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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Jan 31. 2017

e-book 단말기를 샀다.

회상

거금 10만 원이 조금 넘어가는 가격을 지불했다. e-book단말기라고 하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나이 어린 사람들 중에는 알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젊은이들은 별 쓸모없는 기기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기 때문이라는 착각과 e-book단말기로 책을 더 편하게 많이 읽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과 디지털 시대에도 책을 읽는 행위는 숭고한 것이라 믿는 신념이 뒤섞여 결재했다. 공자에게는 멀리 있는 친구의 방문이 반갑겠지만, 현대인에게는 친구보다 택배기사 분들의 '배송 알림 문자'가 더 감동이다. 나에게 힘든 일을 하소연하지도 않고 사례로 밥을 사주러 나갈 필요도 없다. 그저 묵묵하게 내가 원하는 것만 놓고 사라진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있을까? 우리나라의 가장 발달한 사업구조의 도움이 단단한 기반이 되어 택배사업만큼은 전 세계 최고라 자부할만하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누리는 혜택이라고까지 과장하고 싶지 않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름 정리

일단 같이 이야기를 해 나가려면 유사한 용어부터 정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이상을 향해서 달려갈 때 삐걱거리는 일들은 아주 사소한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보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부 사이에도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되는 일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치약의 중간부터 누르는 일이나 양변기의 뚜껑을 내리지 않는 일, 샤워하고 물을 뿌렸는지 등등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 한 일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이지만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무례한 일이 되어 버린다. 


동지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대한의 독립인지, 조선의 독립인지, 사회주의로의 독립인지, 민족이 우선되는 독립인지에 따라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독립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일을 나누는 것이니 부담감은 덜하고 양보할 마음의 여유도 더 넓다. 그래도 뜻이 안 맞을 수 도 있겠지만, 서로 의견을 반드시 나눠야 할 것도 아니니 큰 일도 아니다. 


전자책 단말기, e-book 리더기(e-book reader 機), 이북 단말기 다 같은 말이다. 이 중에 어떤 말로 불러도 그게 그거다. 일부 사람들은 '크리넥스'처럼 상품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크리넥스는 각 티슈를 뜻하는 말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상품의 이름인 브랜드다. 각 티슈를 '크리넥스'라고 불러도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이북 단말기라고 부르지 않고 이북 단말기를 만들어내는 상품명으로 불러도 이북 단말기다. 넓은 포용력으로 어떻게 부르든 괘념치 않을 생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도구로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킨들(kindle)이다. 누가 '킨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이북 단말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의 아마존(amazon)에서 만든 제품이다. 굳이 아마존이 미국의 대형 쇼핑몰이라는 설명 안 해도 알 테지만 혹시나 종이책만 읽고 우리나라 일 외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봐 뱀발을 덧 붙인다. e-book단말기를 세상에 널리 퍼뜨린 대표적인 제품이다.  국내 제품으로는 '크레마(Crema)'가 있다. 내가 산 제품이 크레마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 판매량은 조사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남의 회사 제품의 판매량을 알아내서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회사의 보고서에는 반드시 넣기를 원하는 내용이지만, 남의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해서 그 집보다 우리 집이 잘 산다거나 잘 살 것이란 보장은 누구도 해줄 수 없다. 실제로 돈을 많이 버는 집과 돈을 벌지 못하는 집의 행복감은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교하길 좋아하고 남의 집을 엿보면서 위안을 삼는 시대적 분위기가 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해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크레마는 인터넷 서점인 Yes24와 알라딘의 주력 단말기 이름이다. 두 회사는 지분을 투자한 이북 관련 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제품을 만들어 내서 각자 판매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최대 강자인 교보문고는 '샘(SAM)'이라는 이북 단말기를 판매하고 있다. 요즘도 판매하는지는 모르겠다. 확인차 교보문고에 들어갔지만 물리적인 상품을 판매한다는 페이지는 찾기 어렵다. '샘'이라는 이름으로 이북을 구매해서 활용하는 상품은 존재하는 것 같지만 리더기는 팔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 후한시대의 채윤이 종이를 만들었다고 하니 종이책은 그 이후가 되겠지만 1천 년도 넘었다. 하지만, 이북 단말기는 나온 지 100년도 되지 않았지마 여전히 변화무쌍하다. 젊은 층에게 유명한 전자책 업체인 리디북스의 리디 페이퍼(RIDI PAPER)도 있다. 리디 페이퍼는 저렴한 가격과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각종 상품으로 더 유명하다. 화면도 더 널찍하다. 솔직히 안 써 보고 리디 페이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의 것을 빌려 잠시 만져본 것이 전부라 더 자세히 말하기도 어렵다. 


다른 것도 더 있겠지만 난 모르고 굳이 알릴 필요도 없다. 세상 사는데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세상 사는데 더 중요하다는 사람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무슨 기계 하나를 알려고 더 노력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긴, 사회에 나와서는 퀴즈대회에서나 써먹을만한 온갖 지식을 넣기 위해 밤새서 공부하는 것이 고등학생들의 삶인데 너무 폄훼하는 것인지 마음 한 켠 무겁다. 


이왕 말 한 김에 쓸데없는 정보를 더 하면 상품명 뒤에 단어가 붙는 경우가 있다. 킨들의 경우 킨들 페이퍼.  크레마 뒤에 붙는 크레마 카르타, 또는 크레마 사운드 등. 덧붙여진 기호들은 새로운 기계라는 의미다.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렌저는 지금도 새로운 차종이 나온다. 똑같은 그렌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언제 그렌저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차다. 외모뿐만 아니라 속까지 다르다. 중년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 먹던 소세지와 요즘 아이들이 먹는 소시지는 같은 이름이지만 겉과 속이 다르다. 소세지는 밀가루와 고기를 섞어 만든 분홍색 고체 어리였다면, 소시지는 돼지 창자에 부속물을 섞어서 만든  고기음식이다. 


'단말기'라는 단어가 입에 착 달라붙지 않지만 그냥 쓴다. 영어단어로 바꾸면 '디바이스(device)'라고 한다. 둘 다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지만 익숙하게 사용한다. 쌀 탄수화물에 익숙해진 사람은 아무리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어서는 채울 수 없는 공복감이 생긴다. 단말기나 디바이스 모두 내게는 뜻은 통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빵이다. 배고프면 먹지만 밥이 나오면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음식처럼 단말기나 디바이스 모두 남들 앞에서 익숙하게 쓰지만 언제라도 다른 말로 바꾸고 싶다.  


결론은 그냥 편한 대로 부르면 된다. 난 이북 단말기라고 부를 생각이다. 어느 제품이 좋은지 어느 것이 싼 지 열심히 검색하면 나온다. 오히려 너무 많이 나와 헷갈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이들은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본적도 없는 공룡의 이름을 구분하고, 수십 개의 팽이 이름을 구별해 낸다. 아이들을 좇아갈 능력은 안되지만, 오로지 신문이나 주변 사람의 말에만 의지해서 삶을 이어 온 노인은 아니기에 열심히 검색한다. 피곤하지만 구한말 지식인의 숙명이려니 생각한다. 유교의 몸을 입고 서양문물의 정신을 뇌에 집어넣은 채 올바른 방향을 찾으려 버둥대던 구한말 지식인보다야 난도가 쉬운 일을 하는 것이 분명하니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참으면서 열심히 자판을 두들긴다. 


이북 단말기와 태블릿 PC

이북 단말기를 사려고 할 때 가장 갈등하게 되는 지점이다. 태블릿 PC는 미니컴퓨터 또는 큰 스마트폰 같은 기계다. 글로벌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하고 몇개 국어를 능통하게 할 줄 아는 최고 스펙의 인재와 같다면 이북 단말기는 책을 읽기에 최적화된 구한말 개화기 지식인 같은 기기다. 순박하고 분명하다. 투박하지만 세련된 맛은 없다. 누군가에게 이북 단말기를 사겠다고 얘기하면 보통은 차라리 태블릿을 사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질문은 매우 합리적이다. 돈을 더 주고라도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는 기기를 사는 것이 낫지 1년에 책을 몇 권이나 본다고 책만 편히 읽을 수 있는 단말기를 살 생각이냐는 질문이다. 어차피, 이북 단말기를 사려는 사람을 일반적인 범주의 틀에 넣어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북 단말기는 그만큼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기기다. 아무리 아닌 척하더라도 서점에 깔려 있는 수만 권의 책을 구경하고 사서 읽는 것은 별종이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앱에서는 쉬지 않고 최신의 것들이 날 봐달라고 유혹하고 있다. 종교의 사제도 아닌데 굳이 활자 가득한 책을 읽겠다고 이북 단말기를 사려는 사람들은 일반인인척 하면 안 된다. 별종이라는 말이 싫으면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양보해서라도 일반인과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이북 단말기를 사는 행위의 앞뒤가 맞는다.  


동영상 : 태블릿 PC로 가능하다. 이북 단말기? 못 본다. 동영상은 유튜브의 다른 말이 되어 버렸다. 각티슈가 크리넥스가 되었듯이 동영상을 본다는 말은 유튜브를 즐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튜브에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것들이 표출된다. 설마 이런 것까지 있을까 싶은 것들까지 있다. 한국어로만 뒤져도 그 정도인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또는 넓게 사용되는 중국어나 영어까지 확장하면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고 봐도 된다. 책은 눈이라는 감각이 주인이 되어 뇌를 끌고 가는 물건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종이의 질감이나 책의 무게도 있고, 세월이 깊이를 냄새로 전달해 주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는 책은 색종이 묶음과 같다. 시골 노인네들이 잎담배를 말아 피우던 사전도 별 다를 게 없다. 영상은 눈과 귀가 이끌어 간다.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기에 바빠 상상력을 키울 여력이 없다. 호흡이 가쁠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만큼 자극적이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전통 음식을 먹이는 것이 어려운 만큼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글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글에 익숙한 꼰대들의 음식이 책이다. 이북 단말기는 꼰대를 위한 현대화된 전통 상차림이다. 책을 좋아할 사람이 영상이 안 나오는 것을 아쉬워 할리는 없다. 그저 옆에 있는 신세대들에게 억지로 권하지만 않으면 된다. 


웹서핑 : 당연히 태블릿 PC로 할 수 있다. 이북 단말기 가능하다. '가능하다'는 단어는 '편리하다'와 다른다. 가능하다는 말은 흔한 아파트 분양광고에 나온 전철역까지 10분 거리와 비슷하다. 어떻게든 10분 안에 아파트에서 전철역까지 갈 수 있다면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 청년이 숨 가쁘게 전력으로 달려서 갈 수 있는 10분 거리가 내게도 10분 일리는 없다. 이북 단말기에서 할 수 있는 웹서핑은 전철역 10분 거리와 비슷하다.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군대 훈련소에서 같은 인간인데 조교가 만들어내는 몸짓과 훈련병들이 만들어 내는 몸짓은 완전히 다르다. 세월과 연습이 만들어낸 차이는 같은 인간에 같은 성별과 또래라는 것 말고는 같은 것이 없다. 프로선수들이 TV에서 보이는 실력을 쉽게 비난하는 일반인들은 프로 선수들이 지나쳐온 훈련의 고통을 알 수 없다. 이북 단말기와 태블릿이 보여주는 만족도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보다 크다. 기껏 프로선수보다 키가 크다고 자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떻게든 한 가지 잘난 점을 찾아서 우월하다 뻐기는 것 말고는 완패다. 그 잘난 한 가지 때문에 부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객관적으로 이쁘지 않은 나의 아이가 어떤 무리 속에서도 눈에 띄는 것처럼 이북 단말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용 상품이다. 그러면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면 충분하다. 그 아이가 공부를 못하더라도 내 눈에 가장 이쁜 아이가 잘 자라면 그것보다 감사한 일은 없다.


컬러 : 태블릿 PC는 기본 컬러다. 이북 단말기 중에 컬러 지원하는 기기 아직 못 봤다. 아이 이야기로 풀었으니 이번엔 애인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어야 하나 보다. 유명한 연예인과 비교해서 더 예쁘고 잘생긴 애인을 만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 부러워할 정도면 모르겠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가 맞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붙어 다닌다. 성격이든 외모든 뛰어난 것 하나 없지만 둘이 꼭 붙어 다니며 어르신들의 혀 차는 소리를 들을 행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위의 수군거림은 겉으로는 놀리는 것일지 몰라도 속내만큼은 부러움의 탄식이다. 모두가 알록달록한 옷으로 맵시를 뽐내는 동안에도 무채색 옷만 입고 다니는 모양새다. 눈에 띄지 않고 수수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위로라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이쁘다면 주위에 온 세상 연예인을 다 가져다 놓아도 필요 없다는데 더 할 말은 없다. 그냥 부러워하고 행복해하면 된다. 검고 흰 무채색의 사랑이 담긴 이북 단말기.


이북 단말기는 개화기 지식인의 모습이다. 굳건한 글 읽기의 전통을 고수하는 꼿꼿한 선비정신의 화신이다. 정신없이 변하는 정신없는 세상에 맞는 태블릿을 밀쳐두고 시간을 들여 먹을 갈고 거추장스러운 화선지를 꺼내 느릿느릿 글을 쓰는 선비에게 필요한 벗이다. 문방사우는 글로만 전해지고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글을 파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선비의 후손들에게 어울리는 친구가 이북 단말기다. 오로지 많은 '글'을 읽기 위해 태어난 이북 단말기는 개화기를 훌쩍 넘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동영상을 즐기고, 웹서핑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순간순간의 변화에 익숙해진 사람들 속에서 느릿느릿 하늘과 땅을 보고 사람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흑백의 단순한 이북 단말기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북 단말기를 사야 하는 이유

글을 읽기 위해 밥을 건너뛴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을 이북 단말기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태블릿으로도 글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눈이 시리고 무겁다. 동네 뒷산을 오르려는데 히말라야를 올라가는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은 허세가 아니라 낭비다. 글은 그 속에 무한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모양은 언제나 담백하다. 담백한 글에 어울리는 것은 이북 단말기지 번쩍이는 태블릿이 아니다. 오로지 글을 읽기 위한 것으로 맞춰진 기기. 부엌칼은 부엌에서 가장 편히 쓰일 때 돋보이는 것이지 사람을 베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다. 무사들에게 필요한 칼은 검이겠지만, 요리를 위한 칼은 소박하되 날이 잘 서 있어 손에 잘 쥐어지는 것이 제격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는 사람들이지 전장에 나서는 무사도 아니기에 검과 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소박한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엌칼이면 족하다. 보석이 박혀 있을 필요도 없고, 귀신이 깃들어 있을 필요도 없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고기가 잘 썰리고, 야채를 잘 썰어내고, 생선의 비늘을 벗길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면 된다. 가격도 비쌀 필요도 없다. 손에 잘 익으면 되니까. 태블릿 PC는 보석이 박힌 커다란 장검이다. 부엌에는 불필요하다. 부엌에는 부엌칼이 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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