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감독 김지운, 인랑

by Aner병문

감독 김지운, 주연 김무열, 강동원, 정우성, 인랑, 한국, 2017년. 원작 오시이 마모루


서사의 빈약함은 둘째치더라도, '반칙왕' , '장화, 홍련' '놈놈놈' '밀정' '라스트 스탠드' 등의 영화를 보자면, 김지운 감독은 그야말로 '때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장면마다 등장인물의 구도, 의상 및 소품의 색감, 무게감, 세세한 음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왜 우리가 연극 말고 영화를 봐야하는지 자연스레 알듯한 느낌까지 든다. 요컨대 김지운 감독은 영화의 '후까시' 나 '간지' 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작품을 실사화하는데도 무리가 없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른바 케르베로스 사가 라고 불리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대표작 중, 원작 '인랑' 을 나는 십대 떄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봐왔다. 아주 우울할때 이 영화를 보면, 마음 한 켠 끄트머리를 빡빡한 돌덩어리로 내리누르는 듯한 우울함과 답답함이 백미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실사화한다고 해서, 나는 사실 당시에 무척 기대했었다. 그리고 영화는 혹평으로 막을 내렸다.



놈놈놈의 첫 장면이, 마치 홍금보의 '부귀열차' 를 연상시키듯, 날카로운 독수리가 뜨겁게 달아오른 철로를 돌면서, 비록 클리셰 투성이일망정,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한가득 등장한다. 건들거리면서 잔혹한 마적패 두목, 빈틈 많은 괴짜 같지만 뭔가 있는듯한 총잡이, 그리고 독립군의 밀명을 받아 말 위에서 장총으로 연사를 가하는 해결사, 이들은 화면에 나오는 즉시 이들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앞으로 어떤 서사를 이끌며 나아갈지 예상이 된다. 평소 김지운 감독의 장점이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비록 초반의 설명투 내레이션이 좀 길긴 했지만, 통일을 앞둔 한국으로 배경을 바꾼 실사 영화에서 음울한 색감의 근미래를 누비는, 특기대의 모습을 보고, 오오, 역시 김지운 감독이구만, 이라고 감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비해 장점이 있다면, 표현이 자유롭다는 점일 터이다. 표현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억제도 자유롭다는 사실을 뜻한다. 케르베로스 사가의 중점은, 체제에서 신음받은 인간들의 아귀다툼이다. 스스로를 늑대로 자처하는 수도경과 그를 견제하는 자치경(또다른 국가권력), 그리고 시위와 투쟁을 통해 인권을 되찾고자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동지들을 압박하는 섹트, 이 3축이 서로 규제와 압박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런 배경에서 사실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는 인물들을 별로 필요없다. 원작의 주인공인 후세 카즈키는, 우울했고, 과묵했고, 투명할정도로 옅고 평면적인 사내였다. 그러므로 그가 인랑이 되어 옛 동료들을 도살할때, 우리는 그의 이면에 감춰진 늑대의 잔혹성에 치를 떨고, 영화의 말미에서 그가 어쩔 줄 몰라하는 감정을 무력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극한 허무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실사 영화는 이 점을 놓쳤다.



마치 윤태호 작가의 '야후' 처럼, 단순히 전공투 세대의 배경에 약간의 SF적 가미를 더한 원작을 그저 통일을 앞둔 근미래의 한국으로 바꾸었다고 해서 문제라는 점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방향성에 있었다. 체제에 억눌려 고뇌하는 인간들을 보여주기에 임중경은 어설펐고, 한상우는 너무 말이 많았고, 이윤희는 지나치게 가벼웠다. 특히 감시자들 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한효주는, 과연 같은 배우인가 할 정도로 들뜨고 어색한 연기만을 보여줘서, 이럴바엔 이 양반이 대체 왜 주연인거야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무리 임중경이 인랑이라는 반전을 주려 한다고 해도, 영화의 주된 서사와 고뇌는 한상우가 소란스레 다 해버리고, 임중경은 몇몇 총격적을 제외하면, 이윤희랑 커피 마시고, 국수 먹고, 데이트하는 등, 애초에 서사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영화 내내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짜증내는 한상우가 오히려 주인공처럼 느껴질 정도다. 즉, 원작과 비슷한 점은, 인랑이라는 설정, 특기대의 무기와 복장 정도일 뿐, 인물상이 엉망이니 서사도 헝클어져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게 너무 슬프다.



하나만 더 나아가자. 그래도 실사 영화는, 뭔가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는지, 정말 밑도 끝도 없긴 했지만, 원작 영화와는 다르게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와 맞서 싸워 이윤희의 자유를 얻어낸다. 체제에게 반항하여 끝내 자기결정권을 갖는 개인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약 일주일, 하루면 함락된다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는, 희극인 출신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 나라를 지키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린 소년소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스스로 입대하여 훈련받고, 주말마다 화염병을 만들어 러시아 군에 맞서며, 심지어 해외에 있는 국민들까지 기꺼이 귀국하여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까딸루냐 찬가' 에서 소설가 조지 오웰이 스스로 스뻬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걷고 또 걸어 한 자루의 구식 소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하고자 했던 때와 달리, 현대의 전쟁은, 각자가 미디어를 활용하여 기꺼이 언론이 다 보여주지 못하는 극명한 진실을 보여주고, 스스로 결정하여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를 보호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는 한, 제아무리 독재자의 왜곡이 판을 친다 핻 분명히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이어령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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