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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Nov 28. 2019

종이책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

구차하게 이북 단말기의 장점을 설명해야 할 정도라면 차라리 종이책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자 반문이다. 지금 처럼 종이책을 사고 태블릿으로 가끔 영상을 즐기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을 들으면 딱히 대거리할 게 없다. 기껏 '그러던지'라는 말을 하고 쿨하게 돌아서는 것이 깊이 찔린 공격의 여파를 숨기기에 적당하다. 특정한 단어와 짝을 이뤄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연어(連語)라 한다. 사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대학원까지 다닌 IT업종의 지인이 알려준 말이다. 이북 단말기는 '굳이'와 연어를 이룬다. 항상 붙는 이 단어로 끊임없이 구매를 주저하게 한다. 이북 단말기 뒤에는 늘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싸다

종이책보다 가격이 싸다! 이것 하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도서정가제라는 규제를 받는 독특한 시장에서 책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방법은 이북을 사는 것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도 있지만 마음껏 밑줄을 칠 수도 없고 생각을 끄적거릴 수도 없다. 괜히 찢어지기라도 하면 반납할 때 솔직히 고백하기도 하지만, 들키지 않으려 무인 반환함에 몰래 집어넣고 오거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인 듯 모른 척하기도 한다.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깜박거릴 때 건너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부터 신경 쓸게 많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안정을 확보하는 행위는 이북 구매다.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스마트폰보다 이북 단말기가 좋은 이유는 이미 다 얘기했다. 


부피와 무게

1/10이 아니라 1/100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 장편 소설은 서너 권이 아니라 열 권도 되고, 열 권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맘먹고 떠나는 여행에 차가 있으면 모를까 배낭에 수십 권의 책을 넣고 가기는 불가능하다. 차가 있더라도 트렁크 가득 책을 채우고 가는 것이 무슨 낭만이 있을까? 이북 단말기면 가능하다. 욕심을 한껏 부려도 된다. 여행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한들 열 권을 읽기는 버겁다. 그래도 사람 욕심이란 게 낯 선 환경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낭만에 취해 꾸역꾸역 책을 넣어가고 싶어 한다. 종이책이라면 금세 배낭이 불룩해지고 토할 지경이 된다. 이북 단말기는 수십 권 수백 권 가능하다. 더 정확하게는 메모리가 허락하는 한 집어넣을 수 있다. 책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들고 갈 수도 있다. 


책장을 들쳐 매고 가는 만큼의 효과를 하나의 두 손바닥만 한 단말기로 낼 수 있다. 종이책의 무게와 부피 모두를 이북 단말기가 넉넉하게 받아낸다. 혹시라도 이북 단말기 안에 내장된 메모리가 부족하다면 외장 메모리를 사서 넣으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외출 나가기 전 어떤 책을 들고 갈까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떤 cover가 나를 더 돋보일지 고민을 하겠지...


공간비용

들고 다니는 문제에서 조금 비틀어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측면도 따져봐야 한다. 집에 책이 많아 5평 정도를 책이 점유하고 있다고 추측해 본다. 서울에서 30평짜리 아파트가 3억 일리는 없지만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 3억짜리 아파트에 산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1평당 비용은 1천만 원이 된다. 1평을 사용하는 공간 비용만 1천만 원. 책장이 5평을 차지하고 있다면 5천만 원을 책이 조용히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적 만족과 장식 효과까지 생각해도 비싸다. 게다가 책장이란 녀석은 꿈쩍하지 못하고 모두가 피해가야 한다. 이 녀석이 자리를 잡고 나야 책상이든 침대든 다른 공간이 나온다. 이 책들을 모두 이북 단말기로 옮긴다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에게 갑자기 수천만 원어치의 공간이 생긴다. 종이책을 100% 이북 단말기 안에 집어넣어도 아쉽지만 현금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공간이 생긴다. 부수적인 효과로 항상 다투던 가족들에게도 집안이 깨끗해졌다고 칭찬 들을 수 있다. 


멸실 염려

장마철만 되면 집안에 물이 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없을 리야 없겠지만 많이 줄어들었다. 책이 물에 젖는 일을 보기는 힘들어졌을지언정 종이책은 습기를 참 좋아한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이친 빗물에도 책은 젖을 수 있고, 뛰어노는 아이 손에 들린 음료수가 엎어지면서 물에 젖을 수도 있다. 라면 받침으로 쓰던 책에 라면 국물이 스며들 수도 있다. 물에 젖어버린 책을 보는 것은 꽤나 우울한 일이다. 껌처럼 들러붙은 종이를 떼내다 찢어지기 일수, 페이스 페인팅을 한 것처럼 색 바랜 종이, 물에 절여진 주름 잡힌 손가락 같이 구깆해진 몰골. 어느 것 하나 대범한 척 넘어가기 어렵다. 더 괴로운 일은 그런 모양을 계속해서 봐야 하는 일이다. 

물에 젖지 않더라도 종이책은 나와 같이 늙어간다. 흰머리카락이 생겨나고 주름이 자글자글 해지는 얼굴처럼 하얀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고 늙은 종이 냄새를 풍긴다. 책쟁이들에게야 오랜 친구의 향기겠지만 종이 덩어리인 사람들에게는 퀴퀴하고 음습한 냄새일 뿐이다.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빠지듯 종이에 찍인 글자들도 조금씩 날아간다. 아이의 말랑한 손가락으로 넘기던 새책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다. 거칠고 주름진 손가락은 말라서 종이를 집기에 미끄러진다. 종이 결도 거친 피부처럼 일어나고 선명했던 글자의 콧대도 낮아진다. 조선시대의 종이는 더 오랜 세월을 버틴다지만 화학약품 처리로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찍어낸 책들은 더 빨리 더 쉽게 늙어간다. 

세월이 가져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방에 자리 잡고 앉은 퀴퀴한 늙은 뭉치를 싫어하는 가족들은 주인 몰래 책을 내다 버리기도 한다. 한두 권이야 기억하겠지만 나중에 읽으려 속에 두었던 책이 몇 권 빠져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나중에 범인을 잡아 싫은 소리를 한들 버려진 책은 이미 분리수거 차량에 실려 먼 길을 떠난 후다. 

이북 단말기에 담긴 파일은 육체를 버린 영혼처럼 언제나 새것이고, 언제나 그대로이다. 어디서든 망이 연결된 곳에서 꺼내 볼 수 있도록 저장소를 제공하는 곳도 있으니 더 이상 책과의 이별이나 생채기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디지털로 이북 단말기라는 마법의 도구로 종이책에게 불멸의 생을 안겨줄 수 있다. 


검색

내가 분명히 어디선가 본 아름다운 문구.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 기억의 조각. 그 조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머리가 좋을 때야 몇 페이지까지 기억할지 몰라도 침침해진 뇌 세포는 대략 어느 책이 아닐까라는 희미한 정보만 내놓는다. 그래도 찾아내면야 희열을 누리면 되지만, 보통은 못 찾는다. 책에서 읽은 지식을 아이에게 자랑하거나 친구에게 잘난 척한 후에 확인하려고 책을 뒤져도 못 찾으면 우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 책은 속이지 않아도 늙은 뇌는 스스로를 속인다. 위치를 속일 수도 없는 것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일. 책과 나만 아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억에만 의지해야 한다. 메모를 즐기는 사람이나 강박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흔하디 흔한 사례일 뿐이다. 

이북 단말기는 '검색'기능을 제공한다. 내가 가진 책에서 내가 생각한 문구를, 단어를 내 머리가 아닌 기계가 찾아준다. 이 얼마나 연애편지를 쓸 때나 잘 난 척할 때 유용한 기능인가! 


대신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이북 단말기가 훌륭하다 치켜세워도 모든 것이 나을 수는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100가지 중 99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 모자란 것이 있는 것이 상식이다. 명화를 가진 사람처럼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은 그 어떤 그림보다 감동적이다. 똑같은 모양과 전혀 다른 색, 크기, 두께가 만들어내는 책 벽화는 추억이 깃든 자부심이다. 눈이 아닌 손의 감촉, 손으로 직접 적어 넣은 글씨, 밑줄. 서로 주고받으며 남긴 글들. 책에 덧붙여진 몸의 기억. 밑줄이나 메모는 이북 단말기에서도 가능다. 하지만, 내가 적었어도 내가 쓰지 않은 묘한 이질감은 내 것이라고 말하기에 멈칫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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