거나 우리가 몰랐던 원곡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은 번안곡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내보려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최근 하늘의 별이 되신, 고(故) 송대관님의 ‘해뜰날’이다. 송대관님은 1967년 KBS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후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고,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은 흥겨운 멜로디와 희망 가득한 가사로 시대의 정서와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는 다양한 상을 휩쓸며 그의 첫 전성기를 열어주었고, 그 인기는 요즘의 BTS 못지않았다고 부모님께 들었다.

그로부터 6년 뒤, 1981년 미국에서 발표된 J. Geils Band의 ‘Centerfold’는 도입부 멜로디가 ‘해뜰날’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이 곡의 작곡자이자 키보디스트인 세스 저스트먼(Seth Justman)은 ‘해뜰날’이 한창 인기를 끌던 1975년,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곡의 유사성은 누구나 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송대관 측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시엔 저작권 문제가 지금처럼 공론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결국 이 문제는 조용히 묻혀버렸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Centerfold’는 빌보드 싱글 차트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를 생각하면, 송대관님의 억울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BqDjMZKf-wg

두 번째 부터는 저작권과는 해당이 없는 번안곡이고 원곡과 전혀 다른 메세지로 바뀐곡들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매년 10월이면 어김없이 결혼식 축가와 가을 음악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 곡의 원곡은 노르웨이 출신 그룹 시크릿가든의 연주곡 ‘Serenade to Spring(봄의 세레나데)’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는 봄을 배경으로 사랑을 노래한 곡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 곡은 봄과는 전혀 다른 청명한 가을하늘 정취를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 한 작사가가 이 곡에 가사를 붙여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곡의 출처도 모른 채 멜로디만 넘겨받았다고 한다. 당시 호주의 가을에 머물던 그녀는 자신이 엄마가 되는 기쁨을 담아 가사를 완성했다. 아들이 태어난 10월의 기억,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제목과 가사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이 곡의 예상치 못한 인기 덕분에, 시크릿가든의 첫 내한 공연에서 정작 이 곡이 플레이리스트에 없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의문를 자아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0Z_7wCoGbF4

세 번째는 1972년 발표된 번안곡 ‘아름다운 것들’이다. 청아한 가수의 목소리와 감성적인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 곡의 원곡은 16세기 스코틀랜드 민요 ‘메리 해밀턴(Mary Hamilton)’으로, 조앤 바에즈(Joan Baez)의 버전이 특히 유명하다.

이 곡은 스코틀랜드 여왕의 시녀 메리 해밀턴이 왕과 사랑에 빠지고 왕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여왕에게 사형을 선고받으며 죽음을 앞둔 순간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것들'의 가사는 그런 배경 위에서, 한때 아름다웠지만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애도와 회상을 담고 있다.

생과 사, 영광과 허무가 교차하는 이 노래는 단순한 번안곡을 넘어, 인생의 깊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Xaf4GfuI8&si=s-F8DZb_07hWms8N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는 1971년 올리비아 뉴튼 존이 발표한 ‘오하이오 강둑(Banks of the Ohio)’이다. 이 곡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여자가 연인을 살해하는 내용의 치정 살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곡이 1978년 우리나라에서는 ‘내 고향 충청도’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재탄생한다. 전쟁과 이산의 아픔, 피난살이의 정서가 담긴 실향민의 노래로 바뀌어 발표되었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CEOS85oG9g

그 시절엔 인터넷도, 위키도, 유튜브도 없었다. 외국 여행은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고, 해외 문화에 대한 정보는 희소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번안곡임을 몰랐고, 또 누군가는 알면서도 애써 말을 아꼈는지도 모른다.

원곡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것, 그것이 시대의 산물일까, 아니면 저작권 의식의 부재가 만든 슬픈 아이러니일까. 선거 로고송도 아닌 번안곡이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딘가 개운치 않고 아쉬운 마음을 남긴다.


저작권은 단순한 법조항이 아니다. 창작자가 흘린 땀과 시간, 그들의 진심이 담긴 자산이다. 우리가 쉽게 듣고 흥얼거리는 한 줄의 멜로디 속에는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대중문화는 삶의 일부이며, 음악은 시대를 기록하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저작권이라는 이름의 약속이다.

저작권이 법률적 사안라는 이유로 멀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그건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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