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책을 e-book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을 하면 보통 명확한 답 없이 산에 같이 올라가 보자는 말만 한다. 원체 걷기 싫어하는 몸을 가진 나는 산쟁이들의 막연한 권유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도를 아십니까 만큼이나 희뿌연 하다. 구름에 가장 가까이 가는 산쟁이들의 뜬구름 설명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이북 단말기를 사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그래서, 비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것과 이북 단말기를 사야 하는 이유는 똑같은 수준의 뜬구름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에게 이북 단말기를 설명하느니 신문구독을 하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르겠다. 태블릿 PC나 노트북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는 글을 보기 위해 왜 이북 단말기를 또 사야 하냐고 누가 물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 된다. 굳이 에 힘을 주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다. 혹시라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책쟁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으면 몇 마디 던져서 책쟁이 세상으로 낚아 올려 보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북 단말기는 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필요 없다. 괜히 설명을 길게 해 봤자 말하느라 듣느라 서로 진이 빠질 뿐이다. 게다가 이북 단말기를 팔아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구질구질 설명을 늘여봤자 여름날 엿가락보다 찐득한 찜찜함만 서로의 마음에 묻게 될 일이다. 그래도 늘어난 엿가락을 잘라내지 않고 돌돌 마는 것처럼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것은 미련이다.
눈이 편안해야 한다. 눈을 학대하는 것이 태블릿과 스마트폰이다. 책은 종이라는 물성에 잉크를 묻혀서 만들어진다. 수백 년 전에 종이가 만들어진 후 인쇄기술이 발달해 오면서 최적화된 것이 책이다. 가장 가독성 높은 폰트를 사용하고 종이 색깔을 조금 누렇게 만들어야 눈에 편하다는 사실도 수많은 실험과 경험을 축적해서 뽑아낸 결과다. 책에는 뇌를 행복하게 하는 지식이 들어있지만, 눈과 손을 행복하게 하는 비법도 진하게 졸여져 있다. 이런 책의 맛을 가장 근접하게 살린 것이 이북 단말기다. 그래서 내 몸에 편하다. 특히나 생생한 육체를 가진 젊은이들은 최첨단 기기가 뿜어내는 온갖 괴롭힘을 견뎌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마음대로 몸을 조절하지 못하는 늙은 사람일수록 고통을 이겨내기 버겁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쨍쨍한 기계로 보는 것은 전구를 직접 쳐다보는 것만큼이나 눈을 학대하는 일이다. 찬물을 먹으면 이가 시리듯 빛을 내는 기기를 오래 보면 눈이 시리다.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뿌옇게 안개가 끼는 눈이 맑아질 리 없다. 오히려 손에 묻은 병균 때문에 눈병만 생길지 모른다. 더 좋은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눈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때가 오면 모를까 한숨 쉰들 늙은 눈의 초점은 다시 팽팽해지지 않는다. 살살 달래 가며 글을 봐야 하는 사람에게 종이책이 없다면 이북 단말기다.
책(글이 많은 것이 책이니 책이라 하자)을 오래 보려면 이북 단말기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얄궂다. 침대에 누워 불을 끄더라도 스스로 빛을 내 뭔가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호텔과 달리 전등 스위치는 늘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입구에 놓인 가정집에서 불을 끄면 볼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밖에 없다. 이쑤시개로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눈물이 줄줄 흐를 때까지 글을 읽으면 이제 멈춰야 한다. 몇 자 더 보겠다고 스마트폰의 빛바늘로 눈을 계속 찌르는 고통을 즐기는 것은 피학적 성애자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이북 단말기의 장점은 종이와 같은 느낌이라는 점이다. 프린터 원리랑 비슷하다. 종이에 잉크를 쭉 뿌려준다. 우린 그 종이를 들고 읽는다. 이게 일반적인 ink 및 종이 인쇄의 구현원리이다. e-ink는 역시 액정에 ink를 쭉 뿌려준다. 그래서 눈이 편안하다. 빛을 번쩍여서 화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ink는 눈을 괴롭히지 않는다. '번쩍번쩍'이는 게 아니다. 그냥 차분히 잉크가 화면에 놓여 있는 거다. 가장 쉽게 이북 단말기를 체험해 보는 방법은 요즘 마트에 붙은 가격표다. 인쇄해서 붙이던 가격표는 분명 아닌데, 인쇄한 것처럼 보인다. 종이보다는 두툼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건전지가 들어있거나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종이와 가장 유사한 습성은 태양 아래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햇빛 찬란한 햇살 아래에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 잘 안 보인다. 어둠에서는 바늘처럼 찌르는 스마트폰의 빛도 태양 아래서는 뭉툭해진다. 하지만, 이북 단말기는 햇빛 아래에 있으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인쇄한 종이가 흐릿한 불빛보다 태양 아래서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잉크는 한 번 뿌려지면 또 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기 소모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빛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스마트폰은 계속해서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빛을 내는 힘이 전기이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면 목줄이 묶인 강아지처럼 콘센트가 달린 곳을 찾아서 줄을 연결하고 있는 이유가 안정적인 전원 확보 때문이다. 절전 모드로 들어가면 왜 모니터가 꺼지는 이유, 스마트폰도 화면 대기 시간 설정이 최대 10분인 이유 모두 같다.
이북 단말기는 조금 전기를 쓰지만 항상 쓸 필요가 없다. 잉크를 뿌려주는 순간에만 '반짝'사용하면 된다. 이북 단말기를 처음 받아 본 사람들이 내뱉는 불만이 왜 깜빡이냐는 것이다. 이북 단말기가 '깜빡'거리는 순간이 종이에서 잉크를 걷어내면서 새롭게 뿌리는 순간이다. 화면이 바뀌려면 이북 단말기는 어쩔 수 없이 '깜빡'거릴 수밖에 없다. 싸구려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북 단말기는 충전을 가득 해 놓으면 많은 페이지를 읽지 않는 한 일주일은 버틸 수 있다.
햇빛에 빛나는 이북 단말기는 빛이 사라진 밤에는 어둠에 동화된다. 빛이 없으면 아무리 비싼 이북 단말기를 사도 글은 안 보인다. 밤에 책을 안 보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말 책과 똑같이 독서등을 사는 핑곗거리가 생기는 것을 장점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프런트 라이트(front light) 기능을 추가했다. 은은하게 배경으로 조명을 비춰주는 기능이다. 독서등이 머리 위에서 빛을 쏘아주는 거라면 프런트 라이트 기능은 종이 뒤편에서 은은하게 비춰준다. 대신, 전기는 좀 더 쓰게 되겠지만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진중한 빛, 눈(雪)빛과 반딧불보다는 더 잘 보이는 빛으로 인도한다.
스마트폰 정도의 무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모르겠다. 스마트폰보다는 조금 무게가 나가지만 비슷한 크기의 태블릿보다는 훨씬 가볍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누워서 한 손으로 들고 보는 것은 어렵지만 이북 단말기로는 가능하다. 헬스클럽에서 아무리 근육을 단련해도 아령을 들고 한 시간 가량 들고 있는 사람이 없듯 무게는 무시 못할 장벽이다. 사실 두꺼운 책은 벽돌을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쭙잖게 힘자랑하다 손이 떨리는 정도야 괜찮지만 떨어뜨리면 이마에 붉은 언덕이 생긴다. 칼데라 같이 파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신 좀 포기해야 할 것은
이미지나 영상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책에 삽화가 들어가면 상상력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삽화가 주가 되면 그림책이 된다. 이미지라는 말보다 삽화라는 것이 책에는 어울리는 단어다. 삽화가 많아지면 이미지 북이 아니라 그림책이 된다. 그림책을 볼 양이면 태블릿도 나쁘지 않지만 글을 읽을 거라면 이북 단말이 낫다. 영상만큼은 어쩔 수 없다. 영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번잡함이나 샛길로 새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 굳이 단점이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업데이트되는 내용을 챙겨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업데이트해서 봐야 할 것은 뉴스 정도이지 바닷속 깊은 곳을 탐험하려는 사람에게 뭍 소식을 알 수 없어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생뚱맞다. 책이라는 깊은 바다를 들어갈 때는 고요하게 깊이 그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뭍에서의 소란이 궁금하다면 바닷속에서도 뭍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비를 챙기라고 하는 것보다 바닷속을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낫다. 귀를 바다밖에 두고 왔다면 깊은 바다가 내게 거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