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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Feb 07. 2021

설날 잔소리 대처법 - 역할 놀이로써의 대화라는 관점에

안녕하세요 아빠나무입니다. 


설날은 즐거운 민족의 명절임과 동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보통 제일 강한 스트레스가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아주 크게 바뀌는 예로는 학생이 취직을 하면, 직장인이라는 아주 다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취직과 관련된 다양한 스트레스는 본능적으로 느껴지시지요?


반대로 작게는 학교에 누군가 전학을 왔는데 그 아이가 자신이 속한 무리에 합류하면, 그 무리 내에서 나의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이 작게 변화하는 부분을 가끔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그러면 실제 역할과 내가 생각하는 역할이 다르고, 그 괴리에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얻습니다. 


우리가 설날에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설날에 발생하는 이 작은 역할 변화와, 역할로 인해 발생하는 고정된 대화의 형태 때문입니다. 




자 여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멋진 30대 직장인 남성이 있다고 해 봅시다. ('갑'이라고 이름 지어 봅시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도 좀 모았고, 혼자서도 즐거운 솔로 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자신감도 있고, 여하튼 잘 살아가고 있어요. 여자 친구는... 뭐 아직 없지만요.


그런데 이 사람이 명절에 친척집에 모이면 주어지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오랜만에 보는 손주, 조카 정도의 느낌이겠죠. 




자 반대로, 이제 퇴직하고 배는 튀어나오고 머리는 벗겨진, 자식들은 다 나이만 많고 빌빌 거리는 친척 어른이 있다고 해 봅시다. ('을')


이 '을'씨는 '갑'씨가 보기에는 뭣도 아닌, 그냥 친척 아저씨입니다.


나이만 많지, 자기 관리도 못하고 자식 농사도 다 망쳐서 존경할 거리라고는 없는, 그러나 친척관계에서 먼저 태어난 손윗사람인, 지나가다 만날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위해서 좀 과장을 해 봤습니다. 


그렇지만 여하튼 이분은 설날에는 오면 삼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설날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그 동안 소식을 모르던' '이전에는 자주 만났지만 최근에 더 멀어진' '친척'인 '갑'과 '을'이 만났습니다. 


자 본인이 '을'이 되었다고 해 봅시다.


'갑'에게 별다른 악의는 없어요. 


그런데 둘이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을'의 심리를 따라가 볼까요?




오랜만에 '갑'을 만났다.


뭔가 잘 살고 있다고는 하는데,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라서 어색하다.


그래도 일단 만났으니 안부는 물어봐야지.


어휴, 내가 뭔 특별한 대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네.


선보는 것 같구만. 뭐하고 사냐, 뭐 좋아하냐.


아이고 나도 불편하네.


아 아직 결혼을 안 했다고? 직장도 좋은 아이가 왜... 요즘 세상에는 많이 그런다고는 하던데.


아휴 그래도 내가 손윗사람인데, 뭐라도 말이라도 해 줘야 되는데. 


할 말도 없고. 


결혼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으니까 그거 관련된 말 밖에 할 것이 없네. 


어이쿠, 말하다보니 또 내 생각만 말했네. 


입이 방정이다 입이 방정이야. 




대화는 역할놀이입니다. 


역할이 주어지고, 그것에 따른 대화의 흐름이 이어지지요. 


'을'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갑'의 기분을 상하게 하게 만들어버렸죠. 


물론 악감정을 가지고 막 주변을 후벼 파는 친척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사람이 많이 있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진짜 악의를 가지고 이 정도로 다가오면 아예 피해버리죠.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편해지는 것이 더 불편한, 그런 게 명절에 받는 이런 잔소리 스트레스잖아요?


그건 우리사회가 쥐어주는 그 만남의 구조 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인관계의 역할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역할놀이에서 악당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지요. 


아주 특별하게 이것을 조심하고 피해 가려고 강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System이 주는 역할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따지면 이런 스트레스는 역사가 아주 짧죠. 


'명절 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얼마 안 된 일이니까요.


국가 기록원의 기록을 봐도, 1989년에 명절 대이동이라는 표현이 처음 나왔다고 하네요. 


이전에는 친척들끼리 모여서 살아서 오랜만에 보는 친척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죠. 


따로 사는 친척은 명절에도 보기 힘들었죠. 


그래서 명절에 모여서 제사를 지낼 때 이런 잔소리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위에서 '오랜만에' '그 동안 소식을 모르던' '이전에는 자주 만났지만 최근에 더 멀어진' '친척'이 만난다고 했지요?


여기서 친척 앞에 있는 수식어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평소에 소식도 알고, 뭐 하는지도 다 압니다. 


그러면 명절 잔소리를 하게 될 일이? 없겠죠. 




자 여하튼 명절 잔소리라는 것이 악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역할이 그렇게 주어지다 보니 그런 것이다.라는 저의 의견을 피력해 보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저의 이론을 바탕으로 명절 잔소리를 줄이는 법을 생각해 볼까요?




1. 평소에 연락을 한다. 


이건 겁나게 어렵지만 효과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대인관계 기술이 떨어지고 눈치도 없어서 명절 잔소리를 자주 하는 분에게 한 달에 한번 정도 연락을 하고 안부를 나누면, 명절 저런 소리를 들을 일이 없어지지요. 


'그동안 소식을 모르던'이라는 수식어를 없애버리는 것이죠.


그렇지만 연락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하기도 어렵고, 이걸 하기 위해서는 '갑'의 대인관계 기술이 매우 뛰어나야겠죠. 


효과는 좋지만 들어가는 품과 노력이 상당해서 잘 하기는 어렵죠. 


이렇게 하면 나의 역할이 '평소에도 연락을 하는 손아래 친척'이 되면서 명절 잔소리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2. 먼저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의 방향을 친척 어른 중심으로 몰아간다. 


친척 어른들도 압박을 받습니다. 


자기 손아랫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압박이죠.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먼저 안부를 물어보면서 신상파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대화가 흘러가기 전에, 대화의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먼저 주요 대상자의 안부를 물으면서, 그와 관련된 내용에 관심을 표현하세요. 


대화의 주도권을 Holding하면서 주제를 친척 어른의 일이나 취미로 가는 것이죠. 


사실 친척어른들 대부분 집에서 별 말을 못 합니다. 누가 자기 이야기 들어주면 좋아라 해요. 


자기 이야기하게 만들면, 어느새 설날에 모이는 자리는 끝나버립니다. 


의외로 긴 시간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함으로써 나의 역할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척'으로 바꾸는 것이죠. 




3. 윷놀이를 준비해 간다. 


팀 먹고 안주 쏘기, 점심내기 등등으로 윷놀이를 하면 아주 빠르게 대화를 정리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거 해보면 엠티가서, 단체미팅에서 술 게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죠. 


대화를 해야 한다는 피곤함이 없이 시간이 아주 잘 가고, 엄청 친해진 느낌이 들죠. 


이걸로 대화의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관심을 윷놀이에 집중시키는 것이죠. 


팀 게임의 강점입니다. 


특히 꼬맹이들이 있다면 효과는 배가됩니다. 


나의 역할을 '게임에 참여하는 친척'으로 바꿔서, 대화를 게임과 관련해서로 바꾸는 것이죠. 


"야 우리 '갑'이는 모잡이여 모잡이!"




4. 주식이야기를 한다. 


이제 방향이 보이죠? 나의 역할이 '오랜만에' '그 동안 소식을 모르던' '이전에는 자주 만났지만 최근에 더 멀어진' '친척'이 아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척'이 되어버리죠. 


이번 설에는 특히 시간 보내기 좋은 방향이겠네요. 




5. '이제 하려고요.' -> '도와주세요.' 대화법


자 위에 처럼 역할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가상의 역할을 부여하는 방법입니다. 


아까 '을'의 의식흐름에서 대화할 내용이 '결혼'으로 한정이 되었잖아요?


이때 '갑'이 '이제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이전에는 직장으로 바빴거든요.'라고 하면, 그와 관련된 대화는 중단됩니다.


신상털이 대화 중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척'이라는 역할이 생겼는데, 이것을 '결혼 준비 중인 친척'으로 바꿨거든요. 


그러면 대화의 흐름은 '준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로 가는데, 이때 재빠르게 '친척 어른이 도와주세요.'로 대화를 유도합니다. 


그러면 이제 친척 어른에게 '손아래 친척에게 결혼과 관련해 도움을 줘야 하는 어른'이라는 역할을 주게 됩니다. 


아주 부담스러운 역할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아이고, 열심히 해봐라'하고 사라지시죠. 




이렇게 대화를 할 때 지금 나의 역할,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의 역할, 상대방의 역할,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대화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대화 스킬이지만, 이걸로 많은 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설날에 잔소리로 적은 스트레스만 받으시기를 기원하며!


아빠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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